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친 MB 심판론…‘야권단일화 승리’
스크롤 이동 상태바
몰아친 MB 심판론…‘야권단일화 승리’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4.23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⑤2010지방선거下>야당 승리로 MB ‘휘청’ 한나라당 ‘위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 2010년 지방선거에는 '야권 단일화'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 뉴시스

이상한 선거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누구도 예상 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승리를 예측했던 한나라당이 민주당에게 ‘참패’했다.

한나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자리 중 6개만 차지했다. 민주당에게 11곳을 뺏겼다.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35개 중 강남3구와 중랑구를 제외한 31곳을 민주당에게 내줘야만 했다.

한나라당으로선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5%를 웃돌았고, 정당지지율도 39.7%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의 정당지지도는 27.9%였다. 우위를 선점한 상황이니, 여당의 무덤이라 불리는 지방선거지만 한나라당은 승리를 기대했다.

서울시장 경선에선 원희룡·나경원 의원을 내세워 흥을 돋웠다. 경선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싱겁게 선출되자 재선이 거의 확실시됐다.

민주당에선 한명숙 전 총리를 내세웠지만, 오세훈에겐 약한 상대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지지율이 한명숙보다 10%~25% 높게 나왔다. 오세훈이 가볍게 서울시장 재선에 올라서고 2012년에 있을 대선까지 내다봤다. 오세훈도 그걸 알았는지 경선 상대로 올라온 나경원에게 “2012년 대선에 서울시장 자리가 빌 것이니, 그 때 보궐선거로 나와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가 나왔다. 오세훈이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오세훈은 47.4%를 기록했고 한명숙은 46.8%를 기록, 단 0.6%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다.

▲ 야권단일화를 하지 않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표가 서울시장 선거 승패를 좌우했다 ⓒ 뉴시스

MB 휘청거리게 만든 '야권 단일화'의 힘

한나라당을 실망시킨 2010년 지방선거결과는 ‘야권 단일화’의 승리임이 자명했다. 선거 구도에서 양자대결로 흘러가게 되면 ‘정권 심판론’을 펼치기 쉽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MB 정부는 출범 2년 4개월이 지날 때였다. 정권의 절반이 지날 무렵이었다. 마침 4대강 사업으로 논란이 일던 MB정부에 대한 정권심판론이 일기 좋은 시기였다.

민주당은 20%를 넘지 않는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대로 흘러갔다간, 정당지지율 40%를 넘는 한나라당에겐 상대가 안됐다.

민주당은 야권에서 진보신당을 제외하고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등과 함께 단일화를 했다. 결과는 민주당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단일화를 하지 않은 진보신당이 서울시장 선거 승패를 좌우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3.3% 득표율을 얻었다. 0.6% 차이로 진 한명숙에겐 승리를 이끌고도 남을 표였다. 하지만 단일화를 이루지 않아 한명숙은 패배했다.

민주당이 승리하게 된 이유엔 ‘전략적 투표’도 한 몫 했다. 전략적 투표란 투표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투표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을 투표하는 게 아니라 다른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투표하는 행위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전략적 투표행위가 여실히 드러났다. MB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그다지 낮지 않았지만 반감이 더 심했다. 야당에게 쏠린 표는 ‘민주당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MB의 국정운영이 싫어서’가 많았다.

당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등 야당이 잘해서’는 11%에 불과한데, ‘한나라당·MB가 잘못해서’는 79.2%에 달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년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5월 23일은 노무현 서거 1주년 노란빛으로 물들었던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극에 달했다. 그 향수는 MB에 대한 반감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심은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2010년 지방선거는 54.5%를 기록했다. 2010년 지방선거 바로 전 선거인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46.1%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는 20~30대의 젊은 층의 투표율 증가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여론조사 당시 ‘잘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부동표 15%가 막판에 야당 쪽으로 투표했기 때문에 여론조사와 투표율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MB에 대한 반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선거였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후 레임덕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MB가 휘청거리자 한나라당도 위기를 맞이했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 뉴시스

2010년 지방선거가 낳은 ‘라이징 스타’

2010년 지방선거는 차기 대선 주자들의 발판이 됐다. 여야의 잠룡들이 지방선거를 통해 두각을 보이며 대권을 향한 입지를 마련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전에서 민주당은 유시민 전 장관을 앞세웠지만 재선이었던 김문수 도지사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김문수는 유시민을 꺾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재선 위엄을 보였다. 김문수는 경기도 민심을 확인, 자연스럽게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충청도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충남도지사의 경우 재선이 유력하던 이완구 지사가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발, 12월 초 지사직을 사퇴했다. 끝내 이완구는 차기 충남도지사에도 나오지 않았다.

빈자리는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보수당인 자유선진당 세가 강한 충청도에서 민주당이 당선되긴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안희정은 친노계의 떠오르는 샛별처럼 위력을 과시했다.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과 대결을 펼쳐 2.6%차이로 당선됐다.

젊음과 안정을 강조한 안희정은 충남도지사를 발판삼아 차기 대권 주자까지 우뚝 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