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국회 예산처리,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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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국회 예산처리, 무엇이 문제인가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7.12.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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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인 셈법 판치는 ´국회적폐´ 노정
´쪽지예산´, ´흥정의 제물´로 부실지각 파행
국회 최대책무 ´예산심의´ 제도 거듭나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국 국회는 예산심의 파행 '폐습'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치열한 여야 대립속에 법정시한 위반 및 담합과 흥정, 격렬한 저항 등이 되풀이 되고, 의원 개개인의 이익을 반영한 이른바 '쪽지예산' 이 난무해온 것이 한국의 議政史다. 여야 모두가 정략과 정쟁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해묵은 악습을 재현하고 있는 한국 의정의 현주소-. 무엇이 문제의 본질이며, 실상인지, 그리고 예산 심의를 둘러싼 '고질(痼疾)'은 어떻게 흘러왔고 개혁돼야 할지, 심층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8년도 새해 예산 428조가 지난 6일 새벽 진통 끝에 자유한국당의 불참속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정시한을 넘긴 '지각처리' 인데다 '담합 흔적'도 역력해 앞으로의 정국에 상당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번 예산처리를 '사회주의 예산'으로 까지 규정, 집단 퇴장과 함께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표결결과에 크게 반발하고 있어, 남은 정기국회 법안처리를 비롯 정국 경색 가능성이 적지않다.

이번에 처리된 새해예산은 정부 제출 예산안보다 1천375억원 순감된 428조8천339억원(총지출 기준)로 사상 최대 규모다. 수정안을 표결에 붙힌 결과, 재석 17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5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이같은 규모는 전년인 올해 예산안 기준 총지출(400조5천억원)에 비해 7.1%(28조3천억원) 늘어 났으며, 정부의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보다 2.6%포인트(p) 상승,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지난 2009년(10.6%) 이후 증가폭이 가장 크다. 이는 재정 지출이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복지 예산 비중이 34%에 달해 역대 예산 중 가장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한편, 내년 총수입은 정부안(447조1천억) 대비 1천억원 증가한 447조2천억원으로 확정됐다. 이는 올해(414조3천억원) 총수입과 비교하면 7.9%(32조9천억원)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처리과정은 이번에도 역시 혼란과 극한대치의 역대 국회 폐습상을 거듭했다.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법 개정 등에 공개 반대 입장을 밝힌 자유한국당은 표결에는 참여치 않은 채 "사회주의 예산 반대", "밀실 야합 예산 심판" 등의 피켓 시위를 벌이며 본회의장에서 퇴장하고 말았다. 한국당은 전날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협상에서 수정 예산안에 대해 잠정 합의하는듯 했지만, 거센 내부 반발에 부딪혀 결국 강한 반대로 돌아섰다.  

법정시한 위반과 졸속.부실 심의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 심의 역시 법정 시한을 어겼다. 예산 집행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는 아니나 나흘 늦게 국회 문턱을 가까스로 넘었다. 그렇지만,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정부 예산안이 지각 처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 54조는 국회의 예산안 처리 마감일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즉, 12월 2일로 못 박고 있다. 이에 처음으로 법정시한을 넘기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 예산안을 처리할 때마다 여야가 서로 밀고 당기며 시간을 끄는 구태를 막기 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정치권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28년 동안 정부 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단 일곱 차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니, 시간에 쫓겨 막판 합의를 서둘러 졸속 심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공무원 증원을 일자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민간의 임금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하는 脫시장경제적 발상으로 핵심쟁점들을 쉽게 처리하고 말았다. 1만2000명 선의 공무원 증원은 여야 합의 과정에서 숫자를 약간 줄인 9475명으로 낙착됐고, 또다른 핵심이었던 일자리 안정기금은 2조9707억원 정부안을 내년 이후 규모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文정권 임기후도 존속되도록 했다. 즉,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민간 업체 임금까지 국민 세금으로 할당키로 한것이며, 그것도 내년 한 번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5년 임기 정권이 책임지지 못할 미래 시대까지 국민의 끝없는 부담을 미리 규정해 버린 셈이다. 특히 공무원 증원문제와 관련, 현재 불필요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공무원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쉽게 예산처리를 해버렸으니 '누더기 예산'이란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법인세 '역주행'

최대 쟁점이 됐던 법인세 인상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업경제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일자리' 위축까지 부를 수 있는 사안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국회심의에서 과표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 25%의 세율을 적용키로 해 모두 77개 기업으로 부터 늘어나는 세수가 2조3000억원 정도라고 하지만, 이 조치는 현재 선진국들의 감세 흐름과는 정반대인 '역주행'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현재 기업 투자 유인을 위해 법인세를 대폭 낮추는 추세다. 실제 미국 상원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업 활성화 정책에 따라 2019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0%로 낮추는 등의 세제개편안을 가결했다. 10년간 1조5000억달러의 기업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파격적 조치다. 법인세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있는 일본도 사물인터넷(loT) 설비 등 혁신적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의 법인세율 부담을 최대 20% 정도로 낮출 방침이다. 그런 판에 우리만 법인세율을 올리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는건 당연하다. 국내 기업들이 세 부담이 작은 나라로 빠져나가면 설비 투자가 줄어들고, 일자리 창출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 자명한데, 여야는 결국 법인세 인상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이로써 법인세는 이명박정부 감세 이전의 최고세율로 돌아갔다.

복지예산 역기능과 정치흥정

물론, 새해 예산의 각론적 측면에서 하위계층을 향한 복지지원 확대는 눈여겨 볼 대목이긴 하다. 내년 9월부터 만 0세에서 5세까지 소득 하위 90% 가구의 유아들은 매달 10만원씩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도 매달 25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노인 계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확대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429조원에 달하는 이른바 '슈퍼 예산'의 국민 혈세(血稅)를 국가경쟁력 제고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기보단, 공무원 증원 등에 쏟아붓고,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게 3조원 수준으로 최저임금 지원까지 시행키로 한 합의 등은 참으로 큰 걱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말해, 국민들이 공무원 고용 비용을 대느라 더 고생을 하게 됐고, 근로자들이 자신의 돈으로 다른 근로자의 임금을 지원하는, 사상 유례없는 예산 실험의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게 된 형국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순된 '예산실험' 결과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타결될 수 있었는가. 결국 다름아닌 '정치 흥정'의 결과다. 평소 이른바 '중도'를 주장하며 여당에 대한 견제를 다짐하던 국민의당이 집권 민주당의 지역기반인 '호남 예산 당근'제시에 당리당략을 우선시, 이를 수용하며 입장을 바꿔버린데 가장 큰 정치역학적 원인이 있다. 복지확대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주력하려던 민주당,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논리로 대응하려던 국민의당이 결국에는 새로운 흥정을 통해 적당히 타협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두 정당 모두 내년 지방선거의 이해관계를 겨냥,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복지 예산과 선심성 사업에 상호 호의적으로 넘어가버린 셈이다.

이런 예산안 처리로 향후 국가 경제적 후유증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의 경우가 그렇다. 여야는 정부안대로 내년에 1차적으로 여기에 3조원 가까운 재정 지원을 하고, 그 뿐 아니라 2019년 이후에도 간접 지원으로 형식만 바꿔 계속 세금을 투입키로 했다. 하위계층을 향한 복지지원 확대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동수당 신설과 기초연금 5만원 인상에도 1년에만 4조3000억원의 추가 세금 부담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 이로 인한 국민세금 부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공무원 증원의 경우는 더 문제다. 이번 합의에 따라 내년에 공무원을 9475명 늘리면 향후 이들을 고용하는 데만 30년간 18조원의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공무원은 한번 채용하면 정년 때까지 고용이 보장된다. 당초 정부안의 1만2000여명보다 줄긴 했지만, 해마다 지속적으로 국민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설정한 '5년간 17만명 증원' 계획대로 신규 채용을 계속해 나갈 경우에는 30년간 총 327조원이 들 것이란 추산도 나와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2060년까지 국가 채무는 기존 전망보다도 3400조원이나 더 늘어나, 재정 불량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국회 예산정책처 마저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정부의 최근 친노동정책들은 그 성격상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될 뿐이다. 더욱이 기업을 해외로 내몰 가능성까지 다분한 '법인세 인상'처럼 정부가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남발해 나간다면, 가뜩이나 기로에 선 한국경제 전반에 결정적 타격을 초래할 가능성이 결코 적지않다.

민원성 '쪽지' 악습 재연

다음의 큰 문제점으로는, 한국 의정사의 고질적 악습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배정을 둘러싼 이른바 민원성 '쪽지예산' 행위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되풀이 됐다는 점이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의 입에서 예산심의 기간동안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예산이 수억 원씩 늘어나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는 토로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정황의 실례들로, 전북 남원-임실-순창이 지역구인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예산안 처리 협조를 무기 삼아 순창 밤재터널과 임실 옥정호 수변도로 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했다는 소식이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비서실장인 김정우 의원은 수도권 경부선 급행전철 사업을 당초 정부안보다 100억 원을, 자유한국당 예결위원인 민경욱 의원도 인천발 KTX 사업 예산을 100억 원 더 따냈다는 전문이다. 이런 탓에 결국 SOC 예산이 당초보다 1조3000억 원가량이나 늘어났게 됐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정부가 올해 예산 대비 20% 줄여 잡았던 SOC 예산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막판까지 쇄도한 의원들의 이런 지역구 예산 민원 요청들로 결국 19조 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의원들이 쪽지를 전달하는 것도 모자라 ‘카톡 청탁 문자’가 회의 중에 예결소위 간사와 실세 의원들 휴대전화로 수시로 들어갔다는 실상도 전해지고 있다. 심의 기간이 너무 짧아 협상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여야 지도부가 비공개 논의에 의존하는 바람에 예결위의 공식절차는 무용지물이 되고, 시간에 쫓겨 밀실 협상을 벌이다 보니 정치적 주고받기 식의 졸속ㆍ부실 심의가 불가피했을 것임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이런 틈을 뚫고 '쪽지예산' 실태가 더욱 횡행하게 된 것이다. 여야 할 것없이 모두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앞다퉈 지역구 SOC 예산 증액경쟁을 벌이는 등 막판까지 '쪽지예산' 활동을 격렬하게 펼친 것으로 간주된다.

'쪽지예산'은 국회법과 청탁금지법을 위반하는 명백한 범법 행위다. 여야가 예산안 처리 시한에 쫓겨 3당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쪽지'등을 참조, 물밑거래로 야합하고, 날림 심의를 일삼는 것이야말로 한국국회의 '해묵은 적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의원들이 압박, 강요로 막바지에 끼워넣는 지역구 민원 사업 예산이 해마다 수천억 원에 달하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이 때문에 예산분배가 왜곡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와 낭비구조가 발생케 됨은 당연한 귀결이다.

▲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54회 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2018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78인 중 찬성160인, 반대 15인, 기권 3인으로 가결 처리됐다. 본회의장 오른쪽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밀실야합 예산'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시스

야권, 무엇을 했는가

이런 왜곡된 국회상황과 관련, 국정파행을 제대로 견제해야만 할 야당들을 추궁치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무얼 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특히 이번 예산 심의에서 국민의당은 '與 2중대' 역할을 자임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한국당은 전략부재로 '패싱론'을 자초했다는 비난들에 직면하고 있다.

요약하면, 문재인정부의 첫 작품인 이번 예산안은 선심 정책을 추인한 정치권 당리당략의 결과물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국가가 내년부터 30인 미만 근로자를 고용한 영세사업자에게  예산으로 보전해주기로 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들 뿐 아니라, 국민 혈세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국가 재정의 건전성도 해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야당은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정부여당의 '포퓰리즘' 예산에 본분을 망각, 제동도 걸지않았다. 

구체적으로, 국민의당은 캐스팅 보트의 힘을 이용해 당의 이익을 챙겼다. 당초 최저임금 지원을 반대하다 ‘1년 한시적 운영’으로 후퇴하더니 결국 이마저도 포기했다. 여당 뜻대로 동의해주면서 상당한 실리를 취했다. 당 소속 호남 의원들을 위해 경제성에 논란이 많은 호남 고속철도(KTX) 2단계 노선의 무안공항 경유와 새만금개발공사 관련 특별법 및 예산안도 얻어냈다. 민주당이 국민의당에 호남 지역 예산을 주는 대가로, 국민의당은 빗나간 부문의 정부 예산안을 눈감아주는 뒷거래를 벌인 정황이다. 이와관련, 민주당 원내 수석 부대표가 국민의당의 숙원인 '선거제도 개편'과 '지방자치법 개정' 등을 약속한 합의문을 공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39석에다 호남 지역구 위주의 국민의당은 정권이 바뀌면서 중대선거구제 개편과 비례대표 확대가 없으면 당 존립이 어렵다는 자체 분석을 한 바 있다. 선거구제는 다른 야당이 반대하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조차 두 당이 뒷거래로 손잡고 중대한 예산안을 결정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말았다.

결국, 국민의당은 겉으로는 공무원 증원과 무차별 복지 확대에 반대해놓고, 뒤에서는 이를 사실상 승인, 지역구 예산 증액과 선거구제 개편을 얻어낸 것이다. 민주당의 ‘2중대’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제1야당인 한국당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정책행보를 드러냈다. 전략 부재로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 등을 막지 못해 ‘한국당 패싱’이라는 비난까지 자초했다. 한국당이 여야 3당 합의문 발표 시 ‘유보’라고 피해나간 것은 실로 비겁한 행위로 비칠 수 밖에 없게 됐고, 뒤늦게 의원총회에서 반대 당론과 본회의 보이콧을 결정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 '배'가 떠나고 난뒤 허황된 반대의 몸짓만 한 형상으로 간주된다.

역대 국회 예산심의 폐습

국회의 이같은 예산처리 파행상은 결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역대 한국 국회의가 드러내온 고질적 악습의 연장이다. 그 심각성을 조명치 않을 수 없다. 먼저, 예산심의 법정처리 시한 위반 실태부터 보자. 이 대목은 예산안 '부실처리'의 1차적 원인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권은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을 넘기는 고약한 타성이 생겼다. 80년대 초반 전두환정권 시절과 그 이후 3차례의 대통령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예산안이 법정시한 안에 거의 처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산안 처리가 항상 정치 사안과 연계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치적 갈등이 심할 경우 예산안은 늘 야당의 본회의장 농성, 의장석 점령 같은 실력저지 속에 여당의 변칙 또는 날치기 처리로 결말이 나곤 했다.

지난 1990년 13대 국회는 대표적 사례중 하나다.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빚어진 중동위기 20여일 만에 고유가의 파장이 한국에 불어닥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 농정을 뿌리째 뒤흔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먹구름까지 서서히 다가와 이래저래 민생과 경제는 큰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했었다. 어느 때보다도 중지와 합의가 절실한 때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여야는 현실과 난국을 외면한 채 모두 '자기이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해 12월 '예산국회'가 이를 잘 말해준다. 3당 합당과 7·14 날치기 파동의 여파로 야당 의원들이 총사퇴하고 원외투쟁을 벌인 끝에 회기의 70%나 공전시켰고, 가까스로 예산국회가 열리긴 했지만 27조에 달하는 나라 살림 심의는 쫓기는 시한에 졸속으로 치러지고 말았다. 상임위별 예산안 예비심사는 고작 이틀 동안에 이뤄졌으며, 삭감은 커녕 6천4백33억원이 증액되는 기현상도 벌어지기 까지 했다. 따라서 그해 본예산 대비 18.9% 증액된 총 26조9천7백98억원으로 확정된 새해 예산은 지자제선거에 대비한 선심용 초팽창 예산이란 비판과 함께 국회의원들의 나눠먹기식 예산처리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민생과 직결되는 상하수도 건설,의료비 보조,치수사업에서는 오히려 예산을 무더기로 깎고, 불요불급한 생색내기 사업에 증액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다. 국회의원의 세비까지 22.8%나 올렸으니 여야 가릴 것 없이 낯 뜨거운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문민정부 출범후인 1994년 12월 예산국회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새해 예산안이 또 변칙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본회의장이 내려다보이는 기자실에서 56조원에 가까운 새해예산안은 그 달 2일밤 사회봉 소리도 없이 통과 선포되었다. 무효를 외치는 야당의원들의 고함소리와 본회의장의 벽을 때리는 장면은 바로 1년전 그날 밤에도 국민들이 실망속에 지켜봐야 했던 국회상황이었다.

2000년대 심의 혼란상 

2000년대 들어서도 상황은 결코 호전되지 않았다. 2000년 12월 27일 16대 국회 예산심의는 여야 정쟁(政爭)으로 법정시한을 24일이나 넘기는가 하면, 야당은 구체적 삭감 내역도 없이 당초 8조원 삭감에서 6조원, 다시 1조원으로 내려가는 등 무원칙한 심사로 일관했고, 그 다음해인 2001년 새해 예산안 처리때도 여야간 또는 예산안을 다룬 의원들끼리 나눠먹기식 담합을 한 흔적이 너무도 뚜렷했다. 이 바람에 사회 간접자본 예산은 영호남과 충청권 일부에 편중되고, 특정 의원의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이 넘쳐 났다는 대다수 언론들의 비판을 그 때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다시 10년이 흐른 2010년대의 국회 예산심의 상황은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12월12일 예산국회에서도 도무지 국민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고흥길 의원이 새해 예산안에서 민생 및 당 공약에 관계된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책임을 지고 정책위의장직을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주먹다짐을 해가며 통과된 예산안에는 당시 핵심 현안들이었던 영아 양육수당을 비롯해 재일민단 지원사업, 춘천∼속초 고속화철도 사업, 템플스테이 운영 및 지원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되거나 아예 반영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등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사업 SOC 예산은 대폭 증액됐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연관되는 포항·울릉 지역 예산은 계수조정소위 과정을 거쳐 정부안보다 1600억원 이상 더 많아졌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지역구 예산은 65억원 증액됐으며,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마산 예산을 정부안보다 최소 430억원 더 늘리는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쪽지예산' 구태 반복

그 다음은 예산심의 과정의 '쪽지 병폐' 고질 관행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이는 음험한 국회 '밀실정치' 실상을 대표한다. 그 이전에도 이런 관행이 해마다 거듭돼 왔지만, 박근혜 정부때의 국회는 그 폐습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기간이었다.

지난 2013년 1월 2일 국회를 통과한 정부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는 무려 4500건의 쪽지가 난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런 식으로 증액된 예산만 줄잡아 5574억 원에 이르렀고, 그 바람에 안보, 성장동력, 빈곤층 예산은 칼질을 당해야만 했다. 정작 중요한 국방예산은 차세대 전투기 부문의 1399억 원을 포함, 총 3287억 원이나 삭감됐으며, 극빈층 의료 지원예산도 2824억 원이나 깎였다. 국가경제 장래를 위한 유전개발, 미래선도 기술, 나노융합사업 예산도 일제히 줄어들었다. 국민적 시각에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당초 여야는 토목공사 중심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줄이는 대신 복지예산을 늘린다는 원칙에 합의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딴판이었다. 의원들의 '쪽지'난무로 지역구 공사 예산이 폭증하면서 전체 SOC 예산은 되레 3679억 원이나 부풀었다. 더 한심한 사실은 여야 실세로 불리는 의원들이 쪽지 예산 챙기기에 앞장섰다는 점이었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각각 615억원과 182억원이 추가 배정됐으며, 서병수 사무총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박기춘 원내대표와 예결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의 선거구인 남양주에 약 80억 원이 새로 배정됐으며, 전임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 지역구에도 58억 원이 추가됐다. 국토해양위 간사인 이윤석 의원 지역구에는 646억 원이나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의 눈총에도 ‘쪽지예산’은 계속 난무, 여야 할 것 없이 지역사업 예산을 챙긴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2015년 12월, '쪽지난무'로 인한 누더기 예산편성도 여전한 국회 폐습 실태를 확인시켰다. 여야 텃밭인 대구·경북(TK), 호남 지역 예산을 놓고 흥정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TK지역 SOC 예산이 기획재정부에서 5600억원가량 늘었다면서 삭감 목소리를 높이다 호남 예산 1200억원을 늘리는 대가로 이를 눈감아줬다. 실세 의원들의 예산 챙기기 관행도 여전했다. 총선 출마를 위해 곧 여의도에 복귀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대구선 복선전철 사업 등 100억원가량의 예산을 추가 확보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지역구를 통과하는 부산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사업에는 예산 150억원이 증액됐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선심성 예산에 밀려 ‘성장 예산’ ‘국방 예산’은 뒷전으로 경시되도 말았다는 데 있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려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때 새해 R&D 예산은 0.2% 증가에 그쳐 2000년 이후 평균 증가율(10.3%)에도 크게 못미치는 정도까지 거꾸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난해 '쪽지' 실상

지난해 국회 실상도 여전했다. 2016년 12월 4일,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한 2017년 예산안이 3일 여야 간 절충으로 간신히 통과된 가운데 여전히 실세 정치인들의 민원성 지역구 예산이 또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해 처리 예산안에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국회에서 오히려 4,000억원이나 증액된 것이 이를 말해줬다. 각 당 실세 의원들의 쪽지예산을 포함해 국회의원 한 명당 10건 이상의 지역 민원을 밀어넣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여야 정치인들의 쪽지예산 등을 통한 지역구 챙기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기승을 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국회는 공식적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배 논란 등으로 ‘쪽지예산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여야 구분 없이 한통속이 돼 막판까지 민원성 예산 밀어넣기에 바빴다. ‘최순실 예산 삭감’으로 쪽지예산의 폭이 더 커졌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최순실 예산 삭감분 최소 1,748억원에서 최대 4,000억원 대부분이 국회 실세 지역구로 흘러갔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런 연유였다.

실례를 들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경우 순천만 보수공사와 국가정원 관리 (9억원), 순천 내 하수도 개선공사(18억원) 예산 등이 막판에 끼어들었고, 정진석 원내대표의 행복도시와 공주시 연결도로 예산도 애초보다 10억원이 늘어났다. 야당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지역구 대구남천 정비사업 예산에 20억원이 증액됐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호남고속철도 건설 예산도 655억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었다.  

투명성 제고 - 제도적 장치로 거듭 나야

예산심의는 국회와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최우선 책무다. 국회는 국가경제가 처한 현실과 국민들의 생활형편을 감안, 예산을 합리적으로 심의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이번 국회 역시 예산안 심의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 정치흥정의 볼모로 삼아 민생을 외면하는 과거의 적폐를 되풀이하는데 그쳤다. 

한국의 역대 예산국회는 수시로 막판까지 정치공세와 극한대치, 실력저지를 계속하다 결국 날치기 통과 논란 속에 막을 내림으로써, 그 때마다 부실ㆍ졸속 심의로 끝나곤 했다. 이번 국회도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400조원이 넘는 나랏돈 쓰임새의 적정성을 따지자니 졸속ㆍ부실 심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재정건전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예산심의 때는 지역구를 위한 선심성 사업을 슬그머니 끼워넣거나, 상임위별로 예산 갈라먹기를 하는 구태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환골탈태 해야만 할 '사태'다. 이제는 그야말로, 예산심의 기간을 늘리고 예결위를 상설화하는 등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예산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높히기 위한 제도적 처방책이 긴요하다. 국회예결특위가 상설화된 이상 시행세칙을 하루빨리 마련, 심도있고 공정한 예산심의가 이뤄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권 불신'은 오늘날 혐오감으로 까지 악화되고 있다. 오늘의 현실은 정치권이 정쟁만을 일삼고 있을,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여야가 국익차원에서 위기극복의 해법을 찾도록 다같이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정치선진화와 정책정당을 말로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확한 입법과 철저한 예산심의를 통한 구체적 성과들로 국회의 임무를 하나하나 제대로 국민앞에 실증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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