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치선 자유기고가)
꿀수박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논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에는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시간도 이미 6시가 훌쩍 지나 주위의 빛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밧데리는 이미 방전 되어서 라이트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논산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표지판의 숫자는 아직 28킬로를 남겨둔 상태였다.
속도는 더 이상 나지 않고 몸은 몸대로 무거워져서 과연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도로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스마트폰의 밧데리도 방전되어서 시간도 알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경젹을 울리고 스치듯 지나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러다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자 더 이상 페달을 밟기가 힘들었다. 결국 가장자리 쪽으로 바짝 붙어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꽤 오래 걸었는데 다음 표지판은 26킬로를 가리켰다. 차들의 질주하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고 헤드라이트가 아니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다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오늘 안으로 도착은 힘들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배낭을 뒤져 보았다. CNP바이크에서 준 자전거용 헤드라이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라이트를 찾아서 건전지를 넣고 핸들에 장착했다. 스위치를 누르니 전방이 환해졌다. 그 순간 걱정이 사라졌다. 이 정도 밝기면 논산까지 달리는데 어려움은 없을 듯 싶었다.
페달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몇 시간을 달려 논산 5킬로라는 표지판이 보였을 때 모텔 표시가 멀리서 반짝거리며 빛났다. ‘이젠 살았구나’라는 말과 동시에 온천 표시를 보자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나도 모르게 저 곳에서 허기와 피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텔 안으로 들어서자 사장인 듯한 여자가 웃으며 반겨준다. 자전거 때문에 1층에 있는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니 답도 없이 앞장선다. 일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용한다는 방은 작았지만 혼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다만 온돌에 불이 안들어와서 혹시 춥지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었다.
친절하게 안내해 준 여사장이 나가면서 식사는 했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가 온 상태라 주저없이 안했다고 답하면서 어디 맛있게 하는 데를 아냐고 물어봤다.
“지금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옆에 기사식당이 유일한데 맛은 보장 못해요.”
사실 맛을 따질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자전거를 들여놓고 밖으로 나왔다. 모텔 옆에 000기사식당이란 간판이 보였다.
백반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큰 소리를 내며 다투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질 놈이 없다는 게 그들을 화나게 한 이유였다.
“당연히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지. 한 두 명도 아니고 300명이 넘게 죽었는데...해경놈들도 중대본도 국회의원놈들도 다 똑같아. 진심이 안보이잖아. 모두 형식적이야. 사과도 대책도 수습하는 것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야. 썩어도 너무 썩었어. 대통령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엄벌해야 되는데 그게 가능할까?”
“대통령이 무슨 죄야. 선장부터 세월호를 운항시킨 청진 해운 사장하고 돈먹고 눈감아준 관피아 그리고 유병언인가 하는 놈들이 죽일놈이지. 대통령이 신도 아니고 사고를 미리 알 수는 없는 노릇 아냐.”
그들은 세월호 대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론을 놓고 언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도 결론이 쉽게 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대화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밖에 나갔던 다른 동료들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세월호에 대한 책임론은 들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와 설문지를 사장 부부에게 건넸다. 그러자 부부는 안으로 들어와서 한 잔하자고 권한다. 내일 아침 라이딩이 걱정됐지만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바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내 생일이었기에….
작은 주방에는 식탁과 주방기구, 냉장고 등이 꽉 차 있었다. 사장부부가 권하는대로 자리에 앉았다. 안영모라고 하네. 와이프는 팽애란이고. 50대 중반인 안영모 사장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술이 몇 잔 돌자 분위기는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 사이가 된 것 같았다.
흰머리가 많지만 얼굴이 동안인 안 사장은 자전거 여행하는 내가 부럽다면서 이것저것 물어 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요? 왜 자전거를 타는데요?”
“여수까지 갑니다. 자전거는 우리나라 도로에서 가장 약자니까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여수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그동안 안전불감증에 걸린 대한민국 정부에게 안전한 여행을 촉구하는 국토종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같아. 더 이상 어이없이 안타깝게 죽는 국민들이 없어야 하는데….”
팽 여사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설문지를 받아 든 부부는 이메일로 답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술을 마시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얘길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팽여사가 마침 미역국 끓여 놓은 게 있으니 한 그릇 먹어보라고 한다.
잠시 후 그녀는 미역국과 함께 정력에 좋다는 유정란 토핑을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안 사장은 나에게 잘 어울릴 만한 선물이 있다며 바람처럼 나갔다 왔다. 그는 레저용 선글라스를 들고 나타났다.
“이 놈이 정말 재밌어. 여길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데 세 번 누르면 사이키 조명처럼 깜빡거리고 수평이 안되면 사이렌이 울려서 조난 신호를 보낸다니까.”
“이렇게 귀한 걸 저한테 주시려고요?”
“아, 나한테는 필요가 없어. 요놈은 최 기자 한테 딱이야. 한 번 써봐”
얼떨결에 안경위에 선글라스를 썼다. 그러자 안 사장은 안경알을 위로 젖히면서 웃는다.
“이게 안경알을 위 아래로 열고 닫을 수 있어서 편해.”
거듭해서 잘 어울린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너무 감사하다고 잘 쓰겠다고 항상 기억하겠다고 했다. 부부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신혼 같았다. 비결이 뭐냐고 묻자 안 사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이 사람 아들처럼 굴어. 첨부터 지금까지 항상 내가 껌딱지처럼 쫒아다니거든.”
팽 여사 역시 이 말에 기분이 좋은지 그냥 웃기만 한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담근지 10년이 넘었다는 정체불명의 술까지 마시니 취기가 올라왔다. 내일 전주를 지나 남원, 곡성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그만 일어나야 했다.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팽 여사가 아침에는 늦잠을 자기 때문에 배웅을 못하니 이해하라고 한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사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다.
방으로 돌아오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부의 배려와 친절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첨보는 사람한테도 정을 나눠주는 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인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해 그토록 많은 인명을 왜 수장시켰는지 답답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