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가 일정한 사이클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역사 순환론’을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역사는 어떤 위대한 도전이 앞에서 성공적으로 응전(應戰)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는 물결과 같아 넘실대며 줄기차게 흘러가지만, 그것이 항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결은 때론 역류하며, 때론 자정(自淨)되지 못해 혼탁해진다. 역사의 물결을 진일보(進一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위기 앞 지도자의 결단인 것이다.
이는 70년 한국 정치사가 증명해온 사실이다. 1969년, 변칙 통과된 박정희의 3선 개헌으로 야당인 신민당은 무력감과 좌절이 깊어갔지만, YS는 ‘40대기수론’을 내세워 이를 극복했고 ‘反독재’라는 이념 하에 이들을 대동단결 시킬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박정희의 세를 크게 꺾고 이후 정치의 흐름을 크게 바꿔 놓는 일등공신이 됐다.
또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침묵했던 재야의 민주세력들을 끌어낸 것도 ‘신민당 창당’이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과 관제야당에 불과했던 민한당의 구도에서 신민당은 선거를 통해 제1야당으로 올라 ‘대통령직선제’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독주(獨走)하는 진보여당, 독주(毒酒)마신 보수야당
그렇다면 현재 한국 정치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무심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 속, 현재의 위치를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70%의 국민지지를 등에 업은 문재인 정권은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은 ‘캠코더 인사’, ‘낙하산 인사’를 정부 산하기관에 투하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 김성주 이사장·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코이카 이미경 이사장 등 친문(親文)성향의 여권 정치인들이 주요 기관장으로 속속 임명됐다. 모순적이게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인사비리”라며 비판했던 모습과 ‘판박이’다.
이뿐 아니라 공무원 증원·최저임금·탈원전·통신료 인하 등 한쪽의 반발이 심한 문제가 산적해있는데도, 야당들은 제대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 내 친박 의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 수사에 불려가고,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국민의당 역시 당내 계파끼리 ‘엇박자’를 내고 있어 내홍 수습하기에도 바쁘다. 역류(逆流)할 수도 있는 진보정권을 견제할 수준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가면 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대패(大敗)할 날이 머지않았다. 한 마디로 야당은 지금 사망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친박과 호남계, 양 극단은 서로 닮았다
야3당은 이미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잃었다. 한국당·바른정당 의원들은 명백한 원칙과 기준 없이 의석 지키기에만 급급해 탈당과 복당을 번복했다. 부패한 기득권 이미지의 온상인 ‘친박’은 TK에 지역주의를 호소하며 정치생명을 연명하려 하고, 혁신을 외치던 한국당은 친박 청산에 끝내 실패했다.
이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역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40대 기수론과 신민당 창당처럼, ‘정치적 결단’으로 개혁보수세력이 힘을 합쳐 대안세력을 만들고 기존의 부패한 정치인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다.
이 해결의 열쇠는 중도통합이 쥐고 있다. 현재 안철수 대표가 중도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국민의당 내 호남계 중진 의원들은 ‘평화개혁연대’를, 호남 초선 의원들은 ‘구당초’를 결성해 적극 반대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호남계의 반대는 시대착오적이다. 호남 지역주의를 부여잡고 다음 지방선거만, 또는 다음 총선만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혁신이 아닌 ‘현상유지’만 바라보는 낡은 정치이자, TK에서 박근혜를 앞세워 정치하는 ‘친박’의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양 극단은 서로 닮는다’는 말을 증명하는 듯하다.
안 대표의 중도통합론이 역사의 흐름을 읽은 것이든 대권 욕심에 의한 것이든, 통합당은 TK·영남 지역주의에 기댄 낡은 보수와 호남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국민의당 호남계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해 차후 야권을 ‘자정(自淨)’시킬 확률이 높다. 또한 현재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하루 빨리 통합을 하고 정비를 해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다.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야당은 타락한 도그마에 불과하다. 야권이 기존의 고인 물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물을 유입시켜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이제 안철수와 유승민, 두 리더의 결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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