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 11일(미국 현지시간 10일) 미국 글로벌 전장업체 하만 인수를 완료하면서 국·내외 전장업계에 강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LG와 SK가 공들여 온 국내 전장 사업에 삼성이 ‘체급’을 키워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치열한 3파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4일 하만과 인수계약을 체결한 후 하만 주주총회 승인, 미국을 비롯한 10개 반독점 심사 대상국 승인 등 인수에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하만은 인수 이후에도 삼성전자의 자회사로서 현 경영진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다.
하만 인수대금은 약 70억 달러(한화 9조 2000억여원)로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다. 하만의 주주들은 보유주식 1주당 112달러(한화 약 13만원)의 현금을 지급받고,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은 하만의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된다.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 겸 하만 이사회 의장은 "삼성전자와 하만은 오디오, 가전, 스마트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제품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커넥티드카 분야의 기술혁신을 선도해 완성차 업체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 삼성의 대두에 긴장하는 LG·SK..."전장업계 三國志 열리나"
자동차 전장분야는 앞으로 다가올 ‘스마트카’ 시대에 황금알을 낳는 유망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하듯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2005년 19%에 불과했던 자동차 대당 전장부품 원가 비율이 오는 2020년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신성장산업의 화두가 된 자율주행자·전기차 등도 '스마트카'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내연기관의 대명사였던 자동차가 미래에는 '전자기기'가 된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기기 분야에서 남다른 강점을 지닌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이 과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장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대해, 하만 인수를 통한 '권토중래(捲土重來)'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스마트카’ 전장시장 규모는 매년 13%씩 성장해 오는 2025년 186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완성차 시장 성장률인 2.4%보다 5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이 중 하만이 참여하고 있는 인포테인먼트·커넥티드 서비스·자율주행·카오디오 등 전장사업 시장의 경우 매년 9%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지난해 450억달러였던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이면 약 1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하만은 2016년 현재 전 세계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24%로 1위, 텔레매틱스(Telematics)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0%로 2위를 각각 기록 중인 전장사업 분야 전문 기업이다.
하만의 매출 중 65%는 전장사업에서 발생한다. 하만의 지난해 매출은 70억 달러, 영업이익은 7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하만은 JBL,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유명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카오디오에서도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해 전세계 시장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하는 업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 강점을 보여온 삼성전자는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 선두기업 하만을 인수함으로써 전장사업분야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날개’를 얻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전장업계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하만을 등에 업고 단숨에 주목할만 한 경쟁자로 떠오름에 따라, 그간 국내 전장사업을 공들여 다져놓은 LG와 SK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전장사업에 뛰어든 LG는, 현재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가 TV사업본부를 추월할 정도로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LG그룹은 LG화학(전기차 배터리), LG디스플레이(자동차용 LCD·OLED), LG이노텍(소형부품 모듈) 등 전 계열사가 전장 사업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SK도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을 선봉에 세워 전장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차량용 전장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정식 팀으로 승격시키는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SK텔레콤은 BMW코리아와의 협업으로 5G시험망을 통한 ‘커넥티드카·드론·도로교통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완성차 업체들과의 콜라보에 주력중이다.
국내 1위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모비스에선 당분간 삼성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며 시장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는 차세대 전장부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4월 현대오트론을 설립해 자동차 전자제어장치·반도체 등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이번 인수 중 하나는 오디오 관련인 것으로 안다”면서 “아직까지 자동차 부품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 확보한 삼성의 ‘승부수’...컨트롤 타워 부재는 '고민거리'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악재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며 탄탄한 미래 먹거리 사업을 확보한 것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의 기술과 하만의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오디오 등의 기술이 만나면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미래전략실 해체로 각 계열사를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가 공백상태로 놓여진 것은 한계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삼성이 ‘사장단 체제’로 전환해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시장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필수적인 전장사업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경영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나아가 총수의 결단 없이, 사장단에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엔 큰 부담이 뒤따르는 만큼,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삼성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의 한 관계자는 “(총수의 부재 등) 현재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장기적인 의사결정 대규모 투자건에 대해선 어떻게 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도 “CEO와 경영진이 있으니 하만 인수 후 투자도 차질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좌우명 :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