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은정 茶-say 아카데미 대표)
4월 어느 날 이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둘러 아이들 아침 준비를 마치고 몇몇이 모여서 택시를 타고 상해 기차역으로 달렸다. 중국의 기차역은 흡사 공항같이 크고 넓다.
이른 아침부터 역 안팎으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밤새워 기차역 광장에서 노숙을 한 듯 큰 꾸러미의 짐에 기대고 앉아 조는 사람들, 허기진 배를 채우려 뭔가를 먹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며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역 앞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우리 일행은 짐 검사를 마치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여권을 꺼내 들고 긴 줄 뒤에서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대합실은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이며 인구가 많은지 짐작 가는 광경이다.
고속기차로 1시간 좀 넘게 걸리는 항주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충분하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용정 차밭을 본다는 생각에 내 맘은 설레기 시작했다. 차창 밖의 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연신 사진을 찍어 댔으나 결국 나중에 다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풍경도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거다.
기차 안은 청결하고 좌석 간 거리도 넓었으나 다소 시끄럽긴 했다. 옆자리 한 남자는 항주 도착까지 1시간 넘게 누군가와 큰소리로 통화 하는데, 그것 또한 그 나라 생활문화라 받아들이니 우리 일행도 덕분에 항주까지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들뜬 맘으로 도착한 항주.
용정 차밭까지는 역 앞에서 택시로 이동했다.
차밭 마을 입구에 내린 우리 일행은 이미 연락해놓은 차농(茶农) 집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양어깨에 광주리를 매고 과일을 파는 아줌마도 있었고, 자기들 차농 집으로 안내하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비탈길을 오르는 동안 거리는 깨끗하고 집들도 별장같이 좋아서 이집 저집 구경하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연신 감탄하며 올라갔다. 여느 시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용정 차밭 농가들은 대부분 부농이고, 사는 형편이 꽤 좋다는 얘기를 후에 들었다.
오르는 길에 새벽 찻잎을 따서 광주리에 한가득 담아 내려오는 아낙들을 볼 수 있었다. 싱싱한 찻잎들이 광주리 안에서 마구 요동치며 수분을 날려 향기를 내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반해서 그늘에 얼마간 널어놓을 것이다. 이 과정을 전문 용어로 ‘탄방’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잠시 거치면 찻잎의 아미노산이 작용해 좋은 맛과 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용정차는 녹차 중 가장 대표적인 명차이며, 중국이 제일 사랑하는 차 중의 하나다.
용정차는 중국 절강성 항주에서 재배된다. 용정차 잎은 푸른 녹색이며 모양이 특이하게 납작하다. 제다 과정 중 찻잎을 누르며 모양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탕색은 푸르고 맑으며, 향은 은은하고 그윽하다. 맛은 깔끔하고, 모양은 아름다워 사랑받는 대표적인 차다.
차농 집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등급별로 용정차를 마시고 나름 품평해 보았다. 그냥 보기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등급별로 분명 향과 맛에서 차이는 있었다. 차밭을 등지고 앉아서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차향을 실어 마시는 용정차는 눈과 머리로 이미 향과 맛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차농들과 미리 연락하고 방문하면 점심 대접과 용정 차밭 안내를 해준다. 그리고 그 집에서 직접 만든 용정차를 시음해보고 원하는 등급의 용정차를 구입한다. 높은 등급의 용정차는 너무 비싸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서 한국으로 선물할 것은 조금 높은 등급으로 소량 구입하고, 내가 마실 것은 중간 정도 등급으로 많은 양을 구입한다.
왜 차를 살 때면 쓸데없는 욕심이 생기는지.
양껏 구입하고는 당해 연도에 다 마시지도 못하고 해를 넘기기 일쑤다. 갈수록 차 욕심은 많아지고 자제하려 해도 막상 차만 보면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저기 조금씩 나눠 주기도 하고 차 모임에서 나눠 마시기도 한다. 차인들의 이런 나눔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큰 돈 주고 차를 구입해도 같이 모여 나누는 것이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동이고, 결국 그것이 마음가짐과 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십 년씩 차인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차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은 있으나, 주변과 나누는 차의 정신 미학은 몸에 깃들어 있다. 차를 마시며 즐기다 보면 서서히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쁜 현대인들이 즐겨 마시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다른 한가지라 할 수 있다.
용정차에 얽힌 이야기와 만드는 과정은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