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단④> 배낭 찾아 역주행…논산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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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단④> 배낭 찾아 역주행…논산으로 변경
  • 최치선 자유기고가
  • 승인 2014.05.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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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논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치선 자유기고가)

배낭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순간 멘탈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니 정류장 의자에다 배낭을 벗어놓은 것이 기억났다. 동시에 핸들을 180도 회전해서 역주행을 시작했다. 꽤 긴 거리를 내려왔으니 반대로 한 참을 올라가야 한다. 얼마나 거슬러 가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오직 배낭만 제자리에 있기를 바라며 페달을 밟았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수많은 차들이 나를 향해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위협했다.

머릿속에서 9시뉴스에 나온 역주행사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두 눈에 힘을 주고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차들을 피해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는 말이 맞나보다. 그렇게 아프던 허벅지와 엉덩이도 위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마침내 정류장에 도착했다. 의자엔 남청색배낭이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보자 마치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그대로 있음에 다시 한 번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배낭을 매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주고 페달을 밟으려는데 자전거가 꿈쩍을 하지 않는다. 내 딴엔 다리에 힘을 준다고 줬는데 전혀 에너지가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경사진 구간을 걸어야 했다.

역주행을 한 탓에 이미 논산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다시 한 번 경솔함을 탓해보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싶어 ‘난 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걷다 타다를 반복하다 내리막길이 나오자 내 몸이 반응을 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적당한 속도로 내려가는 기분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배낭을 찾은 곳에서 역주행을 시작한 곳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시간과 체력을 두 배로 소모한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것을 보며 오늘 일정은 논산에서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이없는 실수로 목표한 전주가 아닌 논산으로 변경하는 것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도로를 달리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 역주행 하면서 갖게 된 엄청난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피곤함을 일시에 날려버리게 만든 수박집

    
하지만 진짜 위안은 딴 데 있었다. 갈증이 심하게 나서 물 파는 곳을 찾는데 눈앞에 수박2~3통에 만원이란 현수막이 보였다. 홀린 듯 수박 파는 곳으로 내 몸이 빨려 들어갔다. 인심좋게 생긴 여주인이 웃으며 반겨준다.

“수박 한 통만 주세요.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거로.”

그러자 여주인은 우선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다.

“냉장고 있는 것은 시식용밖에 없는데요. 괜찮으면 조금이라도 드세요.”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수박 반통이 내 앞에 놓였다.

시원한 수박은 당도도 아주 뛰어났다. 게눈 감추듯 정신없이 먹는 보습을 보고 여주인이 웃으면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 여주인이 시원한 수박 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 주었다. 그동안의 갈증과 피로가 싹 날라가는 순간이었다. 완전 감동이었다.


“국토종단 하면서 세월호 참사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여행하기 안전한지를 취재하고 있어요”라고 답하자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러게요. 생떼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잃고 부모들이 얼마나 애간장이 녹을까 생각하면 맘이 아프고 끔찍해요. 아무튼 무탈하게 다니시고”라고 한다.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수박껍데기까지 먹을 정도로 박박 긁어 먹으니 그제야 갈증이 풀렸다.

일어나면서 한 통값을 드리려고 하니 여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시식용 반통을 먹어버렸으니 돈을 드리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3천 원을 설문지와 함께 내밀며 여주인에게 가족이나 주위 친구분들하고 같이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조심해서 종주 잘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하세요.”

여주인의 환대와 배웅을 받으며 다시 힘을 얻은 몸은 방전된 밧데리가 충전되듯 허벅지와 다리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고 발은 논산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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