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17 목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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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주역들②] 그들이 기억하는 “그날은…”
이인영 “6월항쟁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김승남 “6월 항쟁의 마무리는 광주에서 맺었다”
이재오, “6월 이끌었던 국본에서 활동…삶의 원동력”
2017년 06월 17일 (토) 최정아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정아 기자)

“고려대 앞부터 동대문운동장(現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보도를 가득 메웠던 학생들. 청계천 고가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던 수많은 차량들. 학생들에게 김밥과 박카스를 건네며 응원을 해주던 상인들. 또 정의로웠던 시민들. 87년 6월 항쟁의 모습이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의 말이다. 전국 길거리에 민주화 물결이 휘몰아치던 30년 전 6월. 이 의원이 묘사한 그날의 장면들은 흡사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던 ‘촛불항쟁’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30년 전 6월의 모습이 촛불로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굴곡(屈曲) 속에서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오늘날 정계 곳곳에 중량감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에도 ‘촛불’로서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에 <시사오늘>은 6월항쟁의 주역들을 살펴보고 그날의 장면들을 되짚어 봤다.

   
▲ ⓒ시사오늘/그래픽=박지연 기자

당시 6월 항쟁 양대 거목으로 故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꼽힌다. 두 전직 대통령은 6월항쟁의 구심점이 됐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상임공동대표단으로 활동하며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부산·경남지역에선 故 노무현 전 대통령(부산 국본 상임집행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가두시위를 이끌었다.
이밖에 최근 문재인 정부에 입성한 국본 출신 의원으로 민주당 이해찬 의원, 김부겸 의원, 김영춘 의원 등이 있다. 새 정부에서 중국 특사로 눈길을 끌고 있는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의 경우, 1987년 6월 당시 전국 시위를 기획하는 국본 집행위원과 상황실장으로 활동했으며, 김부겸 의원(행정자치부 장관)은 국본 집행위원 출신이다.

◇ 이인영 “6월항쟁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 민주당 이인영 의원 ⓒ뉴시스

한편, 6월항쟁을 이끌었던 대학생들은 오늘날 현역 정치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중 이인영 의원은 30년 전 6월 항쟁의 중심에 서있던 대표적인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인물이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의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길거리 투쟁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이 의원은 당시 ‘전대협 동지’ 였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전 원내대표), 김태년 의원과 함께 현재 정치권의 주류군을 형성하고 있다. 그에게 ‘6월 항쟁’은 어떤 의미일까.

- 3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의 육체가 태어났다면, 우리의 (민주화) 정신은 바로 87년 6월에 탄생했다고 본다. 제2의 생일인 셈이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4·19 민주화, 6월항쟁을 통해 시민의식이 깨어났다. 시민의 탄생이다. 또 촛불항쟁과 6월항쟁은 닮은 면이 많다. 촛불항쟁의 87년도 버전이 바로 6월항쟁이다.”

- 지난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던 촛불항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했나.
“6월 항쟁은 승리했지만, 그해 대선은 패배했다. 이번 촛불은 항쟁에서도 승리하고 탄핵과 정권교체까지 이뤘다. 더 강력하고 온전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끝까지 평화로 일관하면서 새로운 미래질서를 탄생시킨 것이다. 지난해 촛불을 지켜보면서 역사는 바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6월 항쟁’이 개인적인 삶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궁금하다.
“6월 항쟁과 촛불 모두 같은 맥락이다. 국민이 역사적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항쟁을 통해 확인했다. 항쟁 이후 확신을 넘어서, 삶의 신념으로 다가왔다. (정계에 진출했던 부분도) 그렇게 작용했다.”

- 6월항쟁 동지들과 함께 정계에 진출해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당시 30년 전 이야기 많이 하는지 궁금하다.
“그 때만큼 ‘잘 살지는’ 못한다.(웃음)”


- ‘잘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때처럼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할 만큼 순수하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 때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단 한명의 소외, 낙오, 절망도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복지확대, 노동존중 등의 가치를 위해 헌신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더 높은 수준,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정치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 김승남 “6월 항쟁의 마무리는 광주에서 맺었다”

   
▲ 민주당 김승남 전 의원ⓒ뉴시스

‘6월 16일’은 전남대 출신 6월항쟁 주역들에겐 뜻 깊은 날이다. 전남대 중앙도서관 앞 5·18광장에서 박춘애 당시 총여학생회장이 긴 생머리를 자르고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여대생의 긴 머리가 잘려나간 순간, 그 자리에 있던 항쟁 동지들은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7년 6월 16일, 이들 전남대 출신 항쟁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시사오늘>은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민주당 김승남 전 의원과 함께 30년 전 그날을 되돌아봤다.

- 6월 16일은 전남대 출신 6월항쟁 주역들에게 뜻 깊은 날이라고 들었다.
“광주의 6월항쟁은 30년 전 6월 16일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총학생회 간부들이 민주화 투쟁의지를 다짐하며 삭발식을 단행했다. 잊지 못할 장면도 있다. 바로 ‘그날’ 박춘애 선생님(당시 여총학생회장)이 머리를 잘랐다. 삭발식에 참여한 학생이 30~40명이었는데 여학생은 박춘애 선생님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학생의 긴 머리가 잘려나가자 탄식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서울’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항쟁이 이뤄졌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6·10 항쟁이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쟁의 마무리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맺어졌다. 당시를 회상하면 이렇다. 전남대 삭발투쟁을 계기로 30만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지자, ‘광주 5월의 비극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군부 온건파들의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결정적으로 6월항쟁에서 승리를 매듭짓는 6·29 선언이 나오게 됐다. 시작은 서울이었지만, 마무리는 광주에서 맺어진 것이다.”

- ‘6월 항쟁 세대’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인가.
“30년 전엔 제도적인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민주화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젊음과 꿈을 포기하고 묵묵하게 자리해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지금은 50대가 됐을 것이다. 미안하고도 고맙다. 지난해 촛불항쟁이 보여준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건설, 양극화 문제 등이다. 동시에 분단문제도 중요하다. 6월항쟁 세대가 통일의 물꼬를 트는 역할까지 했으면 좋겠다.”

◇ 이재오, “6월 이끌었던 국본에서 활동…삶의 원동력”

   
▲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재오 전 의원ⓒ뉴

그렇다면 보수 진영에서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인물은 누구일까. 6월 항쟁의 구심점이었던 국본과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 출신 보수진영 정치인들이 눈에 띈다. 보수진영 원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은 민추협에서 활동한 바 있다. 친이계 좌장으로 불린 이재오 전 의원 또한 6월항쟁 당시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 30년전 6월,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을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6월 항쟁 당시 국본이 주체가 됐다. 당시 이상수 변호사 등과 함께 한 팀이 돼서 홍보를 전담했다. 홍보물을 배포·인쇄해 각 대학에 돌렸다. 故 이한열 열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엔 시위를 주도하고 지휘했다. 당시엔 국본 집행위원들 모두 자신을 희생하며 항쟁을 이뤄냈다. 항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6월항쟁 이후 정의로운 삶의 가치관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됐다.”

- 지난해 촛불항쟁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번에 촛불항쟁에서 등장한 키워드가 ‘이게 나라냐’ 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현 정치체제가 나라의 값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말이다. 크게는 87년 체제의 헌법, 더 나아가 선거제도를 개편해야한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간과하면 안 된다고 본다.”

최정아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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