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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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빨
  • 이해인 기자
  • 승인 2010.05.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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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이방인’은 없다
‘《타임》선정 100대 영문 소설’에 뽑힌 제이디 스미스의 데뷔작
 
"모든 것이 그렇듯 치아 문제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단다. 청결하고 하얀 치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 예를 들면, 내가 콩고에 있을 때 흑인 놈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것이 바로 하얀 이빨이었어. (중량) 흑인들은 그 하얀 이빨 때문에 죽었다. 불쌍한 것들. (중량) 아니, 오히려 내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지, 달리 본다면."
 

▲ 제이디 스미스 장편소설 '하얀이빨 1'     © 시사오늘

본래 하얀 이빨(White Teeth)은 “검은 피부에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라는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차별이 굳게 뿌리박고 있는 단어다. 특히 인간의 치아를 표현하는 ‘이’가 아닌 동물의 치아를 표현하는 ‘이빨’을 쓴 것을 보면 그 사상을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다.
 
눈치 챘을지 모르지만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의 ‘하얀 이빨’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문제들인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하얀 이빨’이 주목 받는 이유는 이들 문제를 양지를 끌어냈다는 것에 있지 않다.
 
‘하얀 이빨’로 상징되는 검은 피부의 이주민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그 자리로 불러들인 이들과 함께 역사의 일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방인’에 불과 했던 ‘하얀 이빨’은 영국 사회에 새로 난 이와 같으며, 서로에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가 새로 날 때 아픔을 겪는 것처럼 고통과 갈등을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해준다. 또한 그 모든 아픔과 갈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커져야 함을, 우리 모두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작가 제이디 스미스는 영국 북부 브렌트 구에서 자메이카 이민자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 되던 해인 2000년에 완성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독자와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즉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새로운 살만 루슈디’, ‘포스트모던 찰스 디킨스’ 등의 별명을 얻었다. 특히 이 작품은 2006년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되었는데, 2006년을 기준으로 근래 20년간 신인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타임지의 100편의 영문소설 중에 선정된 경우는 ‘하얀 이빨’을 제외하고는 단 한 편도 없다.

그는 이 책을 발표하며 “나는 인종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썼을 뿐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다.『하얀 이빨』은 피부색이 다른 영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 피부색이 뒤 엉켜 시쓸벅적 살아가는 영국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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