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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의 하루⑤]노가다꾼의 이방인化, 갑질의 일상化
청년 백수 김철수, 건설 일용직 '양키'가 되다
2017년 07월 31일 (월)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시사오늘>은 왕초보 '노가다꾼' 청년 백수 김철수 씨의 하루를 통해,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명해 봤다 ⓒ 뉴시스

우리 사회에서의 을(乙)에 대한 갑(甲)의 횡포는 '연쇄성'을 지닌다. 갑에게 갑질을 당한 을이 병(丙) 위에 군림하고, 병은 다시 정(丁)을 타박한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는 죄책감의 빈곤 속에서 갑질은 그렇게 일상화된다. 그야말로 '짐승의 시대'다. <시사오늘>은 이 같은 잔혹한 현실 가운데 '갑을병정'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를 조명한다.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와 기자의 체험 등을 토대로 각색한 글이다.

"야 이 XX들아, 너희 이수증도 없다면서?"

안개가 자욱하게 꼈던 7월의 어느 날 새벽 5시, '취포자(취업포기자)' 김철수(가명, 30) 씨는 옷장 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군복을 꺼내 걸쳐 입었다. 신발장 깊숙이 먼지만 가득 쌓였던 군화도 오랜만에 빛을 봤다. 졸린 눈을 비비며 김 씨가 향한 곳은 서울 청량리역 인근에 위치한 한 인력사무소였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노가다(막노동)'를 선택한 것이다.

인력사무소 앞에는 굳게 닫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전날 비가 잔뜩 내리는 바람에 일을 쉰 인부들이 모여든 것이라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부터 시작해서 김 씨보다 앳돼 보이는 청년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이었다. 이내 문이 열리자, 너 나 할 것 없이 담배 한 모금을 쭉 들이키고는 꽁초를 땅바닥에 휙 던진다.

인력사무소 직원이 김 씨의 이름과 나이를 물으면서, 신분증과 건설기초안전교육 이수증을 준비하라고 했다. 김 씨는 벙쪘다. 10년 전 용돈을 벌려고 노가다를 뛸 때는 그런 게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수증이 없다고 대답하자, 인력사무소 직원은 "에이 씨, 일단 앉아있어"라며 김 씨에게 핀잔을 줬다.

잠시 후 소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인부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베테랑으로 보이는 인부들이 먼저 호명됐다. 그들은 소장과 친분이 꽤나 두터운 눈치였다. 그렇게 30~40분이 지날 때쯤, 소장은 김 씨를 비롯해 다소 젊어 보이는 인부들을 손짓으로 슬쩍 불렀다.

"야 이 XX들아, 너희 이수증도 없다면서? 이거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엄청 힘들어." 소장은 욕설과 함께 짐짓 겁을 주면서 "이번에는 이수증 없어도 한 번 봐줄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 거기 빵꾸 난 데 여기서 한 X 데려가"라고 누군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김 씨는 오전 7시께 허름한 봉고차에 올랐다.

봉고차에는 김 씨를 포함해 총 5명의 인부들이 있었다. 김 씨를 제외한 4명의 인부는 오랜 기간 노가다를 함께 전전한 팀이었다. 팀원 중 막내가 개인 사정으로 빠지는 바람에 생긴 빈자리를 김 씨가 메꾼 것이다. 차 안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모두들 눈을 꾹 감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이동했을까, 봉고차가 멈춰 섰다. 경기 하남에 위치한 한 빌딩 건설 현장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김 씨는 노가다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이수증이 없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현장에 배치된 것이었다. 이수증 조회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시작부터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셈이다.

차에서 내린 인부들은 작업복, 안전화, 장갑, 조끼, 등산용 머플러 등 각자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김 씨는 군복이 작업복이었고, 군화가 안전화였다. 다른 장비는 없었다. 김 씨가 당황하자, 함께 차를 타고 온 한 인부가 욕설을 퍼붰다.

"씨X, 야 이 양키 XX가 빠져가지고. 얼른 들어와서 장비 챙기고 청소부터 해!"

"이야, 짬찌 냄새가 풀풀 풍기네"
원청→하청→인부…'도미노 갑질'

이날 김 씨는 하루 종일 '양키'로 불렸다.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쳤던 그가 미군복을 입고 현장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양키, 여기서 목장갑이랑 하이바(안전모) 챙겨", "양키, 빗자루로 여기 좀 쓸어", "양키 XX야, 빨랑빨랑 안 움직이냐." 양키는 이곳에서 소외된 '이방인'이었다.

아침 식사는 없었다. 작업 전 안전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양키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렸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현장 곳곳이 진흙투성이였다. 다른 인부들은 어느새 안전화 위에 개인 장화를 덧신었다. 물론 양키에게는 장화가 없었고, 주어지지도 않았다. 군화 사이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모두 기술자였다. 가장 연륜 있어 보이는 인부는 능숙하게 철근을 썰었고, 또 다른 인부는 드라이비트 작업을 위한 시멘트 배합을 준비했다. 나머지는 건물 위층으로 쇠 파이프 등 자재들을 들고 올라갔다. 사전에 할 일들이 정해진 것 같았다. 양키도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자재를 옮기기 시작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달갑잖은 태양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양키의 이마 주름 사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소매를 걷을 수는 없었다. 목까지 추켜올린 작업복도 내릴 수 없었다. 하이바는 당연히 벗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그리고 부상으로부터의 보호 차원이었다.

   
▲ 김철수 씨가 작업복으로 착용한 미군복. 무더운 날씨에 땀방울이 줄줄 흐르지만 목까지 치켜올린 옷깃과 소매 등을 걷을 수 없다. 미세먼지와 부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 시사오늘

그렇게 2시간 가량 흘렀을 무렵, 현장 입구로 상대적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양키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이야~ 어디서 짬찌 냄새가 풀풀 풍기네"라고 크게 외쳤다. 인부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그 남자 주변으로 모였다. 원청업체(본사)의 현장 관리감독관 A씨였다. 양키도 눈치껏 그쪽으로 이동했다.

A씨는 눈으로 슬쩍 현장을 훑어보더니 "에이 씨, 바쁘더라도 깔끔하게 좀 작업해 주이소"라며 공격적인 어투로 말했다. 양키는 인부들이 왜 자신에게 빗자루부터 쥐여 줬는지 깨달았다. 이윽고, A씨는 하청업체 소속 현장 관리감독관 B씨가 어디 있는지 인부들에게 물었다. 못 봤다는 인부들의 대답을 들은 A씨의 얼굴은 금방 붉으락푸르락해 졌다.

인부들에게 작업을 재개하라고 지시한 A씨는 멀찌감치에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의 입에서 막말이 쏟아졌다. 잠시 후, 또 다른 남자가 현장에 들어왔다. B씨였다. 원칙적으로 B씨는 현장에서 인부들을 맞아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늦게 나타났고, 인부들은 B씨 없이 작업을 개시한 것이다.

B씨는 A씨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작업 중인 인부들에게 다짜고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 쓸데없는 트집이었다. 1시간 작업·10분 휴식도 지켜지지 않았다. B씨는 양키를 비롯한 인부들에게 "이래서 언제 작업을 마치냐. 임금 제대로 받고 싶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돈 얘기가 나오자, 인부들의 얼굴도 붉어졌다. 거친 언성이 한동안 오고 갔고, 작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작됐다.

'이방인'의 뒷모습…공깃밥을 처넣었다

   
▲ 김철수 씨의 유일한 낙이었던 교통정리. 작업현장 문밖에서는 눈치껏 하이바(안전모)를 벗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 시사오늘

자재정리를 대충 마친 양키에게는 각종 공사판 잡일이 맡겨졌다. 쓰레기를 현장 구석진 곳에 모았고, 다른 인부들의 일을 거들기도 했다. 자재를 실은 차량이 들어올 때는 현장 입구에서 교통정리도 했다. 잠시 하이바를 벗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있는 교통정리하는 순간이 양키의 유일한 낙이었다.

오후 12시 30분, B씨가 점심시간을 알렸다. 다 같이 식당에 갈 줄 알았더니 한 명씩 교대로 먹고 오는 시스템이었다. 자신의 차례를 맞은 양키가 식당으로 향했다. 바로 전 타임 식사를 마친 인부의 뒷모습이 양키의 눈에 들어왔다. 홀로 현장에 복귀하는 인부의 어깨는 무척 쓸쓸해 보였다.

   
▲ 교대로 점심식사를 마친 뒤, 현장으로 돌아가는 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그는 갑질의 무게와 이방인의 무게, 그리고 노동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있다 ⓒ 시사오늘

식당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양키는 그들의 시선이 낯설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작업복, 회색 먼지가 잔뜩 묻은 안전화, 얼굴 군데군데 묻은 시커먼 얼룩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공깃밥을 처넣었다.

아까 그 인부의 어깨가 왜 쓸쓸해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양키도, 그 인부도 모두 '이방인'이었다.

'파견의 再파견'…위대한 노동의 무게

오후에는 그나마 작업이 수월했다. 양키는 일이 점점 손에 익었고, 눈치도 빨라졌다. 그때 새벽에 봤던 인력사무소 소장이 갑자기 현장에 나타나서는 양키를 불렀다. 그는 이제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건설현장에 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파견의 재(再)파견'이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키는 따져 물었지만 소장은 오히려 "야 이 XX야, 너 이수증도 없는데 일 넣어준 거 몰라? 오늘 일급 안 받고 싶어?"라고 폭언을 했다. 양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곧장 짐을 챙겼다.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인부 한 사람이 "양키, 또 오면 그때는 열심히 해라잉"하고 인사를 해 줬다. 다른 인부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작업을 이어갔다. 자주 있는 일인 모양이었다.

다른 현장은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그곳은 아직 기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양키에게는 역시나 잡일과 잔심부름이 주어졌다. 간혹 삽질을 맡기기도 했지만 자재를 나르거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 40kg 짜리 시멘트 포대를 건물 윗층으로 나르는 건 고역이다. 다 사용한 포대는 한 곳에 모아 정리해야 한다 ⓒ 시사오늘

오후 4시, 양키가 집을 나선지 약 9시간 가량 흘렀다. 40kg짜리 시멘트 포대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수년 만에 신은 군화는 안전화가 아니라 납덩어리였다. 양어깨와 양발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팔다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거친 폭언과 막말 등 갑질의 무게도, 낯선 시선에 감춰진 이방인의 무게도, 노동의 무게 앞에서는 한 줌의 시멘트 가루와 같았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 관리감독관이 자재를 정리하고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노동의 무게는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뒷정리하는 1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9만9000원'…일상적 갑질 견딘 代價

일을 마치고 인력사무소 소장에게 연락했다. 그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며 알아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인력사무소로 돌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양키'에서 청년 백수 김철수 씨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지 못해 땀 냄새가 풀풀 풍겼다. 주변 사람들이 김 씨를 흘깃흘깃했다. 그는 퇴근길에 '노가다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과 마주해야 했다. 노가다꾼은 '갑을병정'의 밑에 위치해 있었다. 현장 안에서도, 현장 밖에서도 노가다꾼은 일상적인 갑질에 시달린다.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인력사무소 소장은 김 씨의 손에 제법 두툼한 봉투를 쥐여줬다. '9만9000원'이 들어있었다. 일급 11만 원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10%를 떼고 남은 금액을 김 씨에게 준 것이다. '치사하게 1000원까지 다 챙겨가냐'는 생각이 들었다.

   
▲ 작업을 마친 후, '양키' 김철수 씨의 안전화(군화). 아무리 안전화가 더러워졌어도 김 씨가 작업 당일 감당한 갑질의 무게와 이방인의 무게, 그리고 노동의 무게를 이 사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 시사오늘

"또 나올 거지?" 소장은 물었다. 김 씨는 치아를 보이며 크게 미소를 짓고는 "글쎄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소장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김 씨는 이를 무시하고 서둘러 인력사무소를 빠져나왔다. 김 씨가 안전화 삼아 신은 군화는 걸레처럼 더러워져 있었다.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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