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부산 야권을 대표하는 얼굴이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부산 진구갑)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오르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김 의원은 김덕룡(DR)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통해, 1987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끄는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 비서로 일찌감치 정치권에 발을 들인다. 덕분에 아직 50대지만, 무려 30여년에 달하는 정치구력을 가진 중진급 인사다.
정통 상도동계로 정계에 들어왔지만, 그의 정치역정은 안주(安住)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3년 거대 기득권 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선 문국현 캠프에 참여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다양한 부침(浮沈)을 겪은 뒤 2011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부활한 김 의원은,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왔다. ‘정치실험’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감행한 김 의원의 도전은 5년 만에 결실을 맺는다.
그런데 김 의원은 기뻐할 틈도 없어 보인다. 책임이 막중하다. 9명의 당선자를 내며 부산경남(PK)야권이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이들 상당수가 여의도에서의 경험은 많지 않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을 제외하면 7명이 초선 의원이다. 4선 조경태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떠난 빈자리도 메꿔야 한다. 이제 PK야권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무게감 있는 원내 인사인 김 의원의 할 일이 많아 보인다. 기대와 책임을 한 몸에 인 채, 부산 야권의 얼굴로 떠오른 김 의원을 <시사오늘>이 지난 25일 국회 사랑재 앞에서 만났다.
“내 각오와 부산시민들의 마음이 통해서 승리”
-우선 당선을 축하드린다. 8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는 소감을 들려준다면.
“기쁜 마음에 앞서 어깨가 무겁다.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이고, 나라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초선도 아니고, 3선의원이 돼서 돌아온 입장에선 풀어야 할 숙제들의 무게가 있다.”
-부산에서 깜짝 승리를 거뒀다.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부산에 돌아왔을 때의 각오와, 부산 시민들의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부산도 살려보고 싶고, 부산에서 출발하는 우리나라 정치개혁의 봉화도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시민들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경제가 낙후되고 있다는 위기감, 또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 좀 바뀌어야 한다는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부산에 돌아가 5년간 사서 고생을 했는지 인정받았고, 그런 지지가 커져서 당선된 것 같다.”
-어느 순간에 승리를 예감했나.
“사실 본격적인 선거에 들어가기 전에, 지역구 활동을 많이 못했다. 5년을 부산에 내려가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내 선거구 하나만이 아닌 부산 전체 문제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지난 2014년엔 부산시장 선거 준비에도 시간을 많이 썼고, 부산시당위원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엔 해야 했었다. 그 결과 부산 전 지역 현안들에 대해 쫓아다니고, 개입하고, 발언하다 보니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더라. 그래서 선거 4개월을 남겨놓고 부산시당에 양해를 구한 뒤, 지역구에 전력투구를 했다.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이길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50대, 60대의 남성 분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분들인데, 이 계층에서 ‘김영춘씨가 돼야 한다. 부산을 위해서도, 한국 정치를 위해서도 좀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왕성하게 퍼졌다. 이분들이 원래는 새누리당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들이다. 40대 이하의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도 여전히 열렬했다. 선거 한 달 전쯤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여론조사에선 많이 밀리는 것으로 나왔었다.
“내가 직접 발로 뛰어본 결과, 여론조사가 엉터리란 것을 확신했다. 여론조사에는 거의 더블스코어로 내가 지는 것으로 나오는데, 지역여론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특히 여론조사가 낮에 집전화로 행해지는데, 그 시간에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몇이나 되겠나.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치르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어느 날 50대 정도 되는 남자분께 전화가 왔다. ‘내가 한나라당 지지잔데, 나 말고도 여기 한나라당 지지자 몇 사람이 모여 있으니 올 수 있겠느냐. 술값은 걱정 말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가 봤다. 전화를 걸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데 주인대접을 받는 느낌이 없다. 항상 무작정 새누리당을 지지하다 보니,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사람을 선거 끝나면 볼 수도 없고, 마주치더라도 너무 거들먹거린다. 주인이 아니고 내가 머슴인 기분이다. 그래서 김영춘씨를 찍어봐야겠다고 여기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다. 당선돼도 4년 내내 똑같은 자세로 일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찍어주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대답했다. ‘국회의원 자체가 제 출세의 목표가 아닙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게 제 정치하는 이유입니다. 국회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이게 뭐겠습니까. 이 마음만큼은 믿어도 됩니다.’라고 했다. ‘알겠으니까 가이소.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나왔다. 한 10여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분들이 정말 열심히 도와줬다. 주변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설득해 주시기도 했다. 또 동네 70대, 80대 노인 분들이 길에서도 만나면 절 알아보시면서 ‘이번에 내가 30년만에 민주당을 찍어보려고 한다. 실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시더라.
선거기간 내내 길에서만 그런 분들을 수 십명은 만난 것 같다. 이유는 다양했다. 새누리당에 경고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 분, 주변에서 하도 이사람 저사람이 나를 추천해서 궁금해서 찍어본다는 분, 아드님이 싱가포르에서 국제전화로 계속 전화가 와서 ‘우리 선배를 꼭 찍어달라’고 한다는 80대 할머님도 있었다. 그분은 국제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만 전화해라 내가 김영춘이 찍을게’라고 하셨다더라. 이분들의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결국 절 국회로 보내주셨다.”
한국 경제 체질개선 시급…기재위 희망
-지금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제일 문제라고 보나.
“경제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 즉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나빠져서 경제가 좋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한 요인일 뿐이다. 한국 경제 구조와 체질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던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 수출 위주의 경제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이 경제지형으로는 다가오는 더 거대한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 줬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되지 않았나. 그럼 이제 그만 알아서 잘 하게 두면 된다. 대신 고용의 88%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살려줘야 된다. 대기업과의 거래 속에서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익을 나눠받지 못해 점점 쪼그라드니까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해 가는 거다.
우리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고 싶어도 너무 대우가 열악하고,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으니까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으로 몰린다. 그런데 대기업 일자리는 얼마 없지 않나.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소기업을 살려내는 상생경제의 기틀을 만드는 게 지금 경제 위기의 가장 좋은 처방이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만 양극화가 되는 게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도 상당히 심각하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발전을 계속하기 위해선 성장잠재력을 계속 키워줘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란 중소기업을 죽여 없애고, 지방경제를 눌러 없애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대한민국 경제는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지방을 살리는 경제적 체질개선, 경제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지방자치권을 강화시키고 수도권 중심으로 몰리고 있는 경제자원 투자도 재 분배가 필요하다. 조세제도, 재정제도도 개혁해야 한다. SOC(사회간접자본)투자도 수도권에 너무 치중돼있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 3단계 사업에 6조원이 들어간다. 작년에 시작했다. 김해공항 가보셨나.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그런데 15년 전부터 김해공항을 대체할 신공항을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을 쳐도, 정부는 부산권에 신공항이 필요 없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동남권 경제, 과거 재벌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학공업이 다 무너지고 있지 않나. 조선·석유화학·철강이 지금 다 쓰러지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동남권 경제만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무너지는 직격타가 된다. 동남권의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부산신공항, 가덕도 신공항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동남권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어떤 전략적 시도도 하지 않고 이미 포화상태인 수도권만 계속 키우고 있다. 지금 예시로 한 가지만 들었지만,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계속 이렇게 지방을 죽이고 방치해뒀다간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내가 20대 국회에서 할 일들은 더 큰 지방 초토화 사태가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위기극복방안을 만드는 일이다. 부산의 3선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있는 상임위원회가 있나.
“기획재정위원회다. 경제정책의 주무부처가 기획재정부고, 그걸 감독하는 상임위가 기재위다. 당면 경제 위기상황은 물론 지방위기까지 다루려하기 때문에 기재위를 우선지망하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 김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아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간 우리 당은 선수(選數), 나이 순으로 상임위원장 배치를 해왔다. 제가 8년을 쉬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나이가 젊다. 3선 중에서 상임위원장을 희망하는 분들 중에 나보다 나이 많은 분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마 안 해도 될 것 같다. 후반기엔 자동적으로 배정될 수 있겠지만, 전반기엔 나이로는 확실히 후순위다. 다만 영남에서 한 명 배정해줘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을 텐데 당 지도부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정치실험은 끝…더민주에서 정권 교체 할 것
-부산에서 당선된 다섯 명 중에 나머지 네 사람은 친노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해서 ‘부산 친노의 김영춘 견제설’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겠나. 나를 견제 해봐야 도움될 것이 없다. 부산지역 의원들끼리 협조해야 시너지도 나고, 의정활동에도 도움이 되는데. 기우(杞憂)인 것 같다.”
-부산 야권의 지지자는 크게 보면 YS의 지지층과,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구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상도동계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다. YS의 지지층도 노인세대가 많다. 예전에 부산에서 YS가 대통령까지 되는 과정에서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했던 분들도 함께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새누리당 지지층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번에 YS 지지층이 야당 지지로 돌아선 분들도 많다고 본다. 부산에서 야당의원이 다섯 석 나오게 된 결과는 그분들의 힘도 컸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열렬한 팬층이 있는 분이고.”
-PK(부산경남)에 다시 대통령을 내고 싶은 열망이 존재하나.
“그런 여론이 있다. 부산이 TK(대구경북)에 치여서 영남지역에서도 변방이라고 자조한다. 인구도 더 많은데 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느냐 하는 민심이 있다. TK가 정국을 주도해온 시기가 훨씬 길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모두 TK정권 아닌가. 부산이 들러리만 서는가 하는 소외감도 있다. 심지어 가덕도 신공항도 TK정권이라서 해주지 않는다고 비판 하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감정을 배경으로 우리가 대통령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자 하는 바람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모두 일해 봤다. 두 정권을 비교해 준다면.
“두 정부 모두 성공과 실패의 양면이 있다. YS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확실한 준비가 돼 있었다. 마지막에 IMF사태가 터지며 평가가 나빠지고,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취임 첫 3년 동안 YS가 준비해 둔 개혁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지지도가 높았던 대통령이 없었다.
시원시원한 행보에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다만 과욕을 부리는 바람에 막판에 IMF 사태가 벌어졌다. 너무 성급한 자본시장 개방을 했다가 외환위기가 왔다고 본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준비는 부족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고, 대통령의 권위를 해체시키면서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김대중(DJ) 전 대통령때부터 이어져온 남북관계의 평화무드를 관리해왔다. 그리고 노무현이기에 할 수있었던 정책도 있었다. 지방균형발전정책에 대해서는 노무현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지 10년이 됐지만, 지금도 그 때 이뤄낸 지방균형발전정책이 시행중이다. 국가공기업 관사이전 작업 등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공기업들이 가기 싫어하면서도 결국 가고 있지 않나.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노무현 정부가 아니면 못했던 일들이다. 그런데 준비가 안 된 정권이었기 때문에 역시나 과욕을 부리다 실패한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미FTA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YS가 자본시장 개방을 무리하게 서두르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듯이, 노무현 정부도 FTA같은 개방정책을 국내경제 체질의 개선 없이 시행하고 말았다. 결국 재벌 위주, 수출지향의 경제체질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지금 그 반작용이 돌아왔다. 그런 측면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 위기가 자신들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 요소에 불과하고, 기본적으로 국내경제의 체질개선, 구조개혁이 필수과제다. 외부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까.”
-YS와 노무현 중 누가 더 자신과 가깝다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 않겠나. 예전에는 YS의 돌파력, 용기, 직관력과 DJ의 치밀함, 논리력, 학습하는 태도가 조합이 되면 좋지 않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사실 세상에 없는 거다. 나도 그런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도 지향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결함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하.”
-그간 여러 가지 정치 실험을 하다가 더불어민주당에 정착했다. 이제 실험은 끝났나.
“40대 때는 이런저런 정당실험, 도전을 많이 해봤다. 실패와 좌절도 많았다. 50대가 된 지금은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것이 능사고 좋은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노력이라면 지금 있는 정당을 제대로 고치고 개혁하는데 집중해서, 우리도 100년 정당, 200년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외국의 사례를 보면 쓰라린 좌절과 절망의 시기를 오래 보낸 정당도 많다. 수십 년 씩 집권을 못하면서 암흑기를 보내다가도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그런 ‘그랜드 파티’가 되도록 일조하고 싶다. 당면 목표는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다.”
개헌은 위기 돌파구…정치·경제적 한계 해결작업
-개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야 한다. 개헌과 같은 돌파구가 필요하다. 현 정치 체제를 87년 체제라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떨까. 97년 체제라고 말해야 할까. IMF사태로부터 비롯된 현 경제의 체질이 있는 거다. 현 위기는 87년 체제로서의 정치적 한계와, 97년 체제로서의 경제적 한계가 한꺼번에 몰려온 상황이다. 크게 정리하는 국가적 작업이 필요한데, 그게 개헌논의라고 본다.”
-구체적인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개헌해야 할 이유 중에 또 한 가지는 통일 문제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몇 퍼센트나 심리적으로 통일에 대한 준비가 돼 있을까? 통일은 추상적인 꿈과 환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고통과 희생의 분담에서 온다. 독일만 해도 수 십 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증세를 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은, 정부는 이런 준비가 돼 있을까? 전혀 안돼있다. 구두선(口頭禪)처럼, 환상으로서 통일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통일을 준비하는 작업으로서도의 개헌을 통해, 새 헌법개정안에 통일의 청사진을 그려내야 한다.
경제적인 비용부담뿐 아니라 정치체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 고민을 담아내야 한다. 독일 같은 경우엔 통일 이전에 이미 헌법이 준비돼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 연방공화국은 무슨무슨 주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현재 가입돼 있는 주 들은 무슨무슨 주 들이다’라고 돼 있었다. 동독지방에 있는 주들은 가입이 안 된 주들이다. 가입만 하면 통일이 되는 거다.
실제로 독일통일의 형식은 서독의 오픈돼있는 헌법에서, 동독지방의 주들이 가입하면서 법적으로는 끝나버렸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돼있나. 현재 헌법에 ‘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주요부속도서’라고 명기돼있다. 법적으론 이미 북한도 우리 영토다. 그래서 북한이 무너지면 자연스레 우리영토가 되는 건데 북한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한 국민으로서 흔쾌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제안인데, 국회를 양원제로 운영해보면 어떨까싶다. 지역구에서 뽑는 의원들로 하원을 구성하고, 미국처럼 지역구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을 인구에 무관하게 지역별 동등한 숫자로 구성하는 거다. 현 체제에선 북한은 무조건 소수파가 된다. 인구만 해도 약 5천만명 대 약2천 몇 백만 명이니, 반도 안 된다. 그래서 지역대표성만 갖고서는 북한은 영원히 소수파로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작은 주들이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데 동의했던 이유는, 상원을 두고 로드아일랜드나 뉴욕주 처럼 작은 주도 상원에 똑같이 두 명 씩 파견하게 해주고 상원이 거부권을 갖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걸로 권력균형을 맞췄는데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을 뽑고, 상원은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 함경도 등에서 상원을 구성하는 거다. 그렇게 권력균형을 어느 정도나마 맞춰주면, 북한 주민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또한 통일기금도 조성하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이 된 뒤에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 늦다. 너무 많이 내야한다. 지금부터 적립을 하는 것을 고려해볼만 하다. 그리고 통일기금을 꼭 통일 뒤에만 쓰란 법이 어디 있나.
개성공단 같은 걸 만드는 데 투자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의 경쟁력은 입증이 됐다. 함흥이나 신의주, 이런 곳 등에 7~8개 자유공단을 만들어 놓고 통일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기본 인프라, 항구도 만들어야 하고 물공급도 해야하고, 도로망도 확충하고…이런 것들이 결국 통일준비작업이다.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너무 힘이 든다. 게다가 남한 기업들에게도 좋은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한계 상황에 처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다시 한 단계 오를 기회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했던 ‘통일대박론’과 유사한 느낌도 드는데.
“박근혜 정부는 말만 해놓고 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박 대통령이 말하는 대박론은 이런 구체적인 청사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엔 ‘흡수통일만 하면 대박’이라는 무책임한 이야기 같다. 내가 언급한 과정을 적어도 10년 이상 선행하고 해야 통일이 그 전 과정부터 한국경제에 축복이 되고, 통일된 대한민국 전체가 대박이 되는 것이다. 무리하게 끝장을 보려고 하면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 북한주민들이 100만, 200만 명 몰려들어오면 누가 감당하나. 최저임금만 줘도 일할 사람들이다. 실업자들은 더 늘어나고, 우리 청년들은 취직이 더 어려워진다.”
-끝으로 20대 국회 활동에 앞서 정치적 포부를 밝힌다면.
“나는 내가 권력자가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뛰어들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침 상황이 어려우니 20대 국회의원으로서 짊어질 십자가가 무겁다고 느낀다. 다가오는 경제위기 상황 남북관계 위기들을 잘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선진통일국가로 발돋움시키는, 20대국회를 만들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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