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공판] '뒤죽박죽'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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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공판] '뒤죽박죽'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공방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7.07.05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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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결여‥신빙성 없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4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최순실 뇌물 관련' 35차 공판에 증인 출석하고 있다. ⓒ 뉴시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을 기록해 놓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놓고 특검과 변호인단 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특검은 수첩에 기재된 내용으로 미뤄볼 때,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승마지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얘기가 언급됐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변호인단은 수첩 내용 중 앞뒤가 맞지 않고, 나중에 덧붙여 기재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35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증인으로는 청와대와 삼성 사이를 연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출석했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기록한 이른바 ‘안종범 수첩’은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로 꼽힌다.

검찰은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기록된 이 수첩 63권을 확보한 상태다.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이었던 김 모씨로부터 검찰이 확보한 56권과 최근 새로 추가 제출 받은 사본 7권 등이다. 수첩의 앞 면은 대통령 주재 공식 회의 등에서 나온 내용이, 뒷면은 박 전 대통령과 안 수석의 전화통화·면담에서 나온 내용이 담겨 있다.

공판에서 특검은 수첩의 일부 내용을 공개하는 한편,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경영권 승계 지원을 부정청탁한 대가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승마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이 이뤄졌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특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가 있기 이틀 전인 2015년 7월 25일의 수첩에는 ‘삼성 엘리엇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권익’, ‘글로벌스탠다드’, ‘대책지속 강구’ 등이 기재돼 있다. 

 

▲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특검은 독대가 있기 5일 전(2015년 7월 20일) 대통령에게 보고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최종보고서 내용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또 ‘삼성 후계 관련 말씀자료’와도 지배구조가 외국계 기업에 취약하다는 내용이나, 외국인 지분비중이 높아 주주친화적 경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수첩의 내용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평소 삼성 합병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안종범 수첩’에 기재된 내용대로 경영권 승계에 관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라는게 특검의 주장이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은 “수첩의 내용은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면서도 “말씀자료는 비서실 등에서 취합한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 실제 독대에서 대통령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안종범 "박 전 대통령,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장시호, 최순실, 정유라' 등에 대해 말한 적 없어"

변호인단은 ‘안종범 수첩’이 가지는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맞섰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 당시 동석하지 않았고, 수첩 내용 역시 사후에 내용을 듣고 적은 것에 불과해 추가로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법리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수첩의 증거능력은 중대한 3가지의 결함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우선, 수첩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것인지 알 수 없어 ‘전문증거법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대통령이 했다는 말도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기재한 ‘전문진술’에 해당하므로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변호인단이 지적한 안 전 수석의 수첩 내용 중에는 앞뒤가 맞지 않거나 기업들의 현안이 서로 뒤섞여 기재된 경우도 발견돼, 신빙성에 의문을 더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말을 급하게 받아 적다보니 안 전 수석 자신조차 알아보기 힘든필체로 적힌 단어도 발견될 정도였다. 

▲ 지난해 11월 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대국민담화를 진행하는 모습 ⓒ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24일 청와대 안가(安家)에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CJ그룹 손경식 회장, SK이노베이션 김창근 회장을 만났고, 다음날인 25일 같은 장소에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LG그룹 구본무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등 7명의 대기업 총수와 면담을 가진 바 있다.

공판에서 공개된 수첩 내용을 보면, 24일자에 처음 삼성에 대해 언급되고, 마지막에 한진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으로 돼 있다. 25일자에서도 한진에 대한 언급이 2번 이뤄졌고, 그 다음 삼성에 대한 내용이 적혔다. 면담 시간 순서대로라면 삼성이 먼저 언급되고 그 다음 한진이 언급되야 하는데, 순서가 뒤섞여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이 “해당 날짜에 기재된 내용이 이러한 것은 4개 기업 면담이 모두 끝난 후 대통령이 증인에게 한꺼번에 말했기 때문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안 전 수석은 “그렇다”고 답했다.

25일자 수첩 내용 중, 대통령의 한진 언급에서 ‘승마협회-직접’이라고 적혔거나, 삼성 관련 메모에서 ‘홈쇼핑’, ‘면세점’ 등 관련성이 떨어지는 메모가 뒤섞여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이에 대해 안 전 수석은 “왜 그렇게 썼는지 기억이 안난다. 한진은 혼돈해 쓴 것 같다”고 자신의 실수를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이 수첩내용을 토대로 특검에서 증언한 내용 중 삼성의 정유라 승마지원과 관련해 ‘유추’해 진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의문이 한층 증폭되기도 했다.

2016년 2월 15일자 수첩에 기재된 ‘빙상·승마’ 메모에 대해 안 전 수석은 지난 특검조사에서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빙상·승마 지원에 관한 얘기를 한 것 같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은 이 부회장 공판에선 “당시 대통령이 구체적 말씀없이 빙상·승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만 했다”면서 “특검 조사에서 ‘지원’이라는 말을 한 것은 유추해서 한 말”이라고 말을 바꿨다

‘빙상·승마’ 메모가 기재된 것과 관련, 대통령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장시호, 최순실·정유라 얘기를 한 적 있느냐고 묻는 변호인단의 질문에도 안 전 수석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밤 11시 30분까지 진행된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은 5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채택 여부와 관련해 “증인 신문이 모두 종료된 후 증거채부를 정할 것”이라며 공판에서 수첩 내용을 증거채부 형태로 제시하면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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