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연차보상비가 안 나와서 선배한테 물어봤더니, 우리 회사는 연차보상비가 안 나온대. 이거 법 위반 아니야?”
“혹시 작년에 회사에 휴가 계획서 제출했어?”
“계획서는 냈는데, 일이 많으니까 못 갔지. 회사 생활하면서 누가 계획대로 휴가 가냐. 그거 내면 연차보상비는 못 받는 거야?”
“근로기준법에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도라는 게 있어서, 사용자가 몇 가지 조치를 취했는데도 근로자가 연차를 안 썼으면 연차 수당을 안 줘도 되게 돼있어. 아마 너희 회사도 법에 안 걸리게 잘 세팅이 돼 있을 거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노무사로 일하는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구로구에 위치한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 A는 지난해 5월 회사로부터 연차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A는 언제 업무가 할당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 달 후의 일정을 미리 알려달라는 요구에 당황했지만, 지시를 어길 수 없어 임의로 휴가 계획을 세운 뒤 회사에 제출했다.
A가 휴가를 가기로 예정됐던 날, 아니나 다를까 A에게는 과중한 업무가 떨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동료들을 두고 연차를 쓰기에는 눈치가 보였던 A는, 결국 미리 지정했던 휴가 날짜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다. 그러나 회사는 A에게 연차 수당 지급을 거부했다. ‘자발적으로 연차 계획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A는 노무사 친구에게 이 일을 상담했으나, ‘위법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실소(失笑)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쉬지도 못 하고 보상도 못 받게 하는’ 휴가촉진제
근로기준법 제61조에는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 촉진’ 규정이 있다. 유급휴가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두 가지 의무를 부담시키고, 사용자가 의무를 다했음에도 근로자가 연차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는 연차 보상비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제도다. 사용자에게 주어진 두 가지 의무는 △연차가 사라지기 6개월 전 서면으로 근로자에게 미사용 연차 일수를 통보하고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것 △근로자가 사용 시기를 지정하지 않을 시 2개월 전 사용자가 직접 미사용 연차의 사용 시기를 지정해 서면으로 통보하는 것이다. 만약 회사가 연차 휴가를 부여했음에도 근로자가 사용하지 않았다면, 회사의 금전보상의무는 사라진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연차를 ‘눈치 보며 쓰는’ 경우가 많은 우리 기업 문화 탓에, 이 제도가 기업의 보상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A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6개월 전 근로자가 연차 사용 일자를 지정하더라도 회사 사정상 휴가를 떠날 수 없게 되면 ‘쉴 수는 없고 보상만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심지어 몇몇 업체는 근로자가 휴가를 갈 수 없는 시기에 연차 날짜를 정해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를 악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 임금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자 휴가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의 근로자들은 평균 9.9일의 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연간 최소 15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소 5일의 연차에 대해서는 ‘쉬지도 못하고 보상도 못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철희,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 11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 사용 촉진을 위한 조치를 했음에도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사용자에게 그 미사용한 휴가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며 “업무과다와 대체인력 부족 때문에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연차 휴가를 쓰기 힘든 환경에서, 연차유급휴가의 사용 촉진 조치마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면 이 제도는 근로자에게 혜택이 되기보다 연차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마저 지급받지 못하는 근거로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법안은 연차 유급휴가의 청구나 사용을 이유로 하는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연차 유급휴가 대장 작성, 연차 유급휴가 사용 촉진 조치의 의무화 등 근로자의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형해화(形骸化)된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 규정을 보강해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의 연차 사용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본 법안이 통과되면, 사용자는 매년 근로자별로 해당 연도 연차 유급휴가 일수를 서면으로 통보함은 물론, 근로자별 연차 유급휴가 일수·사용일수 등을 기록한 유급휴가대장을 작성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또 근로자가 왜 연차보상비를 받을 수 없는지를 인지할 수 있도록,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 규정에 따라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금전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또 사용자는 근로자가 연차 유급휴가를 신청한 경우, 그 기간에 근로를 제공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 이 규정을 어길 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를 실시함으로써 회사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지만, 근로자가 이 제도를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매우 부족하다”며 “제도 보완을 통해 악용을 차단하고, 근로자들이 실질적으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이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김영호·노웅래·박용진·박찬대·백혜련·송옥주·신창현·심재권·유승희·윤관석·이상민·이종걸·정성호·표창원 의원,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 등 총 17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