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경제전문가도 아니다.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5년을 불과 5∼6개월 남겨두고 대기업들의 부도가 줄을 이었고 수출부진·금융부실·격렬한 노사분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이 밀어닥쳤다.
거기에다 기아사태의 해결방안을 놓고 김대중 씨 등 야당까지 해결의 도움을 주기보다는 기회주의적 방해책동으로 차일피일하면서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고 외국은행들이 빌려주었던 돈을 회수해가는 사태로 번졌다. 그 결과 외환부족 사태가 발생하여 국제통화기금(IMF)에 외환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김영삼 대통령을 나라 망친 대통령, 무능한 대통령, 심지어 무식한 대통령이라고 김대중 등 야당이 한목소리로 매도해서 많은 국민들도 마치 김영삼 대통령을 IMF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여, 언론까지도 정확한 정황을 말하기보다 나타난 현상만을 보도해 그 전말을 흐려놓았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부터 무려 32년을 군사독재정치를 해오면서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겁 없이 외국에서 빚을 얻어다가 국토개발 등 건설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 가까운 사람들끼리 은행을 떡 주무르듯 해가면서 흥청망청 돈을 썼다.
32년 동안의 정경유착으로 급기야 정치는 한없이 타락하고 기업은 자기 자본의 몇 배씩 빚을 지고 허덕이며 은행은 확실한 담보도 없이 권력이 시키는 대로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부실채권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국가 채무는 끝없이 늘어만 가는데, 권좌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통하여 외국 차관이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써야 하는 기업주들이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큰소리치며 누리며 사는 경제구조가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하나의 고비용·저효율의 문화로 굳어져 버려 중증의 한국병이 되어 겉에 나타난 현상만을 놓고 “박정희가 최고!”라고 여러 언론과 많은 국민들이 믿을 만큼 병든 문화로 뿌리를 내렸다.
권력과 결탁하여 금융특혜로 은행에서 과다하게 빚을 지고 방만하게 경영을 하다가 한계에 달하여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은행도 고객이 맡긴 돈을 찾으러 가면 내줄 돈이 없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작건 크건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통장을 들고 이 은행으로 갈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졌다.
IMF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수십 년간 쌓이고 쌓여 이로 인하여 당연히 오게 돼 있었고 또 우리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IMF사태는 와야만 했다.
보릿고개를 없앤 대통령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칭송하고 있는 박정희로부터 32년 동안 “한국 놈은 맞아야 한다”고 세 사람만 모여도 집시법에 걸리고 대통령을 함부로 이야기하면 국가원수모독죄를 지었다고 가죽점퍼를 입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민주주의를 하자고 하거나 헌법이라는 말만 해도 긴급조치위반, 위수령위반, 계엄령위반이라는 굴레를 씌워 정보부 지하에 끌려가서 두드려 맞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 혹독한 고문을 당해도 분해도 억울해도 당해야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요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일으키고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북한도 이기고 줄기차게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한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도 그들 자식들의 부정행위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의 타도대상이었던, 자식들과 친인척들에게 관리를 깨끗이 잘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승리의 꽃다발을 스스로 갖다 바쳤다고 큰소리친다.
한국 제일의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조차도 군사독재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꼭 보도해야 할 것은 안하고 안 해도 될 것은 힘주어 보도했던 유신신문의 한계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살면 됐지 독재면 어떻고 유신이면 어떤가’하는 송복 교수의 글을 자랑스럽게 싣고 있는 조선일보가 한심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스스로 큰 신문이라고 자부하는 신문들은 유신시대를 비롯한 군사독재 시절에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유신을 비롯한 군사독재 시절에 저질러진 미보도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역사는 바로 써지고 참된 언론의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고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IMF 사태 원인은 ‘박정희식 경제’
민주화가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도덕성과 정직성 그리고 투명성을 요구받는 문민정부에서 5년이라는 짧은 시일에 32년 동안 베일에 가려 쌓이고 쌓인 독재가 뿌린 부정부패, 부조리의 독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처방을 내고 완전히 치료까지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실채권의 양산으로 문을 닫게 된 금융권의 금융질서를 바로잡는 금융개혁법과 오랫동안 독재권력과 기업주의 결탁으로 속임을 당하다가 민주화 이후 독이 올라 강성으로 치닫는 노사관계의 노와 사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한 노동법을 개정하고 당장 국내외적으로 크게 파문을 일으켜 나라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기아자동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운 김대중 씨를 비롯한 야당이 경제도 국익도 저버리고 대안도 없이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기아에 편승해 원만한 해결을 방해함으로써 IMF사태를 촉진시켰다.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로 무너진 것처럼, 무려 32년의 군사독재가 만든 부실채권을 감당할 수 없어 부도를 내고 문을 닫게 된 은행과 자기 자본의 몇 배의 빚을 지고 허덕이던 기업 등에 무려 167조원, 달러로 1670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국민세금을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수밖에 없을 만큼 망가진 부실한 경제구조가 IMF사태를 부른 것이다.
IMF사태는 박정희로부터 독재권력의 부정부패가 32년 동안 계속되면서 누적되어 빚잔치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말을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뿌린 씨앗이 자라서 터진 것이다.
박정희는 가시적 성과에 조급한 나머지 한일국교 정상화를 너무 서둘러 독도문제를 비롯한 국가배상과 징용, 정신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그리고 각종 개인청구권을 도매금으로 넘겨 얼마나 많은 국가적 문제를 만들고 많은 국민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왜정 시절에 일본인들도 그렇게 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무시무시한 지하 감옥을 만들어 불법연행, 감금, 고문을 예사로 하면서 소비가 미덕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억지로 주먹으로 두드려 패면서 갈비를 먹으라고 얼마나 많은 국민을 괴롭혔는가? 박정희가 친인척을 깨끗이 관리했다고 하는 조선일보는 언제 조사는 해봤는가? 확실한 근거가 있는 말인가?
불법으로 무한대로 거둬들인 통치자금은 어떻게 얼마나 걷혔고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는가? 또 남은 돈은 얼마였고 어떻게 처리했는가? 박정희가 영남대학교 교주라고 하는데 언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만들어 교주가 됐는가?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 받은 돈으로 그것이 어떤 돈이든 좋은 일을 한다고 재단을 설립해도 되는 것인가?
떠도는 말로는 그동안 정수장학회에서 학생 3만 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는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조성했는가? MBC는 무슨 소리고 부산일보는 무슨 소리인가? 또 경향신문사 부지는 무슨 소리이고 스위스은행 소리는 왜 나왔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껏 살아 있다면 이런 것들도 밝히라고 요구하는 국민의 항의로 아마도 괴로움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등 몇몇 언론이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깨끗하고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칭송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안 보는 건지 못 본척하는 건지,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하여 반드시 밝혀져야 하겠다.
42. IMF의 도래와 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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