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단⑩> 여수 엑스포역서 유종의 미를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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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단⑩> 여수 엑스포역서 유종의 미를 거두다
  • 최치선 자유기고가
  • 승인 2014.05.28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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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여수 35.14km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치선 자유기고가)

▲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한 후 국토종단 완료 인증샷을 찍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됐는지 7시 알람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는 9시 20분. 아뿔사 어제 계획대로라면 지금 여수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을 시간인데…. 몸은 무거웠지만 일어나야 했다. 서둘러 간단히 씻고 옷을 챙겨입고 라이딩 준비를 한 후 자전거를 끌고 모텔 밖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치곤 강렬했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찾아 꼈다. 늦었지만 순천까지 와서 국제정원박람회장을 안보고 갈 수는 없어서 입구까지만 가기로 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입구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현수막과 노란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노란 리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 듯 한참 동안 리본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세계 정원들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10시 30분. 지금부터 달리면 여수 엑스포역까지 35.14km를 3시간 후에 도착한다. 팔마로를 따라 20km를 쉬지않고 달렸다. 전기자전거 테일지T6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테일지T6덕에 무거운 몸으로 비교적 쉽게 달릴 수 있었다.

도로사정도 나쁘지 않았다. 황금연휴 마지막 날이라 올라가는 자동차는 많았지만 반대로 내려가는 차선은 비교적 한가했다.

그렇게 2시간 넘게 달리니 여천을 지나 여수 엑스포 역 표지판이 보인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다. 아직 1시가 안되었으니 성적이 좋은 편이다.

여수 시내가 눈앞에 보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가 걸렸다. 마침내 4박 5일간의 국토종단을 해낸 것이다. 아직 30분 정도 달려야 목적지인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할 수 있지만 기분은 이미 종단을 끝낸 것 같았다.

▲ 여수 엑스포역에서 인접해 있는 스카이 타워의 모습.

여수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팽목항까지는 1시간 거리다. 마음 같아선 그 곳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여수 시민들에게 남은 설문지를 돌려서 안전한 우리나라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했다.

아침을 안 먹은 탓에 어지럼증이 왔다. 결국 여수 엑스포역을 코 앞에 두고 이순신 광장의 먹자골목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마침 지난 2월 취재했을 때 맛보았던 서대회가 있었다. 서대회와 궁합이 맞는다는 여수 막걸리도 한잔 마셨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국토종단을 무사히 마친 자축의 뜻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목적지인 여수 엑스포역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약 30분 동안 페달을 밟는데 이전 라이딩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바닷바람의 향기를 코끝으로 맡으며 나도 바람이 되고 싶었다. 눈앞에 여수 엑스포역이 보이자 행복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엑스포역에서 인증 샷을 찍고 싶어 지나가는 학생한테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준 학생이 자전거 깃발을 보고 “서울서 여기까지 저 자전거로 오셨냐”고 묻는다.

“네. 이제 막 도착한 거에요. 4박 5일만에”라고 답하자 엄지를 치켜세우며 ‘짱’이다 한다. 완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설문지를 건넸다. 학생이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나도 여수 엑스포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여수 엑스포 개막식 전 프레스 초청으로 취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낯설진 않았다. 입구에 설치된 대형 천장의 커다란 디지털 바다에는 세계 각국의 상징들이 몽환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엑스포의 상징은 화려한 빅오쇼와 아쿠아리움, 스카이 타워라 할 수 있다. 저녁차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빅오쇼를 관람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3시 20분. 5시 30분차를 타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방에서 설문지 남은 것을 꺼내 엑스포관람객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설문지를 건네면서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바쁘다고 거부하던 사람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설문지를 받았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귀찮을 법 한데도 세월호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이미 한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 여수 엑스포역에 정차되어 있는 KTX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좋은 일 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겨서 어린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장 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라며 “기자 양반이 속시원허게 밝혀주소”한다.

설문지를 받아든 학생도 “기자 아저씨. 저희가 볼 때도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까지 1시간 넘게 수면 위에 떠 있었는데 왜 구조를 안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TV에 나온 거 보면 해경도 적고 해군이나 다른 구조대도 보이지 않고 정말 이상한 건 왜 배안에 갇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따지듯 묻는다.

1시간 남짓 설문조사를 마친 후 근처에 있는 만성리 검은모래 해수욕장을 가기로 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았으나 자전거로 달리면 충분 한 거리였다.

일제 때 징용된 조선인들이 뚫었다는 바위 터널을 지나자 별천지가 나왔다. 레일바이크가 달리는 철로 옆으로 파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와 10분쯤 달리자 검은모래해수욕장 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이 펼쳐졌다.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시원한 캔 맥주 하나를 마셨다. 잠깐이었지만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차가운 바닷 속에 가라앉은 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들이 생각났다. 더 이상 바다에 있기가 싫었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면서 몸이 오싹 움츠러들었다. 나쁜 기운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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