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안철수, '통합과 화합' YS 유지에 고개 '끄덕'
김현철, "YS 정신, 정치·경제발전과 통일의 초석 돼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정진호 기자)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 묘비 제막식이 26일 오후 2시 그가 영면한 서울 동작 국립현충원 김영삼대통령묘소에서 열렸다. 정부가 직접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손명순 여사,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를 비롯한 유가족과 정·관계 인사 500여 명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새누리당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 김무성 전 대표, 서청원 의원, 이인제 의원 등이 제막식을 찾았고, 야권에서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국민의당 김성식 당선자, 이상돈 당선자 등이 방문해 자리를 채웠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권노갑 전 의원, 김덕룡 전 의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도 참석했다.
이날 가장 먼저 제막식에 모습을 보인 인사는 YS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과 YS 적자를 자처하는 김무성 전 대표였다. 최 전 장관은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YS가 잠든 무덤에 몸을 맡긴 채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제막식이 진행되는 내내 흐느껴 울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참배객들과 악수를 나누며 입장했다. 이어 정진석 원내대표가 도착하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정 원내대표는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하고 인사하면서 김 전 대표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앉아 한동안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이 내정됐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원내대표는 제막식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표와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에 "(일전에 3자 회동에서 김 전 대표가) 통합이라는 정신을 많이 강조했는데 내가 아주 깊이 공감하고 있고 고맙다고 했다. 다음번 회의 때 또 만나자고 그랬다"고 밝혔다.
반면, 김 전 대표는 서청원 의원과는 행사 내내 껄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바로 옆자리에 배석됐음에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서 의원은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정진석·김무성·최경환 3자 회동의) 절차와 과정이 아쉽다"며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자신을 제외하고 당내 현안을 논의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역력히 드러냈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대표는 제막식이 끝난 후 기자들이 '안 대표와 어떤 대화를 나눴느냐'고 묻자 소리 내 웃으며 "잘 좀 들어보지 그랬어"라며 "오늘은 추모하는 날이니까…(고인에 대해 말했다)"고 전했다.
이윽고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묘비를 덮은 천막을 거뒀고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는 문구가 적힌 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묘비 맞은편에 위치한 생전 YS의 어록이 담긴 추모비도 공개됐다. 묘비명은 '민주주의(民主主義)'였다.
YS의 유가족과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선 상도동계 인사들은 제막식을 찾은 정치인들에게 YS의 유지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S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이날 유가족 인사말을 통해 "우리 국민은 과거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투쟁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항상 아버지가 계셨다. 문민정부가 추진했던 변화와 개혁도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대도무문의 큰 걸음으로 항상 새벽이 오길 온몸으로 갈구하고 뚜벅뚜벅 걸어,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고 새벽을 맞이했다"며 "역사를 잊으면 잘못된 역사는 반복된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항상 했던 말이다. 민주주의를 잊으면 민주주의는 결국 후퇴하고 말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막식을 찾은 각 정당 대표들에게도 충고했다. 그는 "마침 이 자리에 각 정당 대표들이 참석해 주셨다. 아버지가 남긴 유지,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결코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언제나 국민과 함께, 언제나 민주주의와 함께했던 아버지의 생애가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김종인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연신 고개를 끄덕여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당들이 대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민주주의가 소중히 지켜져서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는, 그걸 바탕으로 정치·경제 발전, 그리고 통일의 초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야가 협심해서 내년 대선을 훌륭하게 잘 치렀으면 좋겠다. 나 역시 아버지를 기념하는 사업을 통해 현실 정치에 자연스럽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맡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YS는 누구보다 동서화합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런데 그의 통합에 대한 신념과 업적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오히려 후퇴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뒷걸음질치고 사회는 대립과 갈등으로 침체됐다"며 "너나, 여야 가릴 것 없이 오늘 제막식은 YS의 큰 뜻을 헤아리는 중요한 시간이 돼야 한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행복하고 도덕적이고 평등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전 총리는 행사 뒤 <시사오늘>과 만나 "YS는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바쳤다. 그는 항상 떳떳했고 당당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그의 그런 모습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YS는 초지일관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삶을 살았고,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YS는 부당한 권력에 투쟁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자상했다. 동지들을 잘 챙기고 서민적인 생활을 했다. YS는 정치에 대한 강한 집념과 동지들을 챙기는 따뜻함을 함께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고 추억했다.
이성춘 민주화추진협의회 부이사장도 <시사오늘>과 만나 "정치권이 YS 정신을 계승하려면 정도로 가야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YS는 한평생 민주주의를 잊어본 적이 없다. 무조건 민주주의로 향하는 정도를 걸어야 정상화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날 묘비 제막식에서는 YS의 생전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1993년 당시 대통령 취임 연설이었다. 연설이 끝날 무렵 하늘에서 봄비가 내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무더위를 식힐 만큼의 봄비였다. 제막식을 찾은 참배객들을 위한 YS의 자그마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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