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2014년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6월4일로 예정된 이번 선거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합당으로 참전을 예고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YS가 지방선거를 30년 만에 부활시켜 1995년 제1회 선거가 치러진 이래,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등용문으로,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등이 지방선거를 발판삼아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지역의 대표 자리를 걸고 펼쳐온 다섯 차례에 걸친 선거대전. <시사오늘>이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지난 지방선거를 되짚어 봤다. 네 번째 동시지방선거가 열렸던 2006년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주>
“속 보이는 얼음처럼 세상도 투명하게.”
2006년 봄, 오세훈 전 한나라당 의원이 한 정수기 회사 CF에 출연해서 말한 광고문구다. 그간 각계의 CF요청을 고사하던 오 전 의원이 이 광고를 찍은 이유는 ‘깨끗하고 투명한’ 이미지가 자신과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2006년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2006년 지방선거는 소위 ‘이미지전쟁’이었다. 3김의 시대가 저물고 정가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왔다. 소위 ‘각개전투’로 치러야 하는 선거니 만큼 개인 이미지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오 전 의원은 그간 자신이 쌓아둔 환경운동가와 방송인으로서의 이미지, 소장파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아낌없이 활용했다.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영된 정수기 CF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냐는 여당의 고발이 있기도 했다.
그 결과 오 전 의원은 경선에서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가 됐다. 한발 앞서 서울시장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두 사람에 비교하면,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갑자기 부상한 오 전 의원의 경선 승리를 점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지’를 앞세운 오 전 의원은 경선인단 투표에선 맹 전 의원에게 패했지만 여론조사에서 압승을 거두며 역전에 성공했다.
선거가 정책보다 이미지 대결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로 흐르자 다른 후보들의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4월 11일 “춤바람(강금실)에 대항해 꽃미남(오세훈)이 나왔다고 한다”며 “서울시장 선거가 인기탤런트 선발대회냐”고 비난했다.
여당이 내세운 후보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었다.
서울시장 후보군을 물색하던 열린우리당은 강 전 장관을 전격 투입 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비정치권 인사라는 신선함에 ‘보라색’ 코드를 입은 강 전 장관은 주가가 치솟으며 선거판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 전 장관의 출마선언 이후)일주일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 대변인의 예고대로 강 전 장관은 4월 5일 정동극장에서 ‘극적인’ 출마선언을 시작으로 화려한 수사학을 선보이며 이미지를 빚어나갔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경계를 허물겠다며 보라색을 강조하는가 하면 청계천에서 이명박 대신 전태일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며 이목을 끌었다. 이 일련의 행보는 강 전 장관에게 ‘세련된’이미지를 선사했다. 전략이 먹혀들어가며 현장에선 강 전 장관의 승리가 이미 결정된 것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의 기세는 '맞불'을 놓은 오 전 의원에게 꺾인다. 이미지 대결서 보라색 ‘강(康)풍’은 ‘오(吳)풍’에 막혀 서서히 잦아들었다. 오 전 후보는 경선 흥행 바람을 타고 단숨에 지지율을 따라잡고 역전했다. 이후 한번 뒤집힌 판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갤럽>, <미디어리서치> 등이 2006년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일 강 전 장관은 43.1%를, 오 전 의원은 41.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후 13일에는 오 전 의원(43.6%)은 강금실 전 장관(39.9%)을 오차범위내서 앞섰으며, 5월 3일에는 28.5%(강 전 장관)대 54%(오 전 의원)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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