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오늘 점심은 중국 음식입니다. 뭐 드실래요?”
“난 짜장면 먹을래.”
구내식당 아주머니들이 쉬는 휴일이면 보통 배달음식을 시켜 끼니를 때운다.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짜장면을 시켰다. 곧 닥쳐올 재앙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중국 음식이 도착할 무렵,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있는데 갑자기 출동 벨이 울렸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산악사고, 인왕산 정상 기차바위.”
출동은 해야겠지만 짜장면이 야단나게 생겼다. 제발 우리가 귀서할 때까지 면이 불지 않길 바라며 산악 장비를 바쁘게 챙겨들고 인왕산으로 향했다. 길은 무척 험했다.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요구조자의 목소리는 119대원들의 마음을 태웠다. 요구조자는 통증이 무척 심하다며 빨리 좀 와달라고 우리들을 재촉했다. 짜장면은 금세 잊혀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기를 40여분, 정상에 도착해 보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되어 남성이 오른쪽 정강이 부분을 매만지며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상태를 확인해 보니 정강이가 완전 복합 골절이 돼 있었다. 얼굴도 심한 타박상으로 얼룩져 있었다.
조심스레 부목과 붕대를 이용하여 응급처치를 마치고 들것에 옮긴 후,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길은 좁고, 산은 험하고, 환자는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며 울먹였다. 90kg가 넘어 보이는 환자의 무게는 우리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뒤틀린 허리는 끊어질듯 아파왔다. 참으로 어려운 출동이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안전산행을 당부도 해가며 조금씩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환자는 우리들에게 미안했는지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중간 중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픔과 미안함에 어찌할 바 모르는 환자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하고 대꾸하며 정신없이 산을 내려갔다. 코스가 좀 길지만 안전을 고려해서 오를 때와 정반대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2시간을 하산했다.
인왕산 아래 개미마을에 도착, 구급차에 요구조자를 눕혔다. “고생하셨습니다. 치료 잘 하시고 가세요” 인사한 후 우리는 소방서로 이동했다. 힘겨운 구조를 마치니 허기가 밀려왔다. 짜장면이 생각났다.
허겁지겁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불어터진 짜장면 대신 방금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짜장면과 음식이 먹기 좋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의아해 하는 우리들의 표정을 본 근무 직원이 “중국집 사장님이 불은 음식은 다시 가져갔고 얼마 전에 새로 가지고 오셨어요. 어서들 드세요”라고 했다. 중국집 사장님이 119대원들을 배려해 주신 것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맛있는 점심, 따뜻한 점심을 먹게 해준 중국집에 앞으로 자주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짜장면을 입 안에 쓸어 넣었다. 이날 먹은 짜장면은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