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최치선 자유기고가)
전주시에 들어섰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것은 세월호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이었다. 각 단체에서 내건 “세월호 피해자 모든 분께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 등의 현수막을 보면서 전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휴일임에도 도시는 조용했다. 아직 도시 외곽이라서 그럴 수 있겠지 싶었는데 시내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5월 1일~5월 10일)임을 감안할 때 세월호 여파는 상당히 컸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고 한 때 시나리오도 공부하고 영화전문지 기자와 영화인협회에서 협회지를 만들만큼 영화에 빠져있었기에 시간을 내서라도 경쟁작 한 편 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여수까지 완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맛의 고장 전주에 왔는데 콩나물 국밥이나 전주 백반 정도는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후배들과 먹었던 한국식당에서 7천 원짜리 백반을 시켰다. 밥과 찌개를 포함해서 30개의 그릇이상을 가득 채웠다. 두 공기를 금방 비워내니 포만감이 느껴졌다.
수정과를 마시면서 설문지 몇 장을 꺼내서 식사를 마친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건넸다. “시간이 없으시면 이메일로 답을 주시면 된다”고 하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문지를 훑어본다.
“고생이 많네요. 전주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3일째입니다. 오늘 곡성까지 가려고요. 그래야 내일 중으로 여수에 도착할 것 같아서….”
“세월호 참사는 절대 일어나서 안되는 사고였어요. 차갑고 캄캄한 바다 속에 갇혀서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부모 된 입장에서 정말 남일 같지 않아서….”
학생과 같이 온 듯한 중년 여자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1시간 넘게 배가 떠 있었다는데 어떻게 한 명도 못 구할 수가 있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구만요. 대통령 말 한마디면 군인이고 경찰이고 다 움직일 수 있는거 아닌가?”
여자 옆에 있던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 본다. 하지만 답을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똑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은 것인데…, 한 둘도 아니고 3백 명이 넘는 국민이 죽었는데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번엔 대학생인 듯한 청년이 나를 보며 따지듯 묻는다.
그들과 헤어진 후 나는 경기전과 한옥마을 지나 천천히 산책하듯 자전거를 끌고 남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30분 정도 걷다가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스마트 폰의 시계는 4시 10분.
곡성까지 73km 약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이제부터 쉬지 않고 달려야 10시 전에 도착할 수 있다. 다행히 바람도 불고 햇빛도 뜨겁지 않아서 라이딩 하기엔 최고의 날씨였다. 다만 저녁에 국도를 달리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일단 1차 목표는 곡성까지 하고 시간이나 체력적으로 힘들면 남원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유를 두고 달려야 뒤탈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임실과 오수를 지나 남원까지 오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결국 7시가 지나서야 춘향터널을 통과했다.
이몽룡과 춘향이의 고장 남원에 도착하니 주위는 어두워져 더 이상의 라이딩은 힘들었다. 결국 남원 시내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곡성을 지나 순천까지 가기로 목표를 수정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