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치선 자유기고가)
어제 마신 술때문인지 갈증과 두통이 심해서 눈을 떴지만 잠을 깨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누운 채 시간을 보니 7시가 조금 넘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을까?’ 뒤늦은 자책을 하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씻고 자전거 충전을 확인하고 라이딩 준비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왔다. 사장 부부는 안내실에 없었다. 어제 팽 여사가 아침엔 늦잠을 자니 배웅하지 못할거란 말이 떠올랐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인사드리기로 하고 모텔을 나섰다. 날씨는 아침이어서인지 좀 쌀쌀하고 흐렸다. 해장을 하지 못한 탓에 속이 쓰리고 몸도 무거웠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라이딩이 걱정되었다. 오늘은 논산에서 전주와 남원을 지나 기차마을인 곡성까지 가야 한다. 약 130킬로 가까이 되는 거리다. 네이버 자전거 시간을 검색하니 8시간이 나온다. 안 쉬고 20킬로로 달려야 가능하다.
전기동력이 살아있는 약 3시간 60킬로까지는 어느 정도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무리다.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 일단 달리기로 한다. 페달을 힘차게 밟고 평지는 가능한 전기스위치를 꺼놓았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거의 기어가다시피 천천히 움직였다.
시간은 12시. 9시가 안돼서 출발했으니 3시간 조금 넘게 달린 셈이다. 논산에서 익산까지 오는데 이정도면 오늘의 목적지 곡성까지는 저녁 늦게나 도착할지 모른다. 컨디션도 시간이 갈수록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고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몇 시간 후의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허기부터 해결하는 게 급했다. 식당을 찾아서 열심히 움직인 결과 꽤 맛있어 보이는 추어탕 집을 발견하고 잠시 라이딩을 멈추었다.
식당은 제법 운치 있는 곳에 숨어 있었다. 더 안쪽으로는 저수지도 보였다.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추어탕을 시켰다. 마당과 정원에는 꽃과 나무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고 정원 가운데에는 고전적인 그네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추어탕을 시키고 그네를 타 보았다. 공주가 타는 그네 같아서 좀 멋쩍었지만 즐거웠다.
그네놀이는 잠시 후 10여명의 손님들이 나타나면서 끝났다. 고등학생들과 중년의 남녀들 그리고 노부부가 섞여 있는 모습이 가족들 같았다. 그들은 내 옆 테이블에 앉아서 닭백숙과 추어탕 등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내가 시킨 추어탕이 먼저 나와서 폭풍흡입을 하느라 처음엔 들리지 않던 말소리가 그릇을 비울 때쯤 들리기 시작했다.
“단원고 친구들 나하고 나이가 같아. 세월호 때문에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더 많이 생겼어. 선장, 선원, 해경, 기자, 공무원, 장관, 대통령 할 것 없이 너무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재수없어…. 불쌍해서 어떻게 해. 수백 명이 안에 있는걸 알고서도 들어가면 죽을까봐 안들어갔다니 그게 무슨 해경이고 구조대원이야. 내가 대통령이라면 침몰했다는 보고 듣자마자 직접 현장에 날아가서 구조하라고 명령했을거 같아.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장보다 높잖아. 그러면 해군 대장한테 직접 전화해서 당신이 목숨걸고 애들 구해내라고 하면 안들었을까? 무슨 블랙코미디 같아. 장관, 총리, 대통령 모두 다 한 참후에 나타나서 위로랍시고 한다는 게 얼굴만 삐죽 보이고….
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가지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라고 있는게 정부 아냐? 그런데 이게 뭐야? 300명이 넘는 국민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다 죽인거잖아. 이런 정부를 믿고 계속 공부하고 세금 바치고 그래야 하는 거야?”
학생복을 입은 여자가 어른들 앞에서 화난 목소리로 얘길 하는데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음식이 차려지면서 중단되었다. 나도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섰다.
전주까지 오는 동안 하늘은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무지개를 보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억울한 넋들이 좋은 곳으로 간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없이 이 생에서 못다이룬 것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