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청년 세대, 소외된 '피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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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청년 세대, 소외된 '피카족'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5.17 01: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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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피시방·카페 찾는 취업준비생, 왜?
"도서관 다녀오겠습니다"…"15시간 충전이요"
"눈치 주니까 하루 2~3군데 카페 옮겨 다니죠"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청년 무기력하게 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암울하다. 경제 성장 둔화에 따라 청년 노동력이 급격하게, 그리고 집단적으로 노동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높은 청년 실업률은 곧 청년 계층의 경제적 능력 상실로 이어진다. '삼포세대'는 이제 '칠포세대'라고까지 불린다. 세상은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한 잔의 축배' 대신 '한 잔의 눈물'을 마셔야 할 때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현실은 더 고통스럽다. '세 잔의 눈물'은 마셔야 '덜 아픈 청춘'이 될 수 있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 1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청년 계층(15~29세)의 지난해 실질실업률이 31.8%로 나타났다. 청년 셋 중 하나가 취업을 포기하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학원가, 도서관 등을 다니면서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혈안이 돼 있거나,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시의 길'을 걷는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청년들도 있다. 집에서는 압박을 준다. 친구들을 만나기는 창피하다. 이력서를 하루에 50장 씩 써도 연락 오는 곳이 없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른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의욕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답이 안 나오는 현실이다. 취업을 포기한 것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닌 청년들, 그들은 주로 '피시방(PC방)'과 '카페'를 전전한다.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편하게 있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어쩌면 그저 숨어버리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암울한 청년 세대 가운데서도 그들은 빛조차 안 보이는 '심해'에 자리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려다 좌절을 겪은 청년들이 피시방이나 카페에 몰리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요즘 들어 특별한 직업 없이 피시방을 장기간 이용하는 2030세대들을 둘러싼 폭행 사건이 잦다. 카페를 이용하는 청년들과 자영업자 간 갈등도 예사롭지 않다. 관심이 절실하다.

<시사오늘>은 '피시방(PC방)'과 '카페'를 전전하는 청년 세대를 일명 '피카족'이라 명명하고, 그들을 밀착 취재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유모 씨(28)를 지난 16일, 그리고 서울대 근처에서 자취하는 강모 씨(34)를 지난 12일 만났다.

▲ 피시방, 카페 ⓒ 뉴시스

"폐인이요? 하루에 이력서를 몇 장이나 쓰는 줄 아세요?"

유모 씨는 매일 아침 "도서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가방은 토익, 상식 등 취업 관련 서적으로 가득하다. 어깨가 무거워서일까. 유 씨는 오른손으로 연신 목 뒤를 주무른다. 왼손에는 점심으로 챙겨먹을 도시락이 들려있다. 누가 봐도 취업준비생이다.

그러나 이어폰을 두 귀에 깊게 꽂고 모자를 푹 눌러쓴 유 씨의 발걸음은 집 근처에 있는 고양시립 M도서관 앞을 지나친다. 큰 길을 따라 쭉 내려가자 피시방과 입시 학원가 밀집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15시간 만 원' 같은 피시방 홍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그는 이내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R피시방에 들어섰다. 카운터에 있는 사장이 그를 잘 아는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유 씨는 지난 1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R피시방에 출석했다.

"저 몇 시간 남았어요? (2시간요) 15시간 충전해주세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를 골라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은 유 씨는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채용사이트에 접속한다. 새로 올라온 채용 공고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인', '잡코리아' 등을 살피던 그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인가 적는다. 이력서를 내볼 곳을 따로 정리하고 있었다.

"야, 어디 쓸 만한 데 있냐?"

유 씨가 채용사이트를 뒤지는 새, 옆자리에 그의 친구 오 모 씨(28)가 앉으며 인사 대신 하는 말이었다. 유 씨의 수첩을 공유한 두 사람은 오전 내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처음에는 눈이 높았다. 학력도, 학점도, 어학 성적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유 씨는 대기업 채용 공고가 아니면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회의 벽은 그의 눈보다 훨씬 높았다. 연이은 낙방 소식에 좌절한 유 씨는 기업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원서를 넣고 있다. 중소기업도 만만찮다. 유 씨는 중소기업 채용 시장은 신입보다는 경력을 선호하고, 고학력자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키보드 앞에 꺼내고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FIFA 온라인', '디아블로3', '아이온' 등 각종 온라인 게임을 함께하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이력서를 작성할 때 표정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막말로 그러면 되겄어? 막말로 말이야. 돈을 얼렁 갚어야지."

R피시방이 떠들썩하다. '막말로'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는 전문 스포츠토토꾼으로 R피시방의 유명인사다. '따는 날'에는 짜장면을 시키고, '잃는 날'에는 컵라면으로 때운다. '막말로'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거친 언행이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 유 씨와 오 씨는 그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와 같은 '막말로' 인생이 될까 우려했다.

저녁을 굶은 두 사람은 8시 쯤 피시방 앞 편의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맥주 피처와 과자 한 봉지로 저녁을 대신했다. 8~9시쯤 되면 이곳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기자가 '나도 당신들 나이에 첫 직장을 겨우 구했다. 힘들 때라는 걸 알지만 너무 스스로를 놓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제넘은 얘기를 하자 유 씨는 말했다.

"폐인이죠. 내가 생각해도 한심해요. 그래도 제가 하루에 이력서를 몇 장이나 쓰는 줄 아세요? 많이 쓸 땐 50개도 써봤어요. 아무 회사라도 들어가고 싶어요. 저도 일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네요. 좀 적게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도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면접이라도 좀 가봤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은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서 싫어요"

기자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취재는 가끔 들르는 단골 카페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서 우연찮게 시작됐다. 강모 씨(34)는 서울대 출신 페미니스트다. 기자와의 첫 만남은 지난 2010년 6월 '퀴어 문화 축제'에서였다. 커밍아웃 10주년을 맞이했던 배우 홍석천 씨를 위한 기념식이 함께 열려 당시 세간의 이목을 끌은 행사였다. 그곳에서 만난 강 씨는 자신감과 열정이 넘쳤었다. 기자와의 입씨름에서도 결코 샅바를 놓으려 하지 않았던 그였다. 5년 만에 재회한 그는 많이 변해있었다. 본인도 인정했다.

"많이 변했죠. 뭔가 뜨거움이 사라졌달까요. 먹고 사는 일에 치이다보니…."

강 씨는 서울대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 <노동과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토익 독해집은 그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있었다. 그는 구직 활동을 시도했지만 여성 운동 전력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어학 점수를 유지하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하지만, 막상 책상에 앉으면 여성 운동 서적에 자연스레 눈이 먼저 간다고 했다. 강 씨는 지금 한 여성지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 벌이는 시원치 않다. 그는 익명을 부탁했다.

모교 주변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강 씨는 이날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걸렀다. 카페에서 구매한 '아메리카노'와 초콜릿 쿠키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이곳 자리를 지켜야 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사장이 눈치를 주지 않는 몇 안 되는 카페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자리싸움이 치열하다고.

"다른 곳은 보통 오래 앉아있으면 눈치를 주잖아요. 그러면 하루 2~3군데 카페를 옮겨 다녀요."

카페에는 강 씨뿐만 아니라 취업준비생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여성이었고, 절반 정도는 취업 준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산만했고,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사실 카페라는 공간에서 '면학분위기'를 조성해준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왜 그들은 도서관 대신 카페를 택한 것일까. 강 씨는 자기 또래 미취업 여성들은 학교나 지역 도서관에 가길 꺼려한다고 말했다. 집 근처의 독서실을 잡거나, 카페로 오는 게 심리적으로 위안이 된다고 한다. 자길 바라보는 눈이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도서관이나 집 근처 도서관에 가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무슨 생각들을 하겠어요. 그 나이까지 뭘 했기에 여태 취업도 못하고 결혼도 못했느냐고 수근거릴까봐 두렵죠. 그래서 독서실이나 카페를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물론 단순히 탁 트인 장소를 선호한다든지, 공부보다는 다른 데에 관심을 더 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저와 같은 이유가 다수일 거라고 봐요. 요즘 좌절한 친구들이 많잖아요."

같은 카페에 있던 A씨(31, 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공부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뭘 해야 취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러니까 도서관 같은 데는 답답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남들은 전공 공부다, 공무원 시험이다, 어학 시험이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몰라요. 2~3년 취업 실패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 건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아요. 취업 시장은 '피드백'이 없잖아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청년 무기력하게 해"

강 씨는 좌절한 청년 세대가 피시방이나 카페 등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이루려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시기에 고용의 양적인 측면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 의식에 대해서도 여성이 많이 고용된다면 문제점이 해소될 것이라며 양적 확대에만 힘을 쏟았었죠. 그래서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천장이 사라졌나요? 지금 정부가 청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그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고용 창출이 의미가 있으려면 창출에만 그치려고 하면 안 돼요. 노동시장 유연화해서 일자리 늘리겠다는 얘기는 양질의 일자리를 해체해서 저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말이잖아요. 청년들이 기대할 수 있는 전망을 정부가 전혀 주지 못하고 있으니까 노동이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거죠. 무기력해지는 겁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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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wy 2015-05-17 12:01:43
또 있었군요. 나 같은 사람들이.

다같이 잘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