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풍전등화' 신세에 놓였다. 부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갤럭시노트7 폭발 사태, 미국발(發) 세탁기 폭발 논란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경영권 승계의 대내외 명분을 잃은 것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사내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업계 일각에서는 그가 다른 방향으로 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삼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한 리콜 결단, 활발한 대외행보…'이재용이 달라졌다'
갤럭시노트7 폭발 사태가 터진 이후 이 부회장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이 부회장은 단순 배터리 교체 또는 보상수리에 그칠 것이라는 다수의 관측을 깨고 업계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량 신제품 교환' 결단을 내렸다. 약 1조5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소비자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그의 강력한 의지가 묻어난 조치였다.
이 같은 이 부회장의 결정은 충격에 휩싸였던 삼성전자의 경영 정상화에 큰 힘이 됐다. 실제로 이번 폭발 사태 여파로 삼성전자의 주가는 140만 원대까지 추락했으나, 9월 12일을 기점으로 반등해 160만 원 선을 회복했다.
최근 들어 이 부회장의 대외행보가 부쩍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9월 21일 삼성 서초사옥 출입기자들은 눈을 연신 비벼야 했다. 평소 취재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부회장이 현장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란 듯이 갤럭시노트7을 왼손에 꽉 쥔 채 유유히 기자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제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9월 27일에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삼성 서초사옥에 초청해 회사 곳곳을 안내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일정 수행을 맡은 직원이 따로 있었음에도, 뤼터 총리의 곁을 지키며 갤럭시노트7 등 삼성전자의 주요 제품을 직접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10월 27일 오전 10시 자신을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될 예정인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에 나서 주주들과 인사를 나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이 부회장은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재용의 승부수, 바이오사업-그룹 지주회사 출범 '쌍두마차'
하지만 이 부회장의 달라진 행보에도 불구하고, 앞서 거론한 일련의 악재들로 인해 경영권 승계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도의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대내외에 내세울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승부수는 '바이오사업'과 '그룹 지주회사 출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스마트싱스', '조이언트', '비캐리어스' 등 IT 관련 업체, 특히 사물인터넷에 강점을 가진 업체들을 계속해서 인수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를 바이오사업과 결합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헬스케어 상품들을 내놓을 것이라 전망한다. 삼성물산의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올해 말 상장을 앞두고 있다.
또한 증권가에서는 이 부회장이 향후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삼성전자를 '사업회사-투자회사'로 분할시키고, 다시 삼성전자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시켜 그룹 지주회사를 출범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분할합병이 성사된다면, 이 부회장은 명실 공히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리더십 구축해야"…"지분 집착하지 말라"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위기를 기회 삼아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9월 13일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 부회장이 다음 달(10월) 등기이사에 올라서는 건 그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부회장은) 시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가야 하고, 그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그룹의 경영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전문적 경영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지금까지는 미래전략실이라는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이 그 역할을 대신해 온 것이 삼성그룹의 현실이자 한계였다. 이 문제에 대한 개선 방향을 (이 부회장이)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내세웠다.
차기태 경제전문기자는 지난 8월 25일 출간한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에서 "이재용이 이건희로부터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녀에게 그것을 물려줄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라며 "그룹 소유·지배권의 우회상속 과정은 삼성의 '이재용 시대'의 원죄로 남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지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유경영체제와 전문경영체제의 장점을 결합해 '좋은 경영'을 실천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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