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관심 세대 20대...높은 투표율로 선거판 흔들어
‘No Vote? No Kiss!(투표 안한 애인에게 키스해주지 마라)’
6·2 지방선거를 5일 앞둔 지난 5월28일 민주당·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색 선거 운동을 펼쳤다.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사건 발표로 선거정국이 ‘북풍에 의한, 북풍을 위한, 북풍의 선거전’으로 흘러 상승세를 타고 있던 야당의 기세가 꺾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젊은이들에게 투표를 호소했다. ‘No Vote? No Kiss!’를 외치면서….
이날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홍익대와 인하대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젊은 대학생들이 투표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가 남은 2년 반 동안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그런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젊은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자리에 왔다”고 첫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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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대통령이 그간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추궁해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No Vote, No Kiss!, No Vote, No Job”을 외치기 시작했다. 야당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전개하고 있는 20대 투표 참여 독려 캠페인 ‘No Vote? No Kiss!’는 지난 2004년 미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위한 캠페인 ‘No Vote! No Sex!’ 캠페인을 한국 정서에 맞춰 각색한 것이다.
6·2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야 4당 합동유세단은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MB정부의 북풍을 평화론으로 맞섰고 그 평화론이 마침내 야간촛불유세로 이어지면서 젊은이들의 감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명숙 후보는 “지난 1997년 대선 때 투표율은 87%, 2002년 대선 때는 73%였지만, 2007년 대선 당시 투표율은 63%, 1년 후 18대 총선 투표율은 고작 46%였다”면서 “높은 투표율은 민주당 등 야당에 승리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월 2일 가족, 친구 등 많은 분들의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가자”며 “지금부터 (투표 독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자”고 덧붙였다.
6·2 지방선거에서 인천 시장에 당선된 송영길 당시 민주당 후보는 ‘No Vote! No Kiss!, No Vote! No Right!, No Vote! No Money!’를 외치면서 “투표를 안 하면 키스도, 권리도, 투표도, 일자리를 달라고, 할 권리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30대의 반란 때문이었을까.
6·2 지방선거의 개표가 시작되자 그간의 여론조사를 무색케 할 만큼 반전이 이뤄졌다. 천안함 발표 이후 한명숙 후보를 15~20%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던 오세훈 후보는 불과 한 후보를 0.6%차로 누르며 승리했다. 오 당선자는 스스로 “사실상 패배했다”고 토로했다.
송영길 후보는 인천시 입성에 성공했고 민주대연합론에 불을 지핀 유시민 후보는 김문수 후보에게 석패했다. 광역자치단체장 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66곳 중 단 1석을 당선시키는데 그쳤던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21곳을 이기며 압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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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우리는 달라!
‘20대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 20대들의 보수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대학생 강모씨(22·여)는 6·2 지방선거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동안 투표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던 강씨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투표장으로 대거 나온 이유는 뭘까.
“사실 예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냥 뉴스에서 보면 매일 싸우기나 하고 자신들의 권력욕에만 취해 있는 사람들 같았거든요. 중고교 시절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님들도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적인 말들을 많이 해서 정치인하면 그냥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체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보이지 않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냐”고 질문하자 강씨는 대뜸 헌법을 예로 들며 “우연히 행복추구권에 대해서 듣게 됐는데요. 첫 느낌이 ‘우리나라에 이런 아름다운 법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보드판에 행복추구권 조항을 붙여놓고 매일 하루에 한번씩 읽어요. 그러면서 나의 행복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나 스스로 행복을 찾겠다고 다짐하죠. 투표도 그런 생각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어 “우리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와는 확연히 달라요. 교육과정부터 달랐잖아요. 이전 오빠, 언니들이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면 20대 초반 세대들은 토론 등 열린 교육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 창의성, 능동적인 표현, 다양한 비판적 사고 등이 발달됐다고 할 수 있죠. 인터넷 등과 같은 공론장에서 젊은 세대들과 감성을 소통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투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결국 가장 중요한 감성을 공유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니까요.”
강씨의 말대로 지난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선거 마케팅이 속출했다.
일례로 ‘백욕이불여일표(百辱以不如一表)’, 즉 정치인을 100번 욕하는 것이 투표장에서 1표를 행사하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다. 또 영화 아바타를 패러디한 ‘투표 안하는 너를 보면 ‘애가타’”라는 패러디 선거운동까지 유행했다.
그간 우리사회는 20대들을 냉소적으로 본 측면이 컸다. 50대 이상의 어른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란 식의 권위주의로 20대를 바라봤고,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는 40대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그들에게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실제 2006년 지방선거의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33.9%, 30대 41.3%, 40대 55.4%, 50대 68.2%, 60대 70.9%였고 2008년 10대 총선 당시 20~30대 투표율은 각각 28.1%, 35.5%로 60대 투표율 65.5%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낮은 투표율은 전체 국민의 공정한 대표성 측면에서 과소 평가됨은 물론, 전체 국민의 표심도 왜곡시켜 젊은 세대와 관련된 정책의 미반영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정책 추진과정에서 저항의 과잉을 불러일으켰다.
또 기성세대의 냉소적 편견에 상처받은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고립화해 세대 간 단절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투표는 대의정치이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으면 정치적 대표성이 문제가 된다”며 “제도권 정치세력들도 특정 세대에 쏠린 투표율만을 고려해 유권자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국정을 운영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만큼은 달랐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2010 대학생유권자연대’가 대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명박 정부의 소통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80%를 상회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는 6·2 지방선거에서 20대 등 젊은 유권자들과 50대 이상의 유권자들간의 세대별 투표대결 양상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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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율표 제고? 트위터에게 물어봐!
6·2 지방선거에서 세대간 투표가 젊은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진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트위터’(Twitter, 140자 이내의 짧은 글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단문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꼽는다. 이 같은 새로운 개념의 IT출현이 젊은 세대들과 융화돼 20~30대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트위터 등 새로운 IT출현 때문일까.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오전까지만 해도 4년 전 지방선거보다 투표율보다 다소 나았으나 정오를 기점으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 결국 54.5%의 최종 투표율을 기록했다.
또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06년 투표율보다 3%정도 높았고, 지방선거 중 역대 2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결국 ‘트위터’ 등은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이은 제 2세대 선거 운동의 진화인 셈이다.
실제 지방선거 하루 전날인 1일, 트위터에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는 투표 독려 글이 팔로어(follower, 메시지 연결자로 등록한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16만여 명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씨도 투표를 한 다음 인증 샷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투표를 하지 않아 당신의 주권을 포기해버리는 순간 쓰레기보다 못한 가치로 전락한다”는 글을 게재했다. 방송인 김제동 등 연예인들도 이에 동참, 새로운 개념의 선거운동에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뉴미디어는 빠른 정보 전달력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선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소통수단으로 사용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관권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공보물 발송이 대량 누락된 사건 역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빠르게 전달한 수단도 바로 트위터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마치 2002년 대선 때처럼 트위터 등을 이용해 투표를 독려했다”면서 “그 영향으로 인해 다른 지방선거에 비해서 투표율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인터넷 등 사이버 상에서는 기존의 Top-Down이 아닌 느슨하지만 거미줄 같은 연결망을 통해 유권자들이 스스로 소통의 주체로 진화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MB정권은 이런 변화된 상황을 외면하고 트위터 규제, 김제동 사건 등이 촉매제 역할을 해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작용한 측면이 컸다”고 말했다.
세대교체 바람, 그 실체는?
지난 6.2 지방선거의 영향이었을까. 선거가 끝난 이후 정치권은 연일 세대교체 열풍이 불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도 승리한 민주당도 선전한 민주노동당 등도 세력교체론을 역설하며 인적쇄신 바람을 몰고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15일 여의도 당사 2층 강당에서 열린 사무처 월례조회에 참석해 “국민들에게 변화된 한나라당을 보여주는 방법은 인사 밖에 없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이들이 도전을 통한 예측을 불허하는 흥미진진한 흥행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것이 국민이 한나라당에 요구하는 변화이고, 당이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YS가 70년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유진상 선생이 구상유취(口尙乳臭, 말이나 행동이 유치하다)라고 폄하했지만 그 바람이 불어서 제헌국회 이후 당의 무거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밝혔다.
실제 한나라당에서는 ‘40~50대 기수론’이 민주당에서는 ‘新 486’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각 정당 내부에서 불고 있는 세대교체 바람이 한국정치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분기점이 될 수 있을까.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부는 세대교체의 바람은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한다. 하나는 지난 1970년대 YS-DJ의 투쟁을 통한 개혁적인 의미의 40대 기수론과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세대교체론이 그것이다. 전자는 개혁적, 진취적, 진보적인 의미가 있지만, 후자는 그런 의미가 아닌 시대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대교체론이다. 지금 정치권에 부는 바람은 전자가 아닌 후자에 가깝다”며 현 정치권의 세대교체 바람을 과잉해석이라고 진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에서 부는 세대교체 바람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이나 투쟁의 개념이 아니다”라면서 “한나라당의 세대교체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받으려면 국토위에서 부결된 세종시 수정안 관련 법안의 본회의 상정만큼은 초선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이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를 두고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오며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존의 지배권력의 압박에 못 이겨 지배세력에 포섭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난 2006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도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다면서 “세대교체론은 4년 전에도 나왔고 4년 후에도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태원 선생은 ‘청춘예찬’을 통해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라며 청춘을 예찬했고 이는 인류 역사를 이끈 동력이라고 말했다. 그간 우리 정치권은 ‘세대교체론’을 통해 듣기만 해도 변화를 예감한다면서 세대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닐까.
정치권 여기저기서 세대교체론을 통해 구체제와 결별하자고 손짓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나이에 대한 세대교체가 아닌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 즉 사고의 세대교체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과연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세대교체 바람이 ‘미풍이 될지, 태풍이 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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