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서울 은평구는 총선을 앞두고 대 격변기를 겪고 있다.
은평갑·을 모두 여야의 터줏대감들이 자리를 지켜왔지만, 최근 정당 간 개혁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다선(多選) 교체' 요구가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은평갑 5선 더불어민주당 이미경 의원과 은평을 5선 당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모두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이재오 의원은 컷오프 결정에 반발,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다. 이처럼 공천파동의 여파가 격해지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은평을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한차례 소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의원에게 호재로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선의 피로감을 이야기하던 목소리가 줄어든 동시에 동정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편이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으로 갈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도 이 의원에게는 유리하다. 해당 후보들 모두 지역기반이 탄탄하고, 일부는 야권 단일화에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크게 1여3야로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공천파동에 '동정론'…"지켜달라"
불광역 사거리에 위치한 이재오 의원 사무실을 지난 1일 <시사오늘>이 찾았다. 하얀색 바탕의 대형 현수막에는 무소속 기호인 8번과 함께 '여러분께서 키워주신 이재오, 여러분이 지켜주십시오'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거리를 건너던 시민들도 현수막에 시선이 닿자 선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화제는 단연 이 의원의 탈당 사태였다.
70대 남성은 기자에게 "당에 계파가 하나만 있으면 독재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면서 "새누리당에 친박들이 난리인데 비박이 있어야 견제가 되고 당이 민주화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옆자리에 있던 50대 여성은 "마음은 짠하지만 이 의원이 너무 많이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젊은 사람이 와서 못 사는 동네에 활기 좀 불어넣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사무실은 지역 인지도를 감안하면 매우 단촐했다. 그러나 사무실 분위기는 활기찼다. 스탭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외부인 방문도 종종 이어졌다. 당시 자전거를 타고 혼자 유세를 나간 이 의원을 대신해 이승현 보좌관이 선거준비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이 보좌관은 "친박계가 공천 과정을 주도할테니 순탄치는 않겠다고 예상하고 경선에도 응할 생각이었다"면서 "그런데 컷오프라니 이 의원도 스탭들도 황당했다. 너무한 결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유재길 전 후보는 은평구에 연고가 따로 있던 것도 아니다"면서 "오히려 이번에 이 의원과 함께 주목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커버린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역구 분위기에 대해서는 "세간에 피로감이라는 말이 도는 건 잘 알고 있다. 긴장하고 있다"면서 "여론조사는 앞서간다지만 야권이 단일화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3野, "내가 대안"…'양보만 2번' 고연호, "야권 단일화 없다"
은평을 탈환에 나선 야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다선 현역에 대한 피로감이 지역정서의 중점이 될 줄 았았지만, 공천파동으로 오히려 동정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치공학적 면에서도 유재길 전 후보의 출마로 '다여다야' 구도가 되리라고 예상했지만, 새누리당이 무공천으로 결론을 지으면서 다시 '일여다야'로 돌아왔다.
이날 연신내역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야권 후보들이 서로 자신이 대안이라고 나섰는데, 한 명씩 보면 이재오 의원을 대체할 만한 파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권 단일화 가능성은 '깜깜'하다.
우선 야권 후보들의 기세가 비슷해 한쪽에 몰아주려는 동력이 약하다. 더민주 강병원 후보,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 정의당 김제남 의원 모두 지역에 오랜 뿌리를 두고 있고, 특히 고 후보와 김 의원의 경우, 시민사회와 활발한 교류로 '길거리 민심'에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또 고 후보의 강력한 반대 의사로 전반적인 야권 단일화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고 후보는 10년 넘게 더민주 은평을 지역위원장으로 일했지만, 선거 때마다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지난 2010년에는 장상 후보에, 2012년에는 천호선 후보에 후보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날 고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핵심 관계자는 "이때까지 양보만 하다가 일 해보려고 하는데 야권 단일화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더민주와 정의당 측도 고 후보와의 단일화는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구산역 선거유세에서 만난 더민주 강병원 후보는 이날 기자와 만나 "얼음이 아무리 단단하게 얼어있다고 해도 그 밑에 물이 녹아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면서 "이재오 의원에 대한 지역민의 피로감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 단일화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가장 좋은 대안을 찾아주리라고 믿는다"면서 "국민의당과 경쟁하더라도 이길 자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야권 내부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민주와 국민의당 전현직 대표도 지역을 찾아 지원유세를 펼쳤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이날 강 후보와 연신내역에서 선거운동에 나서, "지연민심이 뜨겁다. 잘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강 후보는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행정관으로 문 전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고 후보의 지원유세를 위해 밤늦게 연신내역 사거리를 찾았다. 안 대표는 쉰 목소리로 "기득권 정당들이 모두 덩치값을 못하고 있다"면서 "은평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연호를 뽑아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우등 터진' 정의당, "단일화 제의했건만…구원투수로 여겨"
이날 <시사오늘>이 찾은 정의당 김제남 의원 사무실은 부직포와 수수깡으로 선거유세용 도구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무실 한쪽에는 19대 비례대표, 녹색연합 전 사무처장 등 이력을 담은 현수막과 함께 재활용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야권 단일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캠프 핵심 관계자는 허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당초 야권 단일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정의당이었다.
김 의원이 지난 17일 야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고연호 후보 측에서는 거부 의사를 밝혔고, 강병원 후보는 20일 비공개 실무협의에 합의했으나, 그 전날 불참통보, 무산됐다.
그러나 후보등록 마감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28일, 강 후보 측에서 야권 단일화를 역제안, 김제남 의원과의 비공식 회합에서 안심번호를 사용한 경선방식을 언급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안심번호를 사용하려면 10일 정도 걸리니까 4월 8일이 되는데, 이미 투표용지가 인쇄된 시점이다. 단일화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당초 우리 측에서 야권연대를 제안했을 때 더민주 측에서는 '다여다야' 구도가 될 줄 알고 깊게 생각 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게 더민주가 정의당을 구원투수로 여긴다는 것 아니겠나"라면서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 '민주당 입당하라'고 했다던데, 야권연대 틀을 뒤집은 것과 같은 일관성"이라고 비판했다.
좌우명 : 本立道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