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저는 친노가 확실하고 친노라는 딱지를 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먼저다>(2012년, 문재인 지음)
문재인은 친노(친노무현)라는 딱지를 떼지 않고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설 수 있을까? 국민들은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NO'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48%의 대통령'의 모습은 '친노 수장 문재인'이 아니라 '정치인 문재인'이었다.
당은 내홍을 겪고 있다. '퇴진론'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책임론'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노(비노무현)로 분류되는 주승용 최고위원은 지난 4일 재보선 후 처음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문 대표를 겨냥해 "재보선 참패는 친노 패권정치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고 발언했다.
'집토끼'도 잃었다. 광주 서구을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당한 일격은 문 대표의 폐부를 찔렀다.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조영택 전 후보는 '참여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맡은 바 있는 친노 인사다. '민주당'의 심장, 광주는 친노를 버렸다. 노무현 정권 이후로 당권을 잡은 친노 세력이 호남을 철저히 소외시킨 대가였다.
위기에 놓인 문재인 대표가 가야할 길은 이제 분명해졌다. 바로 '탈노(脫盧)'다. 노무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脫), 그의 유산을 제대로 넘겨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 없이는 내년 총선은 물론, 나아가 대선도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탈노(脫盧)', 언제쯤?
문재인 대표는 당대표 취임 이후 계파 청산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친노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허언이 아니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계열로 분류되는 추미애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혔고, 기존 3명이었던 상근부대변인을 7명으로 늘려가면서 각 계파별 인사를 골고루 앉혔다.
하지만 '요직'에는 친노를 앉혔다. 문 대표는 지난 2월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 핵심 인사 김경협 의원을, 선거 전략을 기획하는 전략기획위원장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대변인을 맡은 진성준 의원을 임명했다. 비노계는 강력 반발했다.
안철수 의원은 "문 대표의 권한과 책임으로 인사한 것이니, 거기에 따른 책임을 생각하고 한 게 아니겠느냐"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2·8전당대회에서 문 대표와 경쟁했던 박지원 의원은 SNS를 통해 "세상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언제까지?"라고 언급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핵심 당직자는 이를 두고 "무늬만 탕평이다. 친노라는 주류의 발이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당내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친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되레 친노에 휘둘리고 있다고 말한다. 문 대표가 '탈노'를 시도하려 할 때마다 그의 주변 인사들이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것.
'인간 문재인'의 훌륭한 인품은 정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고, 또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 문재인'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다. 사람을 너무 챙기다보니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강직한 성격 탓에 '옳고 그름'만 따지려들 뿐, '수 싸움'에 서투르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지난 주말 기자와 만난 한 국회 관계자는 "수장이라기보다는 휘둘리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표 주변 사람들이 여의도 정가에서 '목이 뻣뻣'하기로 여간 유명한 게 아니다"라며 "문 대표는 문재인의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의 주변 인사들로 인해 친노의 정치를 대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486세대' 이인영 의원은 지난달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문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를) 넘어가려고 하는데 (친노가) 그걸 가로막는다면 친노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친노에 얹혀있는 문재인' 이미지를 빨리 털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탈노(脫盧)'는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는 과정 속에서 전개될 전망이다. 문 대표는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누구를 탓할 것 없이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 길게 보면서 더 크게 계획하고 통합하겠다"며 '통합' 비전을 제시했다.
'동교동계' 설훈 의원은 5일 PBC<열린 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서 "당이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문재인 대표가 주류, 비주류 구분하지 말고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권 주자 아닌 당대표의 모습 보여야"
탈노와 더불어 대권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48%의 지지를 받았던 자신이 다가올 총선에서 직접 유세에 나선다면 승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대표 출사표라기보다는 지난 대선에 대한 추억을 자극하며 인지도를 내세우는 전략이었다.
당대표 취임 직후 문 대표의 첫걸음은 박정희 묘소 참배였다. 누가 보더라도 제1야당 대표로서의 행보가 아니라, 대권 주자의 행보였다. 당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대신, 외연을 확대하는 모습이었다.
비판이 이어졌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첫날부터 대선주자 행보를 하면 안 된다.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이유는 없다"고 꼬집었다. 진보진영 '국민모임'은 "민주주의 철학 부족에서 빚어진 대중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며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기자는 문 대표가 너무 대권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에도 차기 대권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논란이 됐었는데, 대권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당대표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체성을 버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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