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의 '속도위반' 성공 비결, '품질'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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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의 '속도위반' 성공 비결, '품질' 우선주의
  • 방글 기자
  • 승인 2015.04.05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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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STORY (1)>장자의 恨 품고, 재계 2위 '도약'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방글 기자)

'실패와 좌절, 그리고 도전.'

성공한 CEO들의 'STORY'에 반드시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받아들기까지 숱한 영욕의 세월을 겪었다. 힘든 시련의 시기를 극복, 오늘날의 위치로 기업을 만든 주인공들. CEO 성공의 변곡점을 <시사오늘>이 찾아봤다. <편집자 주>

▲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춘>은 현대차의 발전과 관련 “속도위반 딱지를 뗄 정도”라고 표현했고 그 중심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 정몽구 회장 캐리커쳐 ⓒ 시사오늘

세계 자동차업계 big5의 수장/국내 재계 순위 2위의 주인/정주영 왕회장의 장자.

모두 현대차그룹의 회장인 ‘정몽구’를 둘러싼 단어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이 많은 수식어를 ‘70평생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정 회장은 2000년 3월, 현대그룹에서 벌어졌던 ‘왕자의 난’을 ‘70평생 가장 힘든 시절’로 기억한다.

물론 재계 1위 시절 현대가의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는 시선은 여전하다. 다만, 동생인 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뺏기는 치욕을 겪고도 분리된 현대차를 이만큼 성장시킨 중심에는 오롯이 정몽구 회장이 있다.
 
1995년 12월, 현대그룹 후임 회장으로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회장이 내정됐다.

인천제철 사장을 지낸 정몽필 장남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장자가 된 정몽구 회장이 유교적 전통이 강한 현대그룹의 회장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대권도전에서 실패한 정주영 회장의 급작스런 발표에 당시 재계는 소란스러웠다.

여기에 형인 정몽구 회장이 현대그룹의 수장 자리에 있으면서도 사실상 정몽헌 그룹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모양을 띄면서 ‘왕자의 난’은 예고된다.

실제로 당시 업계에서는 ‘정주영 회장의 의중에는 정몽헌이 있지만, 장자 배려 차원에서 정몽구가 회장자리에 앉은 것’이라는 뒷말이 나돌기도 했다.

1998년, 정몽구‧정몽헌 형제가 함께 그룹 회장직에 앉으며 왕자의 난이 조짐을 보였고, 2000년 3월, 불안한 투톱 체제를 끝내기 위한 태풍이 현대家에 몰아친다.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보내는 보복성 인사를 강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하루 뒤, 정몽헌 회장은 인사보류를 지시하고 정몽구 회장과의 전면전을 시도한다.

현대그룹 전체가 흔들린 ‘왕자의 난’의 진화에 나선 것은 정주영 왕회장.

두달 뒤, 왕회장은 직접 나서 ‘3부자 퇴진’을 선언한다.

하지만 왕회장의 ‘3부자 퇴진’ 선언이 정몽헌 측의 꼼수라고 판단한 정몽구는 “자동차 사업에 전념하겠다”며 퇴진을 거부한다.

결국 승리자는 동생 정몽헌.

2000년 9월, 정몽구 회장은 1997년 인수한 기아차를 포함한 자동차 관련 계열사만 들고 현대그룹에서 내쫓긴다.

이 사건으로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현재의 현대그룹(정몽헌)과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현대중공업(정몽준), 현대백화점(정몽근), 현대BNG스틸(정몽우), 현대해상화재보험(정몽윤)으로 갈기갈기 찢겨진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이때부터 광폭행보를 시작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독자 경영체제로 분리된 2001년 현대차의 매출액은 20조 원을 넘어섰고, 순이익만 1조1650억 원을 올린다. IMF 직후 현대차가 적자 상태에 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시기 ‘순이익 1조 원 시대’는 혁신이었다.

1998년 분리경영이 시작되기 전 매출이 8조6980억 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도 3년새 2배 이상 껑충 뛴 셈이다.

독자경영 10년만인 2010년에는 시가총액 100조 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매출 43조 원을 달성한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춘>은 현대차의 발전과 관련 “속도위반 딱지를 뗄 정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가 15년을 이어오면서도 성장을 거듭한 것은 외형적 성장에 그친 것이 아니라 ‘품질’을 앞세운 데 있다. 품질향상이 판매로 직결돼 ‘속도위반’의 결과를 가져온 것.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동차 평가기관인 JD파워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8년 257점이던 현대차의 IQS(초기품질지수)는 2000년 189, 2003년 143으로 오르더니 2004년 102점을 얻어 도요타(101점)에 이어 2등을 차지한다.

IQS지수는 신차를 구입한 지 3개월이 지난 고객을 대상으로 135개 품목에 대한 품질만족도를 집계한 것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2009년에는 IQS 95점을 기록하며 1위로 올라섰으며 지난해에도 94점을 획득,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인 도요타(105)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3위는 기아차(106)가 차지해 다시 한번 품질경쟁력을 입증했다.

정몽구의 현대차는 제철의 발전과 함께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철강 사업과 관련, “철은 자동차의 쌀”이라며 “제철업은 최소 백 년 이상 가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이와 함께 최근 매입한 삼성동 한전 부지를 바탕으로 국내 자동차 업계에 ‘제2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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