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혁명의 동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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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혁명의 동력이 되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8.04.28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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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선거를 통해 보는 혁명의 역사
제20대 총선과 촛불혁명… "새누리당 승리했다면 탄핵까지는 못 갔을 것"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부정 선거, 권력의 종식 가져와
선거는 혁명의 도화선… "선거, 혁명의 주요 요인 제공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선거는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변곡점(變曲點)이 된다. 변곡점 속에서 선거는 때론 촛불을, 때론 화염병을, 그리고 거리 위의 핏방울을 불러오곤 했다. 이에 <시사오늘>은 우리에게 친숙한 지난 2016년의 촛불혁명부터,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60년의 4·19 혁명까지 선거가 한국 민주주의에 가져온 역사적 의의를 되짚어 봤다. ⓒ시사오늘

당신은 그와 함께 자랐다. 어쩌면 코흘리개 시절 반장이 되고 싶었던 당신은 그를 위해 햄버거와 피자를 약속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늘 특정 때가 되면 당신과 가까워졌다. 4년마다, 또는 5년마다 성인이 된 당신 주변을 서성였던 익숙한 존재. 우리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린 존재, 바로 선거(選擧)다.<편집자 주>

선거는 경쟁이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후보자들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대개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며 ‘야당 발목론’을 주장한다면, 야당은 정부의 실정(失政)을 지적하며 ‘정권 심판론’으로 맞받아친다. 선거는 제1당이 되느냐, 제2당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힘겨루기 싸움이다.

그러나 선거는 단순 ‘파워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재임 중 실시되는 총선과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역할을 동반한다. 또한 중간평가를 통해 앞으로의 정책 향방을 모색하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역할이 모여, 선거는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변곡점(變曲點)이 된다. 변곡점 속에서 선거는 때론 촛불을, 때론 화염병을, 그리고 거리 위의 핏방울을 불러오곤 했다.

이에 <시사오늘>은 선거가 한국 민주주의에 가져온 역사적 의의를 되짚어 봤다. 우리에게 친숙한 지난 2016년의 촛불혁명부터,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60년의 4·19 혁명까지. 주인공은 모든 혁명의 불씨를 당긴 20대 총선, 12대 총선, 그리고 3·15 부정선거다.

제20대 총선과 촛불혁명… "새누리당 승리했다면 탄핵까지는 못 갔을 것"

2016년 4월 13일. 제20대 총선이 실시된 이날,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생겼다. 與 새누리당 122석, 野 민주당 123석·국민의당 38석·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2000년의 16대 총선 이후 약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로 전환된 것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대이변이었다.

게다가 국민의당 약진으로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에 ‘원내 3당 체제’가 자리 잡았으며, 민주당은 17대 총선 이후 12년 만에 제1당 지위를 탈환할 수 있었다.

▲ 촛불혁명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은 촉발인이었을 뿐, 근인은 정권심판 심리가 작용한 20대 총선이었다. ⓒ뉴시스

정치 전문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20대 총선은 야권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상황이었다. ‘분열 필패(必敗)론’. 여권이든 야권이든 분열된 경우 선거에서 필패한다는 이론은 ‘정치 공식’이었다. 15대 대선 당시 보수진영도 이회창과 이인제로 갈라져 DJ가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온 바 있다. 그러나 진보 야당은 승리했고, 그 여파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점차 무너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까지 밝혀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파면됐다.

“그 때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됐어요. 때문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많게는 200석, 적게는 180석 정도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이 제2당으로 추락하는 것이었지요. 그 이유는 새누리당이 ‘우리가 완전히 이길 것’이라고 자만하면서 공천을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에요. (…) 바로 여기서부터 박근혜 탄핵이라는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만약 새누리당이 공천을 민주적으로 제대로 했다면 180~200석을 얻었을 것이고 그러면 박근혜 탄핵 사태는 오지 않았을 거에요.” -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 작년 3월 북악정치포럼 강연中

“새누리당이 이겼다면, 촛불혁명까진 일어나도 탄핵까지는 못 갔을 거라고 봐요. 새누리당이 다수당일 수 있었는데, 친박이니 뭐니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칼춤’ 때문에 보수가 폭삭 망한 것 아닙니까.”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26일 본지와의 통화

여소야대 정국과 제3당의 등장은 촛불항쟁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촛불혁명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은 ‘촉발인(觸發因)’이었을 뿐, ‘근인(根因)’은 정권심판 심리가 작용한 20대 총선이었던 것이다.

제12대 총선과 6·10 민주항쟁… "12대 총선, 78년 총선처럼 군사 독재정권 흔들어"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의 개표가 시작되자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YS가 이끄는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되는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YS는 12대 총선 직전 이민우 당 총재에게 서울 종로·중구 지역구 출마를 요청했다. 정치 1번지를 신민당이 차지할 수 있다면 ‘야당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전 총재의 종로 출마는 ‘신민당 돌풍’을 불러와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은 지역구 50석, 전국구 17석을 획득하며 제1야당으로 도약했다. 신민당은 서울·부산·인천 등 대도시에서 승리를 거두고 향후 정치민주화를 가져오는 ‘태풍의 눈’이 됐다. ‘관제야당’ 민한당이 전국구 포함 35석을 차지한 것에 비해, 신민당은 67석이라는 두 배에 가까운 성과를 보였다.

과거 전두환 정권하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는 정권의 개입과 협박, 매수로 얼룩져 있었고, 국민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점차 커지던 때였다. 이 상황에서 실시된 12대 총선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을 결집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신민당과 재야의 민주세력은 힘을 합쳐 ‘직선제를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일련의 과정들은 1987년 6월 10일 발생한 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물결은 결국 전두환 독재세력을 굴복시켰다. 용감한 시민들은 기어코 간선제를 폐기시켰고, 정치 정상화를 약속하는 6·29 선언도 받아냈다.

“당시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의 돌풍이 있었는데, 이는 야당에 표를 몰아줌으로써 사실상 국민이 당시 체제, 전두환의 5공화국 체제에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거대 야당’까지는 아니지만 야당이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몸집이 되어 줬습니다. 그것이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 셈입니다.”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現 성균관대 교수), 지난 1월 본지와의 인터뷰 中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의 선전으로 박정희 정권이 흔들렸던 것처럼, 85년 12대 총선 돌풍이 전두환 정권을 흔들었어요. 선거라는 건 국민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존재죠. 국민들의 뜻이 가시화 되는 것이니까요. (12대 총선의 6·10 민주항쟁 촉발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장기표 대표, 26일 본지와의 통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부정 선거, 권력의 종식 가져와

안타깝게도 선거는 늘 정의롭지만은 않았다. 왜곡된 제도로 인해 오염된 선거도 있었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사사오입 개헌 등 자의적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그는 충성을 다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선출하길 원했고, 조작된 선거 결과가 필요했다.

이에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비공개 투표를 진행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정한 투표를 위해 감시하는 야당 참관인들은 축출됐고, 투표함은 바꿔치기 됐다. 그들은 득표수 역시 조작해 발표하는 등 각종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마산 시민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맞서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했다.

4월 11일, 마산 시위대에서 실종됐던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바다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은 19일 ‘이승만 하야’를 외치며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벌였다. 비상계엄령도, 시위 군중을 향한 무력도 소용이 없었다.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가두 행렬은 마침내 소망하던 이승만의 대통령직 하야를 가져왔다.

이처럼 민심에 역행해서 치러진 선거는 국민 저항으로 이어지고, 정권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으로 마무리된다. 감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부정 선거를 국민들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4·19혁명 또한 선거의 작품이다. 부정 선거는 정당성을 띤 선거처럼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고, 권력의 종식을 가져오기도 한다.

▲ 민심에 역행해서 치러진 3·15 부정선거는 국민 저항으로 이어져, 이승만 정권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으로 마무리됐다. ⓒ4·19혁명기념도서관

선거는 혁명의 도화선… "선거, 혁명의 주요 요인 제공해"

“그런데 선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째, 선거 결과가 민심을 변화시키고 혁명으로 이어지는 경우. 둘째, 변화된 민심으로 일어난 혁명이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경우. 선거가 항상 혁명에 선행(先行)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야 합니다.”

한국정치발전연구소의 강상호 대표는 지난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혁명과 선거의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와 혁명의 발생에 큰 연관성이 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경우, 또 미국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정책의 대변화가 일어난 바 있습니다. 과거에는 혁명이라고 하면 주권자가 바뀌는 ‘피의 혁명’만을 의미했지만, 요즘엔 다르죠. 옛날처럼 피 흘리는 것만이 혁명은 아니고, 정책의 대변환도 혁명에 포함됩니다. 2016년 촛불시위가 민주적 절차를 거쳐 탄핵을 만든 것처럼 말이죠. 일종의 실질적 혁명입니다. 선거 그 자체가 혁명의 완성은 아니지만 요인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정순영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2010년 6월 2일, 제5회 지방선거에서 여당 한나라당은 압승을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했다. 광역단체장 선거 개표 결과 민주당이 7곳, 한나라당이 6곳, 자유선진당이 1곳, 무소속이 2곳에서 승리했으며, 당초 안정적인 승리를 기대했던 ‘보수의 텃밭’인 부산·대구·울산·경북 등 4곳에서만 겨우 확실한 우위를 잡아간 것이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됐으며, 대선 당시 보수에게 기울었던 추가 진보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급격한 혁명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최소 정권 향방의 ‘미리보기’ 역할은 하는 셈이다.

선거는 혁명과 밀접한 쌍방향 관계다. 4·19혁명과 6·10항쟁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선거는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선거를 둘러싸고 발생한 정치 갈등도 결국 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추동력이었던 셈이다.

“해외 사례도 많아요. 특히 중남미나 후진국에서 굉장히 많죠. 최근 베네수엘라에서도 부정선거가 펼쳐져 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워낙 독재정권이라 결국 성공은 못했지만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에 의의가 있죠.”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빠른 시간 내에 압축 성장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진공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주로 선거가 있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된 한국 사회에선, 이제 선거 직후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변화를 맞이하긴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선거는 민심 향방의 ‘미리보기’를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다. 어떤 세대가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이는지, 어떤 당이 다수 득표를 했는지 등 선거가 내포한 정보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선거는 때론 혁명이었다. 그리고 때론 당신을 위한 혁명이 되어줄 것이다. 선거로 연결된 우리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 손 안에 놓인 작은 혁명. 이 혁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오는 6월 13일, 4년 만에 당신의 곁을 찾아온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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