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지름길이지만 가장 험하다. 1등석이지만 불편하다. 서울시장 이야기다. 서울시장직은 소위 대권으로 가는 ‘1등석 티켓’이라고 알려졌지만, 그만큼 만만찮은 정치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조순, 고건, 이명박(MB), 오세훈 네 사람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 이들 중 MB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티켓의 가치를 입증하긴 했으나, 14일 뇌물죄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아름다운 퇴장’에는 실패했다.
조순의 꿈
조순 전 서울시장은 한국 학계의 전설이자 한국 정치계의 산증인이다. 1988년에 노태우 정부에서 입각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당에 영입되면서 1995년 문민정부의 첫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후 1997년에는 DJ가 새로이 만든 국민회의 대신 잔류 민주당에서 대선후보로 영입되면서 서울시장직을 중도에 내려놓는다.
조 전 시장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임에도 정계에서 그의 속성은 비주류에 가까웠다. 경제학자로서 강점은 있었지만, 정치적 변방인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과 정계세력이 적은 군소정당의 한계는 뚜렷했다. 결국 이회창이 이끌던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을 만들고 초대 총재가 되면서 대선의 꿈을 미뤘다. 당시 ‘한나라’라는 이름을 붙인 이도 조 전 시장이다.
조 전 시장은 이후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하면서 다시 한 번 대망을 꿈꿨지만, 16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김윤환, 이기택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만들어 반격을 시도한 뒤 실패했다. 그대로 정계를 은퇴한 조 전 시장은, 이후 여의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년을 보내는 중이다.
고건의 시대
고건 전 시장은 정치적 위기를 겪어온 인사는 아니다. 그러나 고 전 시장이 지나온 시대는 결코 평온하지 못했으며, 그는 매번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1988년에는 서울시 관선 시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사실상 서울시장을 두 차례 지낸 인물이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원내에 진입하기도 했던 그는 계파색이 옅고 당과 무관하게 두루두루 친해 정치인보다는 행정가라는 인식이 컸다. 덕분에 현 시점에선 보수정부로 분류되는 문민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내는가 하면 진보정부로 분류할 수 있는 참여정부의 첫 국무총리기도 했다.
두 번 다 기록될만한 특이한 일이 있었는데, 문민정부 당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인준이 불발되며 당시 총리였던 고 전 시장은 퇴임 다음날 각료제청권을 행사하고 물러났다(참여정부 때는 반대로 각료제청권 행사 거부로 화제를 모았다).
더 인상적인 사건은 참여정부에서의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기도 했다.
고 전 시장은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행정의 달인’이라는 지칭을 외신으로부터 받는 등, 정치적 입지가 커지며 대망에 가까이 간 시기도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말미엔 짧게나마 여권의 대권주자 1순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금방 불출마를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마찰 등이 불출마 배경으로 회자된다.
MB의 증명
MB는 서울시장이 대권으로 가는 급행열차임을 증명했다. 국회의원으로선 재선에 그쳤지만,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대폭 높이고 당을 장악하면서 17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엄밀히 말하면 윤보선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출신이긴 하나, ‘서울시장’ 프리미엄이 대폭 오른 것은 이 때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관선(官選)직처럼 여겨지면서, 정치적인 중량감이 비교적 저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나 MB의 대통령 당선은 단숨에 그 격을 높였다.
정치권의 한 원로 인사는 지난 해 <시사오늘> 과의 만남에서 “문민정부 때 도백(道伯) 출마를 제의받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원내에서 중앙정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명예롭고, 정치적으로 강한 입지를 갖게 되는 것이라 믿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MB는 재직 당시에도 낮은 지지율과 다양한 의혹 공세로 쉽지 않은 청와대 시절을 보냈다. 결국, 지난 14일엔 뇌물죄 등으로 결국 검찰에 소환돼 21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오세훈의 오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롤 모델은 MB로 보였다. 16대 국회에서 원내경험을 한 뒤, 바로 서울시장에도전하면서 당시로선 처음으로 재선을 달성했다. ‘젊은 대권 후보군’으로 승승장구하면서 그의 롤모델인 MB의 정치적 궤적을 따라가는 듯 했다.
그러나 중간에 던진 승부수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1년 선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하던 서울시와, 보편적 무상급식을 주장한 서울시 교육청·시의회가 충돌했다. 오 전 시장은 이 논란을 주민투표에 붙이자고 했고,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실패할 경우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해 8월 24일,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에 미달했다. 이틀 후 오 전 시장은 사퇴했고, 재보선을 통해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다.
오 전 시장은 이후 무리한 승부수, 오산(誤算)이었다는 당내 비판에 시달렸다.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좁아졌다. 20대 총선에서도 종로구에 나서서 정세균 현 국회의장에게 패하며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다. 현재 오 전 시장은 당적(黨籍) 없이 재기를 모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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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 대통령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조순시장과 고건 전총리는 품격이 있는 분들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