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한·미 ‘통상전쟁’-파장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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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한·미 ‘통상전쟁’-파장과 대응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2.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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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안보' 동원 對韓 선전포고
철강 53% 관세 등 '폭탄 공격' 전망
무역파고 중·장·단기 대응전략 시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미 양국간 무역분쟁과 통상갈등도 심화될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對韓 통상압박 '드라이브' 가 거칠게 강도를 더해 가면서, 실질적 규제조치들도 잇따라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근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발동한데 이어 이번에는 철강제품에 심각한 무역 규제가 가해질 전망이다.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도 높은 세율의 관세를 때리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올들어 미국의 對韓 통상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져 왔다. 지난달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데 이어, 이번에는 지난 2002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수입 철강제품에 발동했던 세이프가드를 16년 만에 다시 작동시키면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이른바 '무역확장법 232조' 까지 적용, 초강수의 자세로 나아가고 있다. 합법적인 수출에도 원용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그리고 국가 안보가 손상될 우려가 있을 경우 수입 제품에 높은 관세나 할당 부과를 제안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는 이른바 '동맹국'에 함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국내적으로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정치전략이라는 관측과 실제로는 최대 무역적자를 안겨준 중국 견제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당장 우리의 피해는 심각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발 통상전쟁의 파고가 세탁기와 철강을 넘어 한국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나 자동차까지 영향을 주지 말란 보장이 없다. 일상적 통상 갈등을 넘어 본격적인 한미간 무역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기류가 역력하다.

트럼프 의지와 '안보조항'  

한국 등 주로 아시아 무역 흑자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전쟁’ 의지는 거칠고 결연하다. 연일 보호무역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엔 상·하원 의원 초청 백악관 공정무역 간담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한국과의 협정은 재앙이었다. 우리에게 손실만 낳았다”며 FTA 폐기까지 거론했다. 전날엔 한국 중국 일본을 동시 거론, 외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기는 세금만큼 미국으로 수입되는 해당국 제품에 수입세를 매기는 ‘호혜세(reciprocal tax)’ 부과 방침도 재천명했다. 미국의 무역 공세가 더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다.

특히 호혜세를 거론할 때는 한국과 일본을 겨냥, “무역에서만큼은 동맹국이 아니다”고까지 말해 동맹에 대한 전통적 우대 조치를 없애겠다는 입장까지 드러냈다. 더욱이 그는 설을 앞두고 한국지엠(GM)이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밝혀 1만여명이 실직 위기에 처한 마당에도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들(GM)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고 오히려 기뻐했다. 즉, 이를 법인세를 감면한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웠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냉정하다 해도 설상가상,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번에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 통상 규제이유로 '국가안보'까지 공식으로 내걸고 나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법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법에 근거한 자의적인 판단으로 교역 상대국에 일방적인 무역보복을 허용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 훼손이며 횡포라는 비판을 받아온 독소조항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반대여론이 많아 지난 수십년 동안 사용을 자제하는 등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인식될 정도 였는데도, 트럼프가 이 조항을 들고나온 것은 교역 상대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 없다.

이와관련, 미 상무부는 대통령의 법안 서명 직후부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국가 안보 영향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수입 규제안을 내놓게 된것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회견에서 "현재의 수입 규모가 미 경제를 약화하고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결론 냈다"고 밝혔다. 지난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가 실제 적용된 사례는 두 차례뿐이고, 마지막으로 적용된 게 1981년이기에 '오늘' 트럼프의 통상압박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제재대상 우방국은 한국만

그렇기에, 근간의 미국 규제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점검치 않을 수 없다. 미 상무부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에 제출한 무역확장법 232조 권고안의 골자는 철강의 경우 한국, 중국, 브라질 등 12개 국가 제품에만 53%의 초고율 관세를 물리는 방안, 그리고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24% 고율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하는 방안 등 3개 시나리오로 돼있다. 한마디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니 고율 관세를 매기거나 수입량을 크게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 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한국 측 주장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번 미 상무부의 특정 국가 제재안 가운데 우방국으로는 한국만 포함됐다. 대미 철강 수출 1위인 캐나다와 지난해 대미 철강수출 7위에 오른 일본, 독일 등은 제외됐다. 또한 2011년 이후 대미 수출량을 358%나 늘린 아랍에미리트(UAE), 113% 확대한 대만도 대상에서 벗어났다.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제멋대로 무역규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고, 한국을 집중 겨냥한 징후도 뚜렷하다. 미 상무부의 이번 3가지 권고안 가운데 53%관세 부과 안으로 최종 결정되면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은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권고안은 이와함께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중국, 러시아 등 5개국(한국 제외) 제품에만 23.5% 관세를 도입하거나 모든 제품에 7.7% 관세를 일괄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86.7%로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상무부는 철강에 대해서는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4월 19일까지 각각 결론을 내려 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 요청한 상황이다.

트럼프가 상무부 제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있다. 그러나 기존 무역 규제와 달리 이번에 적용된 '232조'는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시비를 가리기가 마땅치 않은 미국 자체 규정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가맹국이 안보를 이유로 수입 제한하는 조치를 예외 조항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미국에 계속 당할 수는 없다. 중국도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규제 근거 없다”며 보복 조치를 시사하고 나선 상황이다. 필요하다면 고율 보복관세 대상에 함께 오른 중국과 공조를 해서라도 미국의 통상 선전포고를 극복해 내야만 한다.

물론, 지금 북핵 공조를 위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기에, 외교 군사적 안보 문제가 한·미 통상갈등 현안들과 향후 FTA 개정 협상 등에서 우리 입지를 좁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치열하고 정확한 협상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 정조준, 당당히 맞서야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렇게 한국을 정조준 하게 되었는가. 정부는 미국이 ‘무역 확장법 232조’를 발동한 것은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한국이 중국산 철강을 수입한 뒤 재가공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미국의 통상공세를 보면 한국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는 느낌을 결코 지우기 힘들다.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모듈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것이나 ‘호혜세’ 부과 방침을 밝히며 한국을 직접 거론한 것이 그렇다. 미국의 통상공세 조치가 나올 때마다 한국이 빠짐없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결코 우연으로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이와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백악관 공개무역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50분간 회의에서 10분가량을 한국과의 무역 문제를 지적했다. 그 자리에서 중국을 10번, 일본을 4번 거론한 데 반해 한국은 무려 17번이나 거론했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지난해 229억달러로, 전년보다 17%나 줄었다. 우리 흑자 229억달러의 16배가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인 3752억달러의 대미 흑자를 낸 중국, 그리고 한국보다 3배나 많은 흑자를 낸 일본과 독일을 제쳐두고 한국이 유독 미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의 사태다. 대미 무역 흑자는 우리가 10위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이고 한국은 동맹국이다. 그런 한국이 대체 왜 트럼프에게 중국과 같은 급으로 '미국 노동자를 위협하는 국가'로 지목당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중국은 흑자 규모가 트럼프 취임 뒤 8% 증가했고, 일본은 비슷했다. 반면 우리는 오히려 줄었다. 이쯤 되면 트럼프 입에서 "내가 취임한 뒤 한국은 무역 흑자를 줄이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은 뭘 하느냐"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정반대다. 아무리 혈맹이라 하더라도, 한국으로선 진정 문제를 제기치 않을 수 없다.

심상치 않은 국면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당장 한국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이렇게 또 다른 빌미를 얻은 미국이 이쯤에서 통상압력을 멈추리라 기대하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트럼프는 한국을 콕 찍어 ‘호혜세’ 대상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재앙’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세이프가드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이어 또 다른 관세 폭탄을 준비함과 동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먹잇감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단순한 통상갈등의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전개될 것임을 알리는 사실상의 전초전이다.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의 취지가 아무리 최대 경쟁국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 해도, 거기에 한국을 슬그머니 끼워 넣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32조는 안보를 빌미로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닌가. 최근 한국에 대한 자세를 보면, 트럼퍼 정부는 자국의 무역이익 관철을 위해서라면 법 취지를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에도 “한국은 무역에선 동맹 아니다”라는 말로 전방위적 무역 보복을 시사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그 말이 귓전에서 떠나기도 전에 철강·알루미늄 보복관세를 실행에 옮기려 들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도 이젠 미국을 무역에 관한 한 '비동맹'으로 볼 수 밖에 없게됐다. 그러기에 이 점은 우리가 더욱 당당하게 미국에 맞서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對美수출 전면봉쇄 가능성 

실제, 미국의 최근 조치들은 한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미국의 철강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2%로 캐나다, 브라질에 이어 3위다. 이미 대미 철강 수출 제품의 80%가 관세를 내고 있는 데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99%에 이르는 ‘유정용 강관’은 즉각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347만t, 34억800만 달러였다. 이번 미국의 상무부 규제안은 이미 적용 중인 관세에 추가로 부과된다.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상무부 제안은 사실상 수출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즉,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제품 대부분에 이미 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추가 관세가 덧붙여지면 경쟁력과 이익률이 더욱 추락, 결정적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 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화학제품 등 한국을 겨냥한 무역 규제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상호세까지 동원할 태세다. 상호세는 동일한 제품에 상대국이 적용하는 수준까지 세율을 올리겠다는 의미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선 관세 대신 내국세를 인상할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다 보이지 않는 환율절상 압력도 적잖은 걱정거리다.

결국 이런 예상들을 종합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세이프가드 발동 및 국가 안보 부문에 수입규제 카드까지 최종 서명할 경우 양국 통상마찰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사태가 더 악화하면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도 상상키 어려울 정도다. 세탁기·태양광·철강뿐 아니라 반도체까지 번진다면 자칫 우리의 대미 수출길이 아예 막혀버릴 수도 있다.

▲ 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미국 백악관 보좌관(왼쪽)과 만찬 회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청와대 제공

트럼프 일방행보 배경

양국 통상관계가 과연 이렇게 까지 악화되도 되는 것인가. 정말 왜 이런가. 이를 유발하고 있는 일련의 트럼프 행태의 배경을 지목치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 역시 이른바 ‘미국 제일주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는 최근들어서도 한·중·일 무역 흑자를 거론하며 "이들은 우리를 25년간 살해해(murder) 왔다"고 언급했다. 이런 트럼프의 강력한 '자국중심 보호무역주의' 대외 경제정책 기조는 올 연초부터 그 본격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 선언한 것이 구체적 시발점이다. TPP는 미국과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었지만, 그는 TPP 탈퇴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어 트럼프는 지난 3월에는 아예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제 무역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정까지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3월1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2017 무역정책 어젠다와 2016 연례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가 미국의 혜택과 권리를 약화시키려 시도한다면 저항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의 이익과 상충된다면 세계무역기구의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국 중국 등 무역 상대국에 일방적 보복을 할 수 있다는 협박인 셈이었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그렇게 갈수록 눈앞의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길로 가고 있다. 자국 기업의 시장 입지 강화나 미국 내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되는 조처라면 국제법이나 관행, 타국과의 신뢰관계도 가볍게 무시하겠다는 자세다. 특히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나라들을 타깃으로 삼아, 각종 무역보복 조처를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다. 거칠고 엉뚱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보호무역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의지는 허세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현실화해 왔다. 그의 집권 1년간 무역 상대국을 겨냥한 미국의 불공정무역 조사가 전년 대비 81%나 급증한 94건에 달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분수령 FTA - 전략수립 중요

악화일로로 가고 있는 현 한미 통상관계는 향후 FTA 개정 협상 향방이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철강 '관세폭탄' 역시 향후 FTA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일 수도 있다. 한국이 미국의 무역규제에 타깃이 된 점은 이런 면에서도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그 협정은 재앙”이라며 “재협상 성과가 없으면 폐기하겠다”고 발언해 왔다. 지난 13일에는 "한·미 FTA로 한국에만 일자리가 생겼고 미국은 손해만 봤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국의 대미흑자는 지난해 179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2.7%나 줄어들었다. 대미무역 흑자국 순위도 2016년 세계 6위에서 10위로 밀려났다. 우리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대폭 늘리는 등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통상공세를 퍼붓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통상공세의 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강자의 횡포'다.

미국측 통계를 기준으로 볼 때도 지난해 한국의 대미흑자는 중국의 16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차치하고 중국에 비해서도 유독 강도 높은 통상공세를 한국에 퍼붓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임이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사냥감'으로 선택한 듯한 양상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은 이같은 미국의 통상공세에 위축, 저자세로 양보한다면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고 말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이미 FTA 개정을 위한 협상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따라 한국은 미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동차, 철강, 농산물, 서비스 분야 등에서의 개정요구에 본격적으로 직면하게 됐다. 만약, 이들 요구가 관철될 경우 한국은  해당 분야의 일자리 감소는 물론 농업 분야 생계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 분야는 FTA 개정 협상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무관세인 수출용 자동차에 일본, 유럽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수준(2.5%)의 관세를 붙인다면, 우리 자동차의 수출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여파는 철강산업과 기계, 부품산업 등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와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FTA 개정으로 관세율이 높아지면 수출 감소액은 5년간 약 170억 달러(약 19조)대에 이르고, 일자리 또한 15만개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경제 전반은 미국으로 인해 매우 우려스런 상황으로 가고 있는 양상이다.

트럼프가 압박 주장하는 한·미 FTA 폐기경고는 그것이 만약 현실화될 경우 한국 못지않게 미국에도 손해다. 한국 협상팀은 FTA 폐기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협상에 당당히 임해야 할 것이다. 내줄 것은 내주되 받을 것은 확실하게 챙기는 전략이 요구된다. 지식재산권과 여행서비스 등 점점 불어나는 서비스 부문의 대미 적자와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요구 등에선 오히려 공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용 등을 견제할 방안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공격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협상 전략을 짜기에 앞서 대미 교역과 관련한 기업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의견을 수렴, 최대의 효율적 대책을 강구하는 절차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文정부 역량 시험대로

사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지금 북한은 한·미 이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정부 뿐 아니라 국민끼리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 한 몸같이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과도 다르고 형평에도 맞지 않는 한국 압박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특히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을 상대국의 불공정이나 FTA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 상무부의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무역흑자국을 상대로 강도 높은 통상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5660억달러로 전년 대비 12.1%나 늘었다. 원인이 미국 기업들의 낮은 경쟁력에 있는데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이와관련, 트럼프의 일방적 행태도 문제지만 손 놓고 있는 우리 정부도 큰일이다. "트럼프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만 하지 실제로 되는 일은 없다. 중국은 치밀한 전략으로 트럼프에게 맞불을 놓고, 일본은 정상 간 유대 강화 외교술로 소나기를 피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시정' 구호에만 매달릴 뿐 실질적 처방은 하나도 없다. 철저한 대응책 수립이 절실하다.

국가적인 총력 대응에 나서야 마땅함에도, 미국의 생각을 돌리려는 외교 설득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세탁기 세이프가드 때도, 지금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업체 관계자를 불러 모아 발등의 불 끄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 내에서도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거나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은 말장난”이라는 유의 반응이 주류를 이루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는 이 거친 무역 파고를 제대로 넘을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공세가 미국에게도 실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로서는 치밀한 현실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는 금리인상, 달러 약세(원화 강세), 중국 경제 불확실성 증폭, 북핵 문제 등과 함께 우리 수출과 거시경제 전반에 실질적 위협으로 떠올랐다. 합리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한미 FTA 협상,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같은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과거 일본처럼, 체질 개선을 통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더욱 높여 나가는 길 밖에 없다. 금융업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핵심 산업의 구조조정, 4차 산업혁명 관련 첨단산업 육성이 절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질능력과 외교 통상협상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경제 국익(國益)…새로운 자세를

한국경제는 이제 트럼프發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장을 받게 됐다. 미국이 공세를 취하는 자동차와 철강 등의 분야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 관심사인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용, 서비스 부문 무역역조 등을 시정해 실리를 끌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중.장.단기적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최대한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고율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대미 통상외교를 강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중국, 브라질 등 미국이 타깃으로 정한 12개국과 연대해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에 강대강으로 맞서는 방안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적용 근거를 따지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반덤핑 조치가 WTO에서 패소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거듭 인식해야 한다. 한국으로선 WTO 제소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빗나간 통상 압박은 60여년 이어온 한·미동맹에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과도한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 국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와 관련 업계는 총력을 다해 미국의 통상압박 피해 최소화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혼자 힘으로 부족하다면 이미 보복을 예고한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무역확장법 적용 대상국들과 힘을 합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관련국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같은 처지의 국가들과 굳건한 공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 조처에 맞대응할 보복 조처도 면밀한 '안전선'을 쳐둬야 할 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 국익(國益)을 지킬 수 있는, 견고한 방책과 전술을 시급히 정돈해야 할 때이다. 미국의 추가적인 무역규제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대 국가로 떳떳하게 협상하는 태도를 견지,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나라의 안존과 미래를 위해 더욱 자세를 단단히 가다듬어야 할 국면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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