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미세먼지 OUT②]'노동자의 가슴은 시커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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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미세먼지 OUT②]'노동자의 가슴은 시커멓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7.06.15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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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 장비 지급·미세먼지 측정기 설치 의무화 해야"
"산재 인정폭 넓혀야…폐렴 합병증 인정도 절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분양시장이 거듭 호황을 누리면서 도심 인근 건설현장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 역시 높아지는 추세다. <시사오늘>은 '건설현장 미세먼지 OUT'을 통해 건설현장 미세먼지 실태와 해결책을 짚어본다. 이번에는 건설현장 미세먼지에 노출돼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 한진중공업의 한 하청업체에서 근무했던 건설노동자 A씨는 2008년 11월 진폐증으로 사망했다. A씨의 일이 대부분 분진작업장에서 이뤄졌던 만큼, 유족들은 A씨의 사망원인이 업무상 질병이라고 판단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등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측의 강력한 반발로 해당 사안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법정공방을 거쳐야 했다. 사망과 진폐증에 인과가 있음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2011년에서야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망자는 3년 간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2. 30년 가까이 건설현장을 누볐던 건설노동자 B씨는 2010년 진폐증 확진을 받고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앞서 그는 2005~2009년까지 삼성물산, 효성건설 등이 시공한 터널공사, 아파트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면서 다량의 비산먼지에 노출돼 있었다. 그러나 업무상 질병임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작업 중 발생한 먼지가 미미했다며 B씨의 재해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지지부진한 갑론을박이 이어진 끝에서야 B씨는 가장 마지막에 근무한 사업장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미세먼지 피해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 pixabay

다시 증가하는 건설노동자 미세먼지 피해

건설노동자들 사이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국내 전체 업계 '업무상질병자'(업무상질병 요양자+업무상질병 사망자) 중 진폐증으로 확인된 노동자 수는 2011년 1018명, 2012년 897명, 2013년 816명, 2014년 1019명, 2015년 1125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을 기점으로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추세는 특히 건설업종에서 눈에 띈다. 업무상질병 사망재해로 판정된 건설노동자들 가운데 진폐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3.85%에서 2015년 10.71%로 크게 늘은 것이다. 진폐증으로 업무상질병 요양재해로 인정받은 건설노동자들도 2012년 60명, 2013년 52명, 2014년 50명으로 감소하다가, 2015년 62명으로 급증했다.

진폐증이란 폐에 분진이 쌓여 나타나는 질병으로 주로 광물업계, 화학업계, 건설업계 종사자들에게 발생한다.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규정하는 분진작업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 인한 건설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비산(날림)먼지를 끊임없이 흡입하면서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걸리는 건 물론, 집중력을 약화시켜 끔찍한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노동자 215명을 대상으로 비산먼지에 대한 건설노동자들의 피해 인식 정도를 설문한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의 실태 및 영향에 관한 연구(2004, 한국건축시공학회)'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 중 77.2%가 '비산먼지로 인한 건강에 대한 피해'에 대해 '매우 많다' 또는 '많다'고 답했으며, '비산먼지로 인한 작업방해와 스트레스 유무'를 묻는 질문에는 37.5%가 비산먼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산재 인정으로 가는 길은…'바늘귀'

문제는 이처럼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앞서 제시한 사례들과 같이 업무상질병임을 인정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데에 있다.

업무와 발병의 상당인과관계 여부를 정확히 짚기 힘들고, 건설업 특성상 고용기록, 작업기록 등 자료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0~20년 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도 난관이 많다. 진폐증 관련 산재 통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진폐증 외에 폐질환·폐섬유화증·폐암 등은 발병 원인과 인정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건설노동자 입장에서는 노출 기간과 잠복기, 노출된 유해 물질 등을 모두 입증하고 충족시켜야만 산재로 인정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표적인 게 '故 이재빈 사건'이다. 2006년 폐암 판정을 받은 건설노동자 이재빈씨는 17년 간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들이마신 비산먼지, 석면가루 등 미세먼지로 인해 질병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폐암을 직업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통보였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이 씨는 산재를 신청한지 5년 만인 2011년 2월 2심에서 승소했고, 그의 부인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받았다. 이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만성폐쇄성 폐질환이 업무상질병에 추가됐고,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된 건설노동자들에게도 산재 보상의 작은 길이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바늘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진폐재해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4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업무상질병 폐질환이라면 보통 광산노동자를 먼저 떠올리는데 건설업 종사자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며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어서 실제로 산재 인정까지 가는 노동자들이 적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설노동자 미세먼지 피해 해결책은?

▲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부터 건설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건설업계가 자발적으로 방진 장비 지급에 신경써야 한다 ⓒ 뉴시스

건설노동자들의 미세먼지 피해를 낮추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마스크 등 방진 장비 착용 등으로 미연에 건강악화를 방지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는 사업주가 방진 장비를 지급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호흡용 보호 장구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시사오늘>과 만난 건설노조의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등 관계당국이 현장을 상시 감독·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이전에도 현행법에는 분진으로부터 건설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관리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한 다량의 미세먼지 발생이 예상되는 건설현장에는 반드시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5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휴대용이 아니라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미세먼지 측정기 설치를 의무화해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할 시에는 잠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며 "건설기계 차량 매연 검사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건설업 특성상 어느 정도의 미세먼지 흡입이 불가피한 점을 감안하면, 이에 따른 산재 인정폭을 확대하는 방향이 효과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우선, 모든 산재 사안이 그렇듯 입증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산재법에서는 산재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에게 재해와 업무의 연관성 등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경제력이 부족한 데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피해자보다 사업자의 영업비밀에 더 무게를 둔 꼴이다. 특히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진폐증 등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는 더욱 난관이 많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지난달 25일 산재 피해자의 '현장조사 참여권'과 '업무상 재해에 관한 정보청구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산재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피해 입증을 위한 정보를 청구할 수 있으며, 역학조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폐렴을 진폐 합병증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현행 산재법에서는 진폐 합병증으로 활동성 폐결핵, 기관지염, 폐암, 폐기종, 기흉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폐렴은 제외돼 있는 실정이다. 전체 진폐증 환자 중 80% 이상이 폐렴을 앓고 있는 현실과 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앞서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진폐재해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진폐증이 폐렴을 유발하는 경우가 무척 많은데, 폐렴은 진폐 합병증에 포함되지 않아 산재 요양을 못 받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진폐 피해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폐렴으로 고통 받고 죽어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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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2017-09-01 11: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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