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송오미 기자)
“정치의 큰 역할은 인권을 실천‧실현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초선‧서울 은평구갑)의 말이다. 박 의원은 인권변호사 시절 세월호 유가족 측의 법률 대리인을 맡으며 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 작년 4‧13 총선 때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새누리당(現 자유한국당) 최홍재 후보를 누르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은평구갑에서 ‘당선’됐다. 당시 유가족들이 도라에몽 등 캐릭터 인형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작년 대한민국을 분노케 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국민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불러 모아 촛불을 들게 했을 때도 박 의원은 국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며 민주적인 정권교체에 힘을 보탰다. 〈시사오늘〉은 지난 19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아 ‘민주주의와 정치참여, 인권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초선‧서울 은평구갑)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회와 시위는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작동 요소”
박 의원은 집회와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가 나와 있는 다양한 조항들을 보여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인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 마련, 문화적인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가야 될 여러 가지 방향과 목표가 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사회인 ‘인권 선진국’이다. 인권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사회 구성원들이 인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인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안다고 해도 인권의 실천과 실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과 문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정치의 큰 역할은 인권을 실천‧실현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인권선언을 보면, ‘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 있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도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가 보장된다’라고 나와 있다. 유럽연합(EU)의 기본권리 헌장에도 ‘모든 사람은 모든 차원의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나와 있다.
이 조항들에는 ‘합법적’이라는 말이 없다. 그 이유는 대부분 집회와 시회는 법을 만드는 권력자들을 향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회와 시위는 범죄가 아니다. 집회와 시위의 본질은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는 매번 ‘집회‧시위의 자유는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요소다’라고 판시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욕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단 중 대표적인 게 집회와 시위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이지 않나. 이런 것을 아예 못하게 한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집회와 시위는 굉장히 소중한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제도적인 요소다.”
“한국은 권위주의 지표인 ‘권력 간격 지수’가 굉장히 높은 나라”
박 의원은 칼(KAL)기 괌 추락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언급하며 권위주의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설명했다.
“‘권력 간격 지수’라는 게 있다. 권위주의가 얼마나 세게 작동하는가를 나타내주는 개념요소다. 한국은 권력 간격 지수가 굉장히 높은 나라로 분류된다. 그만큼 권위주의가 세게 작동하고 있다는 거다. 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권위주의가 세면,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상관의 기분과 명령, 관례가 우선된다’고 말한다. 관례의 경우, 상관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다보면 그게 쌓여서 관례가 되는 거다.
권력 간격 지수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97년도에 칼(KAL)기 괌 추락사고가 있었다. 어떤 학자가 ‘이 사고의 원인은 권력 간격 지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조종사(기장)가 비행기 조종 장치를 하강으로 맞춰 놨는데, 그 옆에 부조종사(부기장)는 그게 잘못됐다고 깨닫고 말리려고 하다가 못 말렸다고 한다. 결국 비행기는 추락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관제센터에서 조종사에게 나오라고 지시할 때 마스터키를 꼭 챙기라고 이야기를 했다. 근데 이 전차를 수십 년간 운행한 경험이 있는 조종사는 마스터키를 뽑으면 전차 전체가 차단이 되고 수동으로도 문이 안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마스터키를 뽑아서 챙겨 나왔다.”
“정치적 공격이나 모략 볼 때, 내가 생각했던 세상과 달라 괴리감 느껴”
박 의원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간략한 강의를 끝내고, 평소 본인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러자 수강생들 사이에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박 의원은 자신이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괴리감, 실망감, 책임감 등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팟캐스트 방송 ‘박주민과 송채경화의 법 발의바리’ 시작에 대한 포부를 밝히면서 ‘법안을 안 바꾸면 적폐청산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떤 법안을 말하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질문은 최근 카이(KAI) 간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영장실질심사를 지금보다 더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을 바꿔야 개혁이 완수된다고 말했던 이유는 실제로 법이 기관의 성격과 규모, 작동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령이나 지시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러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완비 등은 법으로 명시가 돼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양해 하에 수사권의 일정 부분을 조정하자고 해도 되는데, 법이라는 튼튼한 틀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개혁적인 내용을 담은 법이 통과돼야만 개혁이 완수된다고 한 거다.
영장실질심사가 불신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영장전담판사를 선정하는 과정 때문이다. 서울 중앙지방법원의 경우 영장전담판사가 3명이다. 법원장이 영장전담판사를 (자의로) 찍어서 결정한다. 만약, 어떤 법원장이 특정 정치세력과 친하거나 한쪽으로 편향돼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찍은 영장전담판사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특정한 세력과 관계된 사건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하면, 기각을 내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지 않겠나. 실제로 지난 번 카이(KAI),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서 영장이 기각 됐을 때, 편향돼 보이는 것 같아서 나를 비롯해서 몇몇 분들이 문제 제기를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장전담판사를 뽑는 과정이 좀 더 투명하고 민주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판사가 백 명이 넘는다. 백 명이 다 함께 회의해서 (영장전담판사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판사가 내린 판결이 나중에 잘못됐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 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있나.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유죄라고 확정되면 1심 판사가 잘못됐다는 게 확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횟수를 따져서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게 좋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나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게 고착화되면 대법원의 눈치만 보면서 판단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검찰의 경우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무리한 기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한 기소를 해서 무죄가 나와도 승승장구하는 검사들이 많았다. 이때까지 이런 것들을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가 없었는데, 이번에 취임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무리한 기소로 판정될 경우에는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천명했다. 지금 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인사 불이익 때문에 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예전보다 좀 줄어들 거라고 본다.”
-정치를 하면서 처음 품었던 이상과 현실 정치 간 괴리는 뭔가.
“괴리는 정치를 하게 되면, 금방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국회) 안에 들어와서 뭐 하나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또 갑자기 어떤 사건이 하나 터지면 무너지고 없어지고 그렇더라.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내 도움이 정말 필요한 분들이 많다. 힘든 민원들이 잘 해결이 안 될 때, 많이 낙담한다.
또, 실제로 정치적 공격이나 모략 같은 게 있다. 끊임없이 내가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고 터트리는 사람도 있고, 했는데 안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흔들려고 한다. 그런 것을 느끼거나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세상과 달라서 힘들다. 변호사 시절에는 적과 악이 분명했다. 근데 정치는 상대방과 대화하고 협상해야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아, 그러니까 법 같이 통과 시키자’ 이렇게 해야 한다.
반면에 좋은 점도 있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엔 하루만 노숙을 해도 화제가 된다. 그만큼 책임감이 많아지고, 발언력이 강해졌다는 걸 느낀다.”
좌우명 :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