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물산이 처분해야 할 주식수가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어든 것과 관련, 특검이 집요하게 ‘청와대 외압’과 ‘삼성 로비’ 여부를 파고들었지만 혐의 입증에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4차 공판 증인으로 인민호 청와대 행정관이 출석했다. 인 행정관은 공정위 소속으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에 파견돼 근무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관련해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를 연결한 인물로 알려졌다.
특검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삼성SDI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매각해야할 삼성물산 지분 1000만주가 500만주로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 공정위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과 삼성의 로비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공판이 두달째를 넘기는 시점에서도 의혹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도 특검은 증인과의 지루한 ‘스무고개식’ 질답을 이어갔다.
특검은 인 행정관이 석 서기관에게 전화로 500만주 처분 가능성을 물은 이유에 대해 추궁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17차 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석동수 공정위 서기관은 “인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 ‘매각 지분을 500만주로 할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같은 특검의 추궁에 인 행정관은 석 서기관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사안을 물어본 사실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인지 소멸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될 수 있다”면서도 “만일 강화로 본다면 900만주가 될 수는 없고 400~500만주가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주식 9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정위 보고서에 대해선 “아마도 실무자의 오류가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다만, 인 행정관은 “공정위 실무자인 김정기 과장이 ‘900만주 처분이 맞다’는 얘기를 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며 “(석 서기관에게 물어본 것은) 상관인 최상목 청와대 비서관에게 보고할 시, 설명을 위한 상황파악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최상목 비서관의 지시가 있었냐는 특검의 질문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해, 청와대 외압 의혹을 일축했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청와대 개입 없었다" 증언 이어져
공정위는 합병 건을 검토하면서 외부 전문가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를 거쳐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 마련했고, 삼성에 500만 주를 처분토록 권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 행정관의 증언에 따르면 공정위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인 행정관뿐만 아니라, 지난 공판에서 진행된 관련 증인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특검으로선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인 행정관이 2015년 12월 삼성그룹 법률대리인 황 모 변호사와 만난 경위에 대해 캐물었다.
특검에 따르면 황 변호사는 인 행정관과 만난 뒤 장충기 사장에게 전송한 문자에는 ‘인 행정관을 만나 서류를 전달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윗선에서 보고를 검토하라고 할 경우 회사의 입장이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BH(청와대)가 구체적인 지시는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인 행정관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1~2분간 청와대 앞에서 잠깐 본 적은 있다”며 “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는 점을 완곡하게 말한 것이고, 청와대에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 행정관은 “제가 공정위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어차피 공정위에서 잘 판단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합병 건에 대해)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구나라는 것을 파악하게된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황 변호사로부터 건네받은 서류에 대해선 “어차피 합병이 끝나면 공정위 석동수 사무관이나 김정기 과장이 제게 설명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서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읽지않고 서랍에 보관하다가 파쇄했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공정위 실무자가 인 행정관에게 보낸 보고서와 관련한 증언도 이어졌다. 보고서에는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인 행정관은 해당 보고서를 경제수석실 최상목 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최 비서관은 공정위가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는 대신, 삼성이 처분 계획과 함께 발표할 수 있도록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 행정관은 이에 대한 증언에서 “공정위가 갑자기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 매각발표를 할 경우, 시장 충격으로 인한 투자자 손해가 발생이 우려됐다”며 “삼성이 블록 딜(시간 외 대량매매)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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