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개헌 드라이브-明暗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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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개헌 드라이브-明暗과 과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3.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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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망 수렴 미래비전 담아내야
국론분열 극복 긍정적 발화점으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청와대가 개헌 캠페인 드라이브를 본격화했다. 발의할 개헌안 내용을 차례로 공개했다.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중 전문(前文)ㆍ기본권 부분, 21일 지방분권과 국민주권, 22일 정부형태를 비롯한 헌법기관의 권한에 대해 순차적으로 공개,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기정사실화 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부분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지난 13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헌법개정안 자문 안을 토대로 한 것이다.

헌법 전문에는 기존의 3·1운동과 4·19혁명 외에 부마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의 이념이 추가됐다.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국가의 국민 '보호노력'이 '보호의무'로 바뀌었고, ‘근로’라는 개념이 ‘노동’으로 대체됐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고용안정 의무, 노사 대등 결정의 원칙,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 같은 내용이 새롭게 들어갔고, 경제부문에선 토지공개념 강화가 포함됐다.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 건강권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등 다수의 기본권이 새로 생기게 한 것도 특징이다. 권력구조개편의 핵심은 '대통령 4년 연임제'로 바꾸었고, 대통령의 권한은 축소·분산하며 총리의 권한과 국회의 정부 통제권은 대폭 강화키로 했다.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을 비롯한 국가사회 전반에서 개헌논의의 일대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文 정권 '개헌 드라이브'의 명암과 과제를 조명한다.

발표 형식과 前文 우려

이번 공개 발표는 완성된 조문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바꾸겠다는 방향 제시다.

이번 개헌안 발의의 주체는 정부나 청와대가 아닌 ‘대통령’이다. 당연히 문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 앞에 설명해야 옳다.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호소하는 것이 국민과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수석비서관이 나서서 나라의 민주체제를 재정립할 헌법을 놓고 국민을 향해 공식 설명을 던지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았다. 그 형식부터 부적절했다.

실제 개헌안 내용도 여러 각도에서 明暗이 교차하고 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30여 년 만에 추진되는 개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방향을 잘 잡은 측면도 상당한 반면 논란의 소지가 될 요소도 결코 적지않아 보인다.

1차적으로, 헌법의 서문(序文)에 해당하는 전문은 국가 권력의 최상위 원리를 규정하는 만큼 다른 모든 법령보다 우월한 효력을 갖는다. 헌법 전문에 담긴다는 것은 누구도 폄훼하지 못할 가치에 온 국민이 합의했다는 뜻과 다름없다.

이번 문 대통령의 개헌안 전문(前文)에는 현행 헌법에 포함된 4·19 혁명 외에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의 정신도 계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주의 역사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차원이란 설명이다.

그렇지만, 부마항쟁 등은 정치적 평가는 어느 정도 됐지만 역사적 평가까지 완결됐다고 하기엔 이론이 있다. 여기에다 국가 정체성과 지향점을 축약하는 헌법 전문에 시민 항쟁을 줄줄이 나열해야만 하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헌법에 있는 4·19 민주이념만으로는 민주정치를 향한 우리 공동체의 열망을 보듬지 못한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시간이 경과한 후 또 촛불혁명도 전문에 넣어야 하고 또 다른 시민항쟁이 발생하면 그 또한 넣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올 만 하다.

헌법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가치를 절제된 언어로 담아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갖는 지향점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만 강조된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대통령 개헌안은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6·10 항쟁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추출해 담는 것이 타당하다. 당장 이들 사건을 헌법에 담는 것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그들의 논리가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개헌과는 다른 문제다.

헌법 전문에는 특정 정파의 주장이 아닌, 보편적 합의가 담겨야 마땅하다. 이번 방식 대로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헌법 전문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전문에 보편적 가치를 중점적으로 담고 특정한 역사적 사실들은 기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헌법에 특정 역사적 사실을 자꾸 추가하는 것이 헌법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지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한편, 현행 헌법은 국가가 재해 예방 및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보호노력 의무'를 '보호 의무'로 바꾸었다. 무조건 국가가 보호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재해는 발생하고 희생자는 나온다. 이 모든 것을 국가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보상한다는 것이고 결국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 이런 방향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키는 한편 권리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의정 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대의민주주의와의 충돌, 부침하는 여론이 여과 없이 법제화되는 데 대한 우려, 여론재판 가능성 등 논란거리도 적지 않다. 이런 사안을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헌법에 담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기본권 확대 쟁점

이번 개헌방향은 기본권을 확대해 국민의 자유와 안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꾸고 생명권ㆍ안전권ㆍ정보기본권을 신설했다. 국민의 기본권 신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이며, 앞으로 국가가 지향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다. 기본권 보장 대상을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것은 외국인 200만명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생명권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안전하게 살 권리와 국가의 재해예방 의무는,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고 언제 어디서 사고와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국민의 불안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각종 사고와 위험에 대처하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사형제 폐지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사용자 관점에서 만들어진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고 공무원 노동 3권을 보장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노력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인정하되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제노동기구나 유엔 기준을 고려하면 당연한 개정이다. 그러나 공무원 단체행동권 보장을 통한 권익 신장도 좋지만 남북 대치 현실과 불안한 안보 상황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은 시대착오적인 조항으로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폐지를 주장했던 것으로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검찰의 영장청구권을 헌법 사안이 아니라 법률 사안으로 돌린 것도 옳은 방향이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는 국회의 사법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에 더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은데, 헌법 개정으로 영장청구 주체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권 조항 역시 개정이 절박치 않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현행 헌법 전문도 그런 점에선 손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새롭게 내세운 생명권, 안전권, 정보기본권 등은 시대 변화에 맞춘 것이겠지만, 현행 헌법의 행복추구권과 양심의 자유 등으로도 보장할 수 있다는 비판론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어야 한다. 하물며 헌법은 더욱 그렇다. 일반 법률로 정해도 될 사항을 헌법에 일일이 규정하다 보면 상황 변화에 따라 매번 개헌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노동조건을 노사가 대등한 자격으로 결정한다는 근로기준법상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과 남녀고용평등법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으로 격상시켜 규정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업 자율성과 노동 유연성을 침해할 수 있다.

이는 노동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노동시간만으로 가치를 측정하겠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이번 개헌안이 4차 산업혁명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안정에 대한 강조는 근로자의 과보호를 초래하고 노동계의 경영권 참여 역시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클 것이란 반론이 적지않다.

이와관련, 정리해고 시 파업권을 부여하기 위해 이미 보장된 노동 3권 중 단체행동권을 별도 명시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노조공화국' 소리가 나온 지는 수십 년도 더 됐다. 한국GM과 금호타이어 사례에서 보듯 한국에선 노조가 반대하면 기업을 팔 수도 없는 실정이다. 바뀐 시대상을 반영해야 할 헌법 개정안이 오히려 수십 년 전 노동운동 시각에 머물고 있는 형국이다. 이 역시 우려치 않을 수 없는 부문이다.

토지공개념 논란

경제 문제와 관련, 청와대는 새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산인 토지가 소수에 집중되면서 경제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토지의 공적 개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극소수 개인들이 택지를 무한정 사들이고, 기업들이 유휴지로 투기에 나서는 등 토지를 이용한 부 축적 실상은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토지공개념은 자본주의의 본질인 사유재산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헌법 명시 문제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청와대의 이번 개헌 작업에서 가뜩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헌법 전문과 기본권 분야에서 훼손 가능성이 높아진 마당에 토지공개념처럼 사유재산 침해 우려가 있는 요소까지 강화될 경우 편향성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토지공개념은 땅(부동산)에 관한 개인의 재산권을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제약할 수 있다는 게 핵심 논리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자본주의 경제질서 및 그 근간인 사유재산제와 정면 충돌한다는 이유로 토지공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노태우 정부가 1989년 '토지공개념 3법'으로 불린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과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을 제정했으나 헌법재판소가 토초세법과 택지소유상한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토지공개념 헌법 명시는 개인의 사유재산권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논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공익과 사익의 명확한 구분, 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번 개헌안대로라면 부동산 시장 상황이나 행정 당국의 판단에 의해 과도한 제한이 가해질 개연성이 크다.  무엇보다 최근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토지거래허가제를 대폭 강화하거나, 주택거래허가제를 도입하지 말란 법도 없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은 도입하되 그 수준이 과도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량권이 넓어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등 위헌논란이 무력화될 소지가 적지 않다"며 "종부세 강화, 각종 개발이익 환수 등 가속화가 예상되는 만큼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란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를 충족시킬 안을 다시 짜내야 한다. 국민 모두의 관심사인 만큼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 부분과 관련한 헌법개정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 왼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오른쪽은 김형연 법무비서관이다. ⓒ뉴시스

권력구조 신중을

앞으로의 개헌 내용과 관련, 역시 최대 관심사이자 논쟁점은 권력구조 부문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시했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 방향은 여권의 4년 대통령 중임제를 비롯 정·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대통령·총리 간 권력을 배분하는 이원집정부제 등으로 압축된다. 계속 치열한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권력구조 개헌 추진은 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가장 큰 폐단으로 지목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시정이 최우선 목표가 돼야함은 당연하다.  정부 여당이 원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그 자체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연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권한 분산이 더욱 완벽히 전제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오히려 강화해 개헌 취지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와관련, 만에 하나 여권 핵심인사들의 이번 개헌 구상이 차기 정권에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용 개헌론’이라면 불순한 발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개헌을 통해 차기 정권에서 정파 간 권력 배분을 꾀하려는 발상도 있다면 이 역시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역대 정권에서 정략적 개헌 시도는 항상 실패했고, 비록 관철되더라도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권력구도 부문의 성급한 접근은 무엇보다 경계돼야 할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분권과 기본권을 확대하는 방향이 돼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대통령이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비극에서 탈출하고 국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현재 제1야당 한국당은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여권은 우회적 내각제 도입이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다만, 대통령의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을 국회와 나눠 권력남용을 실질적으로 막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절충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진정한 절충을 위해서는 항상 국민적 여론을 바탕에 둬야 한다. 국민적 논의를 배제한 정치권 실세 몇몇의 개헌 시도는 항상 불행한 헌정사를 낳았다.

이번 개헌논의가 목표로 삼아야 할 '제왕적 대통령제'의 바람직한 시정을 위해서는 역사적 점검도 중요하다. 험난했던 한국 헌정사는 권력분점이 아닌 승자 독식의 5년 단임제에 문제가 있었음을 선명히 검증케 한다. 이 제도는 언제나 여야 간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고,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까지 더해 ‘분열의 정치’를 더욱 뿌리 내리게 했다. 정책 연속성이 끊기는 부작용은 항상 다음 정권으로 전가됐으며, 단임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북한이 핵기술을 고도화해 핵무기 확보 직전까지 이르고 만것도 한반도 현실이 됐다.

현 세대보다 후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책이나 4대 연금 개혁, 기후·환경변화 대응책이 단기 정책 목표에 급급한 것도 ‘5년 정권’의 무책임성 요인과 무관치 않다. 임기 말이면 언제나 대통령의 정책 집행 능력은 더욱 떨어져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들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그 자리를 떠났던 것도 '단임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키 힘들다. 향후 개헌 방향에서 이같은 큰 문제점의 방향은 국민여론이 납득할 정도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국론분열 경계

무엇보다 이번 청와대 개헌안의 파급영향은 국론분열 요소가 적지않다는 측면이 중대 현안이다. 당장 발표당일 부터 '헌법 전문에 부마 항쟁과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의 민주 이념을 명시한다'고 한 것을 놓고 좌파·우파 단체들이 충돌했다. 공무원 파업권, 검사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삭제 등에 대해서도 국민 생각이 제각각으로 비친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은 행정부 수반이나 정파 대표가 아니라 국가원수 자격으로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그에 맞게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의 경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전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른바 진보진영과 노동계의 오랜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권은 국민적 공감대가 확보 안 된 내용을 개헌 진열대에 다 올려놓는 식이어서는 여야와 각계각층에서 논란만 커질 뿐 결실은 맺기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표심을 노린 정치적 개헌이라는 비판 속에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논리를 심화시켜 나갈 경우 국론은 더 분열되고 말 것이다.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아우르고 자유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개헌의 길이 진정 무엇인지 대통령과 청와대는 다시 한번 깊이 숙고해야 한다.

청와대 개헌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 충분한 대국민 설득과정을 거쳤는지도 의문이다. 공청회 한번 제대로 가진 적이 없다. 더욱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의무화나 공무원 노동3권 강화와 같은, 계층 간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 국민적 재검증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野와 '신뢰작업' 부터

이번 청와대 작업에 대한 정치적 파고도 거세기만 하다. 야 4당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 회의에서 "만약 (국회에서) 개헌 투표를 하자고 하면 우리는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들어가는 사람은 제명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또 "개헌의 본질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타파"라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건드리지 않고 헌법 전문에 온갖 사건들을 다 넣어 전문을 먹칠하려는 시도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일방적인 개헌 발의를 여기서 중단해 줄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며 "국회를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오만이자 국민이 만들어 준 국회 협치 구도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물론 '친여'(親與) 성격이 있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까지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되면 개헌 논의가 중단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 발의 시점을 예고하면서 6·13 지방선거 때 개헌안 동시투표를 성사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개헌의 키를 쥔 국회의 개헌 논의는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의결정족수를 넘기기 힘들다. 재적의원 가운데 3분의 2(196석)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21석에 불과하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개헌에 반대한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불발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려는 ‘홍보전’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 키울 뿐이다. 또한 국회 의결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려는 것은 결국 국회와의 신뢰의 틀을 허물어뜨릴 뿐이다.

물론, 청와대가 개헌의 ‘총대’를 메고 개헌에 나선 데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뒤집은 자유한국당의 책임도 크다. 한국당은 개헌 투표를 병행하면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거란 계산 탓에 개헌 약속을 뒤집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가 못하니 내가 하겠다’는 식으로 개헌에 접근하면 안 된다. 청와대의 26일 발의가 실제로 이뤄지면 정국은 급속하게 냉각되고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곧 개헌안 중단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정치권의 합의안 도출을 위해 청와대가 훨씬 더 많은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말 개헌을 하려면 국회, 특히 야당과의 신뢰부터 쌓도록 해야 한다.

국회가 중심축 돼야

물론 현행 헌법상 개헌안 발의를 대통령도 할 수 있게 돼 있으니 이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없도록 국회가 개헌 논의를 완결짓는 것이 최적의 시나리오다. 헌법은 그 유래 자체가 국회에 속하는 것이다. 개헌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자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특위 활동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른바 '관제개헌' 이란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여당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리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고 국회에서 부결되면 개헌 동력은 되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술대에 올릴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 개헌안 발의 이후에도 6·13 지방선거 때 개헌안 동시투표가 가능한 시점까지 국회 개헌안이 발의될 경우 정부 개헌안을 철회할 수 있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기에, 국회에서 정당들은 개헌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역시 국회에 있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밤을 새워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고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개헌안에 합의,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국민 앞에 제출해야 한다.

국민은 개헌을 통해 '19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헌정체제를 구축하기를 원한다. 또한,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할 만한 새 권력구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현재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염원과 시대변화를 담아내는 헌법 개정이 요구됨에도 '현실'은 그렇다. 여야 모두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국민의 희망에 부응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새 헌법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야당도 무작정 반대하기보다 수용할 것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회는 실질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여야 3당의 원내대표와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각 당 간사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즉각 가동토록 해야 마땅하다. 우선 개헌 로드맵부터 제시한 뒤 권력구조 등 쟁점 사안에 대해 순차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와대의 대통령 개헌안 공개가 국회의 개헌 논의를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도록 해야한다. 대통령안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살린 개헌안을 내놓도록 해야 할 것이다. ‘87헌법’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의 자율·창의가 적극 발현되는 그런 개헌 방향을 기대한다.

전향적 논의 시발점으로

헌법은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어야 한다. 현행 헌법이 1987년 이후 사회적 변화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중심 개헌’이라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이번 문 대통령 개헌안은 1987년 개헌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공식 개헌안이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태어나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6공화국 헌법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토대를 두고 있는 국가최고법이긴 하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충돌했던 지난 '87년 체제' 청산과 맞물리면서 이 헌법의 명운은 다했다. 새 시대의 국가기반으로 그대로 계속 사용해 나가기는 적절치 않다. 지난 30여년 동안 개헌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대두, 시도되어 온것도 그런 연유다.

오늘의 개헌추진 현실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고, 굴곡진 개헌역사의 교훈을 통해 명실상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로서의 시사점과 방향타를 잡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에 다시 점화된 개헌론을 전향적 논의의 시발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를 놓치면 30년 이상 지속된 낡은 헌법적 틀을 고치는 일이 요원해지고,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 된 전직 대통령의 불행 사태도 막을 수가 없을 지 모른다. 권력구조 뿐 아니라 가족ㆍ환경문제 등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헌법을 만들려면 국민의 공감대 형성 등 시간도 필요하다. 여야는 이번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인색해선 안된다. 정치권이 지금의 행태로만 간다면 국민이 원하는 개헌은 이뤄지기 어렵다. 국가 발전의 영원한 장기적 토대를 구축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머리를 맞대어 진지한 논의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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