(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 1993년 YS키드로 정치에 입문한 후, 4선의 중진으로,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거친 여·야를 넘나드는 유력한 대권주자라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정치경력을 가졌다.
손 상임고문은 지난 18대 대선 주자시절부터 ‘저녁이 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독일식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8개월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손 상임고문이 만들고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원한 대선후보, 손학규?
대표적인 재야의 정치학자였던 손학규 서강대 교수는 1993년에 대통령 YS의 부름을 받고 윤항열 의원의 급서로 공석이 된 광명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오랜 기간 동안 지역을 관리했던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 회장을 제치고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원으로써 재선에 성공했고, 1996년 11월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로서는 최연소 장관 기록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돼 3선 국회의원이 됐고,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07년은 정치인 손학규에게 새로운 변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적인 경기도 지사로서 대권주자로 부상한 손학규 고문은 숙명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은 이명박, 박근혜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결국 손 고문은 그해 3월 19일 14년간 몸담았던 한나라당과 결별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는 데 역할을 했으나,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당시 범여권의 대선 경선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혹평도 받았다.
17대 대선 패배이후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 손 고문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도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2008년 4월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어 완패했다. 결국 통합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춘천으로 칩거생활에 들어간다.
2년이 지난 후, 그는 2010년 8월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는 복귀의 변을 남겼다.
손학규 고문은 2010년 10월, 다시 야당의 대표가 됐다. 그는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MB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임태희 의원의 사퇴로 실시된 2011년 4월 27일 제18대 국회의원 성남시 분당구 을선거구 보궐선거에 당선돼 4선이 됐다. 하지만 손 고문은 국회의원 선수 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 고문은 2012년 6월 14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8월 25일 완전국민경선을 시작했으나, 26일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모바일 투표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며 경선 중단을 요구했다. 제주,울산 지역의 투표를 재검표하고 모바일투표의 고지사항을 강화하기로 결정하는 우여곡절 속에 세 후보들은 경선에 복귀했다.
하지만 손 고문은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하며 대선경선에서 두 번째 눈물을 흘렸다. 당시 손 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지만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손학규의 대한민국 미래, ‘저녁이 있는 삶’
결국 문재인 후보가 18대 대선에서 패배했다. 손 고문은 지난 1월 15일 반성과 성찰의 시간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완성하고 오겠다며, 독일로 떠났다. 2008년 춘천 칩거 이후 또 한번 정치판을 떠났다.
손 고문은 출국 직전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 저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호응을 얻었지만, 생각해보니 너무 일렀던 게 아닌가, 아직 그것을 실현할 준비가 안 됐던 것은 아닌가 싶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 하나를 더 놓는 심정으로 저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손학규 고문은 지난 10월 초, 8개월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손 고문은 귀국 인사를 통해 “(지난 대선 패배 이후) 8개월 넘게 독일에 머무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국민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어떻게 하면 국민이 살기편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독일에서 보고 배운 것은 복지국가도, 통일도, 통합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다”고 역설했다.
손 고문은 자신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의 모델을 독일에서 찾았다.
그는 10월 8일 열린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 미래연구소 창립심포지엄에서 “독일에서 저는 저녁이 있는 삶을 볼 수 있었다. 국민이 편안한 사회였다.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사회를 보았다. 오늘의 독일 연금생활자 노인들의 생활은 가히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농담 삼아 독일 노인들은 천당에 갔다가도 독일이 천당보다 더 좋아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독일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대체로 독일 국민은 복지국가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강조했다.
결국 손 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의 실현을 위해 10·30 경기 화성갑 보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초 민주당은 손 고문을 화성 갑에 전략 공천하는 방안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대선에 패배, 정권을 내주게 한 죄인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게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지 않을 것"이라며 불출마의사를 밝혔다.
안철수와 연대설? 내가 손학규다!
손학규 고문과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설은 지난 대선 기간 때부터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강용석 전 의원도 손학규 전 고문과 안철수 의원의 연대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강 전 의원은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작년에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의원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를 한 후, 손학규 전 고문의 요청으로 두 사람이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또 올해 손학규 전 고문이 형수상을 당해 독일에서 일시귀국 했을 때도 안철수 의원이 문상을 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손학규 전 고문이 귀국 뒤 안철수 의원과 통화를 했다. 그에게 싱크탱크 창립 기념식 축사를 부탁하기도 했다”며 “두 사람 사이에 일련의 흐름이 있다. 정치인들이 괜히 만나고 괜히 전화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 고문의 대답은 “NO"였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불거진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설을 일축했다. 그는 “안철수 신당을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손학규가 종속변수인가? 나는 내 길을 가는 것이다. 손학규가 생각하는 것은 훨씬 더 원대한 꿈이다. 그저 어디서 자리 하나 차지하고 세를 이용해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고 하는 건 내 머릿속에는 없다. 손학규 우습게보지 말라 이 얘기다.”
손 고문은 연대설에 대한 입장에 대해 “연대설이 나왔을 때 ‘안철수 현상’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좌절에 대한 반사 작용인 만큼 안철수 의원이 표방하는 새 정치의 내용을 충실히 채우고 국민에게 좋은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게 정답이다.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왜 안 의원을 평가해야 하나. 나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게 할 일이다. 대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독일에서의 경험을 참고 삼아 생각하고 공부하려 한다. 지금은 정치에 나서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란 판단에서 불출마도 결정한 거니까. 안 의원 관계는 그런 차원에서 보면 된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동일빌딩 7층에 있는 손 고문의 개인 사무실 문 옆에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어디에 있건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좌우명 : 人百己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