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돌풍(突風)의 종착역은 파괴(破壞)였다. 전당대회 출마 선언 당시까지만 해도 미풍(微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던 ‘이정현 바람’은, 결국 새누리당을 집어삼키며 정치 지형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기존의 문법으로 정치권을 예단할 수 없게 됐다.
전당대회 전날에도 여론조사 선두를 지켰던 이정현 의원이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선은 ‘설마’에 가까웠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창당 이후 서청원 의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비영남·비법조인에게 당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새누리당이 호남 출신의 이 의원에게 당기(黨旗)를 건네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직력과 지지도에서 모두 앞서던 정병국 의원이 결국 ‘영남·법조인 출신’ 주호영 의원에게 비박계 단일후보 자리를 내줬던 것처럼, 그 역시 막판에는 비영남·비법조인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 의원이 사상 최초로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면서, 새누리당은 변화의 바람에 휩싸이게 됐다. 1984년 동국대학교 졸업 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첫발을 내딛은 호남 출신 이 의원이 당선됨으로써, 새누리당의 주류를 형성하던 영남·법조인 출신의 카르텔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비영남·비법조인 출신인 ‘비주류’ 그의 당선이 ‘계파 청산’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다만 여전히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우선 ‘세력’이 없는 이 의원이 새누리당이라는 거함(巨艦)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이른바 ‘오더 투표’ 논란으로 친박계가 이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친박계의 지원이 이 의원을 ‘거수기(擧手機) 당대표’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9일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기자와 만나 “이 의원이 당선 일성에서 새누리당에 친박·비박은 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자신의 당선이야말로 계파 전쟁의 결과물 아니냐”며 “이 의원의 본심이 어떻든, 친박계의 ‘오더’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스타일 자체가 당대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그는 국회의원 선거와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세 결집’보다는 ‘개인기’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당대표는 129명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해 국정 운영에 반영하는 자리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돌파형’ 의원으로서의 성공에 도취돼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날 기자와 만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 의원이 성실하고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지금까지 이 의원이 해왔던 역할과 당대표의 역할은 180도 다르다고 봐도 된다. 이 의원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새누리)당은 크게 삐걱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