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新질서´속 한국 균형입지 설정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번 한국 방문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미 대통령으로선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이후 25년 만의 국빈(國賓) 방문이다. '트럼프 행보'의 전략 목표와 양국간 현안이 맞물려 새로운 국면을 지향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실로 역사적 함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이번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자체가 이른바 ‘아시아 신(新)질서’ 구상을 위한 향후 미국의 정책 기조를 새롭게 정립하는 행보라는 점부터 이전과 무게를 달리한다. 이는 일본 호주 인도와의 4국 협력을 통해 중국의 해양 진출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트럼프가 이번 순방에 맞춰 ‘아시아·태평양’이란 용어를 ‘인도·태평양’으로 바꾼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으로서도 미국과 중국이 펼쳐낼 동북아 정세 변화와 관련, 국가의 좌표와 한·미 동맹의 내일을 새롭게 규정하고 설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양국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을 포함한 동북아 안보와 양국 통상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부분적 불협화음과 실질적 성과 미흡이란 세부적 비판 시각에도 불구, 전체적으로 '혈맹' 관계를 더욱 과시하고 다짐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들이다. 두 정상간의 정상회담은 지난 6월과 9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양국관계의 기본 축인 한미동맹과 북핵 공조가 공고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자리가 된것은 틀림없다.
이와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캠프 험프리스'기지를 찾은 것부터가 상징적이다. 주한미군 지상군인 미 8군 사령부가 있는 이 기지는 한미 안보동맹을 대표한다. 여의도 5배 크기로 세계 곳곳의 미군 주둔지 가운데 최대 규모인 이 기지에는 미군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해 4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돼있다.
문 대통령이 사전 예고 없이 한·미 동맹의 심장이라 할 평택 주한미군 기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따로 30분간 헬기를 타고 평택 기지를 구석구석 둘러본 것은 흔들림 없는 양국 동맹을 거듭 대내외에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북핵 공조에 관한 한 한·미 동맹이 굳건함을 새삼 확인해준 셈이다. 미국 대통령을 한국 대통령이 미군기지에서 맞이한 것은 실로 처음 있는 파격적 의전이었다.
한미연합사 소속 한·미 장병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여러분은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어려울 때 함께 피 흘린 진정한 친구이며, 한·미동맹의 아주 든든한 초석이고 한·미동맹의 미래”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위대한 협력이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미국에 단순한 오랜 동맹국 그 이상이다. 우리는 전쟁에서 나란히 싸웠고 평화 속에서 함께 번영한 파트너이자 친구”라고 화답했다.
對北시각차 해소 역점
정상회담 결과도 그렇게 나타났다. 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관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협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북한과의 교역 중단 등 시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진지한 대화에 나올 때까지 최대한 압박을 취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핵에 대해 △평화적 해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 △북핵·미사일 위협에 압도적 힘의 우위 바탕으로 단호한 대응 등의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이 한·미동맹과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다시 천명한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종전의 자세와는 달리 "지금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얘기할 때가 아니며, 최고 수준의 압박과 제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평화협상에 관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서 우리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북한 주민에게도, 전 세계 시민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군사적 옵션까지 포함한 강경한 대북 압박으로 일관했고, 반면 문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줄곧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두 정상이 그간의 시각차를 좁혀 합의점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려는 자세가 읽혀졌다. 기본적으로, 북핵 해법을 둘러싼 인식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역력했다. 문 대통령은 ‘힘의 우위를 통한 대응’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협상 가능성’을 각각 언급, 상대의 시각을 수용하는데 역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고강도 압박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데 사실상 의견을 같이한 셈이다.
두 정상은 또한 최근 북한의 '미사일 사태'에 대해 “북한의 추가도발은 한·미동맹의 확고하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범주 군사능력 운용과 확장억제 제공 공약을 재확인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 연설에서도 다시 한 번 핵무기를 가진 북한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천명하고 동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논란이 된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도 “합리적 수준에서의 분담”이란 표현으로 일단은 정리했다. 또, 최근 미국측에 부담을 준 ‘균형외교’ 우려에 대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이 균형외교에 대해 미·중 사이 균형이 아니라 외교 지평 확대로 설명한 것은 이를 중국편향 외교로 이해하는 미국을 의식한 수위 조절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사항엔 한미일 3국 안보협력도 들어 있다.
한편, 한국측 주요 관심사인 이른바 ‘코리아 패싱’(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현상) 가능성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절대 건너뛸 수 없는 나라”라며 “굉장히 중요한 국가이고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가 한국 국내 보수세력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주요 공격 소재인 ‘코리아 패싱’ 논란에 대해 일축한 것은 두 나라간의 단합을 위해 문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핵해결, 구체적 수순 미흡
실질적 처방책으로서, 한국의 최첨단 군사 자산 획득 및 개발과 관련한 협의도 개시키로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첨단 자산에는 핵추진 잠수함과 정찰 자산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를 공식 확인해준 것은 처음으로 막바지 개발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사실상 무제한 수중 작전 능력이 가능하고 속도도 월등한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 또는 공동 개발하게 된다면 우리의 대북 군사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합의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 확대, 한국군의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완전 폐지, 미제 첨단무기 구매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이 또한 북한을 더욱 옥죄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의 미사일 중량 제한을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한 것은 상당한 성과다. 국산 미사일의 성능을 대폭 개선함으로써 대북 억지력을 높이는 데 획기적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고강도 메시지가 계속 전달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미 양국의 제재나 압박공세에 대응한 북한 핵실험 등 추가 도발 관측도 없지 않기에, 앞으로의 사태전개 양상이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한·미 정상의 고강도 대북 메시지와 관련, “우리는 정의의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벼려갈 것”이라며 대미 대결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런 자세로는 한반도 긴장을 풀고 돌파구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이 한달 반 동안 핵·미사일 도발을 벌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북한에 국제사회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고 본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젠 북한도 진정 달라져야 한다.
한미가 일단은 북핵 문제 해법에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대한의 압박'과 '평화적 해결'에 대한 구체적 수순은 나오지 않아 의문을 완전히 씻어 주지는 못했다. 트럼프가 군사옵션 카드를 완전히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이번 미·일 정상회담 직후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평화 해결'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한반도 5원칙’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정상회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획기적인 북핵 압박 메시지를 더욱 실질적으로 기대한 데도 결과는 못 미친다. 제재와 압박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의 25년 만의 국빈방문에 걸맞은 완전한 성과라고는 보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담판을 앞두고 실질적 내용에 대한 사전공개가 불편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복원 과정에서 거론했던 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의 이른바 ‘3불’ 원칙도 미국 입장에서는 내심 불만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방한을 계기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의 전기를 마련하려했던 한국의 구상은 일단,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FTA 통상압박 가중 예고
'안보 혈맹' 다짐과는 달리, 또다른 양국간 최대 현안인 통상 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강하게 압박해 왔다. 통상 문제를 수시로 거론했으며, 첫날부터 무역 이슈를 꺼냈다. '경제' '교역'이란 단어를 '안보' '북한'보다 먼저 사용, 앞으로 통상 압박이 가중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과 기자회견에서 "무역적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 좋은 협상도 아니었다"며 신속한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보는 안보, 경제는 경제라는 게 트럼프식 접근법이다. 그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계산서 내미는 걸 잊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미국 차가 일본에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일본과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다”며 일본 경제계를 압박했고, 아베와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미국산 무기 구매를 대놓고 요구했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한일중 3국과 북핵 대응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유리한 통상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통상관계를 구축해 미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복안으로 비친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에서 "한국이 미국 무기 수십억달러어치를 구입하기로 한 데 대해 감사한다"는 발언도 했다. 양국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하나의 묘수를 무기 구입에서 찾은 것으로 판단되는 부문이다.
220억달러의 대미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통상 표적임에 틀림없다. 한미동맹과 북핵 제재 공조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노골적인 통상 압력을 가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북핵'까지 한국과의 통상협상을 위한 지렛대로 이용할 태세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에 부정적이다.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고, 이어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가입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뜯어고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한·미 FTA도 그의 표적임에 틀림없다. 이미 한.미 두 나라는 두차례 협의를 마쳤다. 지난 8월 서울에서 1차 특별공동위원회가 열렸고, 이어 10월엔 워싱턴에서 2차 회의를 가졌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폐기' 가능성까지 내비친 바 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정협상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부터 한미 FTA를 '끔찍한(horrible) 협상'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강도를 높혀 왔다는 점에서 양국간 최대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은 상당 부분 오해와 편견에 따른 것이다. 올들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구매한 미국 무기체계만 36조원에 이른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탄도미사일 요격용 미사일을 비롯한 미국산 첨단 전략자산 도입은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통상갈등'은 양국의 이해 균형을 바탕으로 FTA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면서 한미동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위대한 동맹'... 넘어야 할 산과 실리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이 남긴 회담이었다. 동맹은 동맹이고 실리는 실리라는 트럼프식 협상 방식이 만만치 않은 숙제들을 한국에 던진 셈이다. 이른바 '위대한 동맹'으로 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 정부가 앞으로 상당한 과제를 떠안았음이 엿보인다.
그러기에 ‘위대한 동맹’이라는 현란한 수사보다 실리를 추구하면서 한·미동맹을 지금보다 더 구체화, 내실화 시킬 방도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우선, 이번 회담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가 합의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로서는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아줄 미국의 대북 억지력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FTA 재협상 요구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액 조정 등의 난제도 가로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 ‘호혜평등의 경제동맹’을 언급, FTA 대폭 수정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평택기지 건설 비용의 92%를 한국이 부담했다는 지적에도 “미국도 상당액을 부담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은 FTA협상의 경우 향후 나라경제는 물론 민생 전체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이서 난항이 예고된다. 한국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주문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양국이 무기 구매를 통해 무역 적자 문제를 해소하기로 의견을 교환했을 경우 이 또한 국내에서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당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자동차·철강 등 주요 제조산업의 추가적인 보완대책도 시급하다. 이들 업종의 경우는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업종 이름까지 거명하며 무역역조 현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터다. 그렇지만, 한국으로서는 수출감소에 내수부진 까지 겹쳐있는 자동차, 철강 분야에 FTA 압박까지 더해질 경우, 국내 업체들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민생경제면에서는 가뜩이나 높은 실업율이 더 올라갈, 위기요소가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도 수면 위로 떠오른 현안 과제다. 지난 2014년 1월 타결된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라 우리 측 분담금(5년간 9200억원)은 내년에 끝나고, 이르면 올해 말부터 2019년부터 적용될 분담금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FTA 재협상과 전작권 조기전환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협상은 내년에 시작된다. 이에따라 올 하반기 이후 이들 사안들 때문에 남남갈등도 야기되고, 한미 간 마찰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가능해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더욱이 방위비 분담에 언급,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 조성에 한국이 많은 부담을 했다는 기자의 말에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지출한 것이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지 않은가”라며 직설적으로 맞받았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을 위한 ‘군사전략 자산 획득 합의’도 양쪽 이해가 충돌할 지점이 없지 않다. 이와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한국의) 수십억 달러 군사장비 주문으로 미국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캠프 험프리스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이) 잘 풀려 미국 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여기 있는 주요한 이유”라고 강조, 자신의 주된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거듭 분명히 했다. 앞으로 양국관계의 경제적 '험로'를 예상케 하는 국면이다.
결국, 한국은 FTA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무기구매 등 쉽지 않은 협상에서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한국의 이익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 최선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 회담 교훈
역시 역사적 잣대로 본 측정과 교훈은 중요하다. 과거에도 혈맹인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은 북한이라는 '뜨거운 감자' 때문에 양 정상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았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법으로 미국이 제시한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이라는 용어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과 한·미 팀스피릿 군사훈련 중지를 한 데 담은 이 해법에 대해 YS는 너무 유화적이라고 거부했고, 대신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Thorough and Broad Approach)'이라는 용어를 고수,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민주 투사' YS를 극진히 예우했던 클린턴 대통령은 이 문제로 감정이 크게 상했고, 훗날 북한 경수로 비용 조달 등에서 한국의 비용 부담이 커진 것도 이때문이었다는 분석들이다. 반면, 당시 국내에서는 이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에 할 말은 하고 온 YS의 외교 승리'라는 후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조시 W 부시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이른바 '외교적 참사'로 꼽힐 정도로 극적이었다. 그해 3월,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으로 달려간 DJ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에 이어 보수 정권인 부시 행정부에서도 자신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는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집으려 했던 부시 전 대통령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고, 부시 전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 도중 DJ를 가리켜 'This Man(이 양반)'이라는 호칭까지 쓸 정도로 반감을 드러냈다.
임기중 총 8번의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일단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의 파병반대 여론에도 불구,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수용키로 한 것이 회담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이끌어, 처음에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 2005년 미국의 BDA(방코델타시아) 북한 계좌 동결 문제로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그해 1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북한 계좌의 동결 해제를 의제에 올리도록 요구하다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일축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당해야 했다.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가 "내가 겪은 최악의 외교 사례"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또한, 임기 중 총 11번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주력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부시 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직접 골프 카트를 운전하는 등 다정다감한 모습을 연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양반’이라고 칭한 적이 있는 부시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만큼은 ‘친구’라며 예우했다. 그렇지만, 이 전대통령 역시 방미기간 동안 타결된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 국내에서 반미감정이 격화되고 촛불집회로까지 확산되는 등 지지도가 급속히 추락하고야 말았다.
정책각론 - 호혜적 동반노력을
이제 남은 과제는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를 구체적 정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빚어질지 모를 양국간 갈등과 시각의 차이를 가능한 해소하는 일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합의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역시 안보와 경제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 안보 정책과 한미FTA 등으로 인한 민생현안 경제 정책 변수가 그 중심권에 있다. 한국 정부는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 냈지만, 앞으로의 정책 각론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문제등 시각차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적지않고, 경제에 있어서도 트럼프 식 정공법, 통상 문제 공격에 따른 한미 FTA 재협상 등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절반의 성공'을 이뤘지만, 곳곳의 '마찰 가능성'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국익을 지키기 위한 후속조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1953년 체결된 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지키고, 대한민국의 기적적 발전을 뒷받침했다. 이 동맹을 앞으로도 제대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한 그날, 서울 도심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방한 일행이 탑승한 차량이 청와대를 향해 세종대로를 지나가자 한쪽에선 “트럼프! USA!”라는 환호성을, 다른 쪽에선 “전쟁 반대! 트럼프 반대!”를 외쳤다. 안보위기에서 국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국가는 위험에 처한다. 북핵 위기 앞에서 우리 국민들도 자세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한·미 동맹 이상으로 한반도 평화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켜줄 방파제는 있을 수 없다. 한미동맹과 북핵 공조를 더욱 굳건히 하기위해 국론을 통합해 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경제문제 최대 관건인 FTA도 양국이 협상에 착수케 될 경우, 그 어느 상황보다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이제부터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군사적으로 '혈맹'인 양국이 앞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상호이익과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호혜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를 강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미국이 구상하는 아시아 정책의 틀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균형 있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회담이 한·미 동맹에 대한 여러 불안한 시각을 불식시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역대 한미 정상회담들의 '실패요소'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