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했던 어느 겨울날, 추위가 서서히 풀려 봄의 포근함이 서서히 묻어나던 때였다. 저녁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아! 오늘도 하루도 이렇게 저무는 구나’라고 생각하던 시각.
“구조 출동, 교통사고 구조출동. OO터널 지나 고가 난간에 대형버스 걸려있는 상태.”
직감적으로 대형사고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고, 확성기로 앞서가는 차량에 양보해 달라고 목이 터져라 방송해도 현장 부근 길은 꽉 막혀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일단 간단한 장비만 챙기고 대원들과 내려 비좁은 차량 틈을 뚫고 달렸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액션이나 재난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사고였다. 대형 관광버스 절반이 도로에, 또 나머지 절반은 고가 난간에 걸쳐져 있었고, 버스 안에 있는 승객들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우리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면 쓰러질 기세였다. 참으로 난감했다.
“절대 당황하지 마시고 왼쪽 끝에 있는 분들부터 차례대로 나오세요.”
나는 큰 소리로 버스 안 승객들에게 말했다. 무게중심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어느 승객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워낙 급하니까 서로 먼저 나오려고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승객들은 조금씩 질서정연하게 한 명 한 명 깨진 뒤쪽 유리창으로 나와와 우리 대원들에게 몸을 맡겼다.
행여 유리창에 신체가 긁혀 상처가 날까봐 잔뜩 신경을 써서 승객 하나하나를 안아서 내리는데, 승객들이 입을 열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연신 외쳐대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버스 안 승객들이 일본인 관광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20여명을 무사히 구조했다.
구조해야 될 인원은 버스 안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버스와 충돌한 승용차에 탑승한 운전자가 있었다. 앞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진 차체에 운전자는 발이 끼여 있었다.
“아저씨! 발 괜찮으세요? 끼인 것 같지 않아요?”
“모르겠어요. 감각이 없어요.”
아저씨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듯 대답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리 쪽에 분명 심한 부상을 입었으리라.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렵사리 다리 쪽을 살펴보니, 오른쪽 무릎이 완전 개방돼 있었다. 개방성 골절로 의심됐다.
차량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에게 응급처치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응급처치가 끝난 뒤에서야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끌어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지만 귀서하는 동안 내내 아쉬움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인데, 앞으로 그들이 우리 119를 찾는 때도 자연스레 증가하리라. 그런데 영어 한마디, 일어 한마디,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유창한 실력까지는 아니어도 현장에서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간단한 회화는 배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울러,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점차 질서를 갖추고 순서대로 구조를 요청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시민들도 이 같은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