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꼬리치는 꽃뱀을 본 적 있는가? 나는 꽃뱀의 환상적인 몸놀림을 기억한다.
수십 년 전 어느 여름날, 고향마을 냇가는 동네 아이들의 멱 감기로 왁자지껄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는 멱 감기는 물 속 생물들과도 함께하는 놀이였다. 놀이에는 꽃뱀도 빠지지 않았다. 유혈목이로 불리는 꽃뱀은 흔한 뱀이었는데 온몸에 꽃무늬가 있었다.
시골에서 냇가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물도 살아 있어 여러 생명체가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있으면 꽃뱀이란 놈도 논두렁에서 내려와 물 위로 꼬리치며 지나간다. 자기도 놀이에 함께 끼고 싶다는 듯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행복했던 한때였다.
수많았던 생명체가 농약의 독성을 견뎌낼 길이 없어 떠나고 말았다. 좀 더 많은 농작물을 얻기 위해 논밭에서 쫓아낸 친구들은 헤아릴 수 없다. 논밭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생명체가 있더라도 그 숫자는 엄청 줄었다. 논우렁이, 다슬기, 거머리, 벼메뚜기, 물자라, 장구애비, 미꾸라지, 참개구리, 청개구리, 유혈목이, 능구렁이…. 멸종 위기에 있는 생명체도 있다. 우리만 살고 말겠다는 것인지….
꽃의 계절 봄이다. 꽃잔치를 벌이는 이즈음, 점심시간에 답십리도서관 인근 청계천 변을 걷는다. 많은 사람이 가벼운 발놀림으로 건강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청계천에 흐르는 물이 시원해 보인다. 잉어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도망친다. 근데 청계천 물속이 뿌옇게 비어 있다. 있어야 할 생명체들이 보이지 않으니 삭막하다. 잉어 외에는 안 보인다.
청계천을 복원할 당시, 전문가들은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개울과 숲에 반딧불이가 날고, 아이들이 멱 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꿈을 키우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게 진정 사람 사는 것이다.’ 수질을 높여가면 3급수에 사는 붕어나 잉어에서 시작해 2급수 물고기인 피라미, 1급수 물고기인 버들치까지도 살 수 있다. 청계천 바닥은 호박돌과 자갈, 왕모래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다.
사실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한강과 지하철역에서 끌어올린 것이다. 하루 12만t의 물을 대기 위해 드는 전기료는 연간 8억7000만원, 하루 238만원 꼴이다. 적지 않은 돈을 쓰는데도 청계천에 많은 생명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청계천 복원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은 ‘청계천 복원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복원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에 살 때 청계천 둑을 걸어 목욕탕에 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강둑을 걸으면 묘한 정취가 있죠. 청계천이 복원되면 무수히 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갈 거고, 그렇게 되면 너무나 아름다울 겁니다. 살아 있는 것은 언제나 아름다우니까요.”
그 옛날 시골 냇가에서 멱을 감으면 나타나던 꽃뱀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청계천에 “꽃뱀이 나타났다”는 말을 하루빨리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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