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코레일(한국철도공사, KORAIL)이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 최신 개봉영화를 상영하는 'KTX시네마' 서비스 종료를 최종 결정한 것으로 <시사오늘>의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한때 '세계 최초 달리는 열차영화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사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배경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쏠린다.
KTX시네마 중단 이유는 사업자 경영악화, '의문'
2006년 코레일과 씨네우드엔터테인먼트(이하 씨네우드)는 KTX시네마(열차개봉관사업)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듬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KTX시네마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약 10개국에 특허 출원·등록한 기술을 기반으로 추진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막강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는 당시 씨네우드를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로 선정해 가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공동사업자인 코레일 역시 KTX시네마를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홍보 작업을 펼쳤다.
이는 일단 '달리는 열차영화관'을 국내 성공사례로 만들어 해외 수출을 통해 국가 이익을 증대하는 동시에, 국산 영화와 국내 배우들을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소개해 한류열풍을 더욱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중이었다.
하지만 코레일은 사업이 문을 연지 불과 8년 만인 2014년 12월 KTX시네마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코레일은 <시사오늘>의 문의에 "KTX 시네마를 앞으로 더 이상 운용할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서비스 종료 사유는 '사업자의 경영악화'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코레일은 씨네우드와 해당 사업을 공동 추진하면서 25억 원 가량의 예산을 공식적으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열차 총 45량에 설치된 프로젝터, 스크린 등 장비 유지·관리·보수비용과 홍보·마케팅 비용 등을 더하면 약 90~150억 원에 이른다는 게 KTX시네마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다. 수익도 2012년까지는 흑자를 봤다는 후문이다.
세계 각국이 인정한 특허 기술, 정부의 지원, 공공기관 코레일의 전폭적인 지지, 적지 않은 비용 투자, 그리고 나쁘지 않았던 수익성, 왜 KTX시네마가 문을 닫게 됐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본지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씨네우드 대표 A씨와 코레일 상품개발처 관계자, 영화업계 사람들 몇몇을 개별적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하는 기자가 A씨, 코레일 관계자, 영화업계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를 취합한 내용이다.
대형 영화 배급사 '보이지 않는 손' 역할 했나 '의구심'
CJ, 롯데, 쇼박스, 넥스트(NEW) 등 일부 대형 영화 배급사가 잠식한 우리 영화업계에서 KTX 시네마는 '돈키호테' 같은 존재였다. 배급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일반 영화관과는 달리, 열차 한 량 전체를 영화관으로 사용하는 독립적인 영화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영향력도 막강했다는 후문이다. KTX시네마에 걸린 영화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거의 모든 역사에 포스터를 붙였고, 전국 각지의 KTX 이용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전국적인 홍보 효과를 누렸다. 씨네우드가 전체 영화업계에서 '할 말은 할 수 있는 회사'로 각인된 이유다. 이것이 훗날 KTX시네마 사업 중단의 불씨가 된 것으로 보인다.
KTX시네마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암초들과 직면했다. 우선 '러닝타임' 문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영화 러닝타임은 90~110분 사이에 그쳤지만, 요즘 개봉작은 대부분 상영시간 120분을 상회한다. KTX시네마에서 상영 가능한 영화 러닝타임은 100~110분 내외, 120분을 넘기는 영화는 열차 시간문제로 상영이 불가했다.
때문에 KTX시네마 측은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이는 영화의 경우에는 러닝타임 120분을 초과하더라도 일부 장면을 편집해 스크린에 올리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이를 대형 영화 배급사 쪽에서 발목을 잡았다는 전언이다. 원작자의 의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또한 각 지방의 영화관 점주들이 KTX시네마 때문에 영업이 안 된다는 불만을 배급사에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영화업계에서 대형 영화 배급사와 각 영화관의 사이는 일종의 '종속관계'라고 한다. KTX시네마를 향한 대형 영화 배급사의 농락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실상을 떠나서 KTX시네마는 배급사 측의 의견을 일리 있는 항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KTX시네마는 120분을 넘기지 않는 영화만을 가려서 서비스하기로 했고, 점주들이 제기한 불만에 대해서는 일반 영화관에서 영화가 개봉되고 2주가 지난 뒤에 열차 스크린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제약에 묶이다보니 KTX시네마는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유행이 지난 영화를 스크린에 올리는 경우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KTX시네마 이용객 수는 2011년 74만1040명을 기록한 이후, 2012년 62만8003명, 2013년 47만4070명, 2014년 45만399명으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코레일 측은 2011~2012년 즈음 KTX시네마에 대한 수수료를 소폭 인상했다. 그렇게 KTX시네마는 문을 닫게 됐다.
씨네우드 대표 A씨는 최근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KTX 시네마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대륙에서 성공한 뒤, 다시 우리나라 시장으로 돌아와 국내에서도 화려하게 재기하겠다는 각오로 사업에 임하고 있다. 반면, 코레일 관계자는 KTX 시네마를 앞으로 운용할 계획이 없다고 본지에 알렸다.
영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KTX시네마가 잠정 중단될 즈음, 몇몇 대형 영화 배급사에서 KTX시네마가 가진 국내 특허권을 매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며 "KTX시네마 서비스가 종료된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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