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역주행하는 장애인 복지예산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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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역주행하는 장애인 복지예산 편성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6.12.01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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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현정 기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는 거대한 천막이 쳐져있다. 오늘로 단식 11일째, 천막 안에는 단식농성중인 관계자들과 함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삭발한 머리카락을 모아놓은 상자가 놓여있다. 왜 이들은 추운 날씨에 고된 투쟁을 시작한 것일까?

▲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는 거대한 천막이 쳐져있다.ⓒ 시사오늘

“우리는 수용이 아닌 자립을 원한다”
‘장애인은 모든 인간이 누리는 기본 인권을 당연히 누려야 하며, 그 인격의 존엄성은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시대의 같은 사회의 다른 사람이 누리는 권리, 명예, 특전이 거부되거나 제한돼서는 안 된다.’

지난 1998년 국회는 ‘장애인 인권 헌장’을 채택했다. 헌장의 골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누리는 모든 권리를 누려야 하며, 국가는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장 채택 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애인의 권리는 비장애인과 결코 같지 않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는 예산편성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중이다 ⓒ 시사오늘

“시설에는 자유가 없어요. 장애인들이 뭘 해보려고 해도 귀찮으니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서울에도 거주시설이 있긴 하지만 보통은 산 높고 물 맑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 데다 담벼락을 쳐놓으면 뭐가 되겠어요. 수용시설이 되는 겁니다.”

1일 〈시사오늘〉과 만난 최태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이른바 ‘거주시설’에서 자립한 후 소비자연대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이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은 ‘거주공간을 활용해 일반가정에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일정 기간 거주·요양·지원 등의 서비스와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그러나 최 씨의 말에 따르면, 사실상 거주시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울타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보호시설을 폐쇄하고 사회화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탈시설을 통해 장애인이 지역사회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을 두지 않게 되는 지역대통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98년에 36개 주에서 이미 탈시설이 이뤄졌다.

박근혜정부도 2012년 보건복지부 주최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3~17년)’을 수립했다. ‘탈시설 후 자립 및 주거생활 지원’을 목적으로 장애인 자립관련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자립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세부 방침을 정한 것이었다.

시대를 역행한 예산 편성

그러나 정부는 당초 방침과 달리 내년 예산편성구성을 장애인들의 적극적 자립을 저해하는 ‘후진적 예산 편성’으로 진행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주요 증액사업 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금’은 2016년(당초예산) 5009억 원에서 2017년 5165억 원으로 156억 원이 삭감됐다. 반대로 ‘장애인거주시설 운영지원’ 항목은 4370억 원에서 4551억 원으로 181억 원이 증액됐다.

여의도 이룸센터 앞의 천막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의 흔적이다. 지난 29일 <시사오늘>이 이룸센터 앞 천막에서 만난 조윤근 한국장애인자립센터 총연합회 사무국장은 내년 정부예산편성에 대해 “탈시설과 자립생활 지원은 세계적 흐름이고 장애인들도 자립 요구가 날로 높아지는 중”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장애인들 실질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부정과 비리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예산을 증액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은 거주시설을 ‘거주’가 아니라 ‘수용’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주는 기거와 사회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만 실제론 24시간 시설 안에서 지내기 때문에 자립을 위한 사회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부족한 시설자체교육으론 자립이 불가능하며 희망자에 한 해 자립지원센터에서 재교육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작은 부분까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단식농성 11일째임을 알리고 있다 ⓒ 시사오늘

또한 일각에서는 거주시설에 들어가는 예산이 실제로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시설 직원들의 인건비로 낭비된다고 지적한다. 1일 〈시사오늘〉과 만난 최 씨는 “정부에서 내년 편성된 181억이 시설로 지원되면 이중 99%가 직원 월급으로 들어갈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건 0.5%정도 일 것”이라며 “시설에 들어갈 돈을 차라리 장애인 개인에게 나눠주면 집도 얻고 일자리도 구해서 자립해서 살 수 있는데, 현재 자립지원금은 너무 적어 집세와 병원비등을 지출하면 살기가 힘들다”고 개탄했다. 또 “정부가 자립지원금과 일자리만 잘 제공해줘도 장애인이 자립할 때 겪는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 것”라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장애인협회는 △장애인 인권유린 온상인 거주시설 예산삭감 △장애인 연금과 장애수당 확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강화 및 사회참여 활성화 예산 확대 △중증, 여성, 발달장애인과 같은 최취약계층 지원서비스 확대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예산 중심이다.

정치권은 묵묵부답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소수 집단에 속하는 데다,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창구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19대 국회에서 장애인 출신 의원은 새누리당 김정록, 민주당 최동익 의원등 2명이었지만 , 제20대 국회는 새누리당 이종명 의원 1명에 불과하다.

자연히 장애인들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힘도 부족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해 예산결산위원위에 재편성 요청을 해둔 상태”라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단식 투쟁의 기간을 알리는 알림판이 넘어가는 만큼, 장애인들의 한숨도 커지고 있다.

담당업무 : 국제부입니다.
좌우명 : 행동하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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