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정아 기자)
“그동안 그 아이(김한솔)가 김정은의 조카란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온 언론매체에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조카’란 단 하나의 이유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김정일 前 국방위원장의 장손, 김한솔(22세) 군이다. 김한솔 군은 지난 2013년 9월부터 1년간 현 프랑스 정부의 보호하에 프랑스 명문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김한솔 군에 대해 몇차례 국내외 주요매체에서 다뤄온 데에 대해 김 군의 친구 A씨는 “한솔이는 불쌍한 아이”라며 <시사오늘>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김한솔 군은 김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맏아들이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조카다. 그는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있는 마카오에서 자랐다. 그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에서 유학한다는 사실은 지난 2011년 전해졌다. 이후 김 군은 2013년 9월, 프랑스 명문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해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
<시사오늘>이 단독입수한 사진에서 김 군의 모습은 여느 새내기 대학생과 같았다. 김 군의 대학생활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사오늘>에선 당시 김한솔 군의 대학입학부터 장성택 처형 사태 등 1년간 파리에서의 대학생활을 취재했다.
즐거웠던 새내기 생활
김한솔 군이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한 시기는 2013년 9월. 대학입학 직후 이곳에서 김 군은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물론 이 중엔 한국인 친구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 모두 김 군을 ‘특별한 사람’이라 보는 것보단 보통 친구로 여겼다고 한다. 어느 새내기 대학생들처럼 저녁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파티도 열었고, 친구들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사진도 찍었다.
당시 한 학생은 “개강 직후, 여느 대학생들처럼 새내기 학생들과 함께 어울렸다”며 “한국인은 물론이고, 우리 누구도 한솔이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단지 꽤 값이 나가는 고가의 술을 가져올 때가 많아, 당황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2013년 9월은 김 군이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한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했던 20살, 김 군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의지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 개월 뒤 친구들과 멀어져 “우리 모두 어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김한솔 군은 파리에서 사귄 친구들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대학생과는 사뭇 다른 소비패턴 때문이었다. 김 군은 파티가 열릴 때면 대학생들이 쉽게 살 수 없는 고가의 양주를 자주 사왔다고 한다.
파리정치대학 학생들은 이러한 김 군의 소비성향을 ‘불편’해 했다고 한다. 파리정치대학 학생들은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학생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고려하면, 김 군이 사들고 온 고가의 술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며 “이런 불편한 상황들이 계속되니, 자연스럽게 김 군과 멀어졌다. 다들 파리정치대학에 갓 입학한, 정의감 넘치는 학생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 군도, 우리도 어렸기 때문에 그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군과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멀어진 시점은 2013년 가을경. 특히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사태’ 이후 김 군과 연락이 두절됐다. 국내외 매체에 따르면, 당시 김 군은 24시간 프랑스 사복경찰의 밀착경호를 받았다. 당시 해외에 퍼져있는 북한 ‘로열 패밀리’에 대한 신변안전 문제 때문이었다.
이후 김 군의 친구들이 그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 시점도 이 시기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삼촌으로부터 신변위협을 받으며 20대를 보낼 김 군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학생은 “장성택 처형 사건이후 다들 (김한솔 군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입학 1년 뒤 사라져….
"입학 후 1년 정도 뒤에 갑자기 사라졌다."
김한솔 군이 입학한 파리정치대학 ‘르 아브르 캠퍼스’는 아시아로 특화됐으며, 입학자는 2년은 캠퍼스에서, 마지막 1년은 해외 자매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하지만 김 군의 경우, 1년 뒤 파리 캠퍼스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편 김 군은 2012년 한 핀란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으로 돌아가 (평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중요한 일인데 남북이 분단돼 있어서 차근차근 노력한다면 통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한 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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