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회담 국제공조 최대 변수
핵폐기 완료…北 신뢰회복 중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반도 '새 역사'의 지평은 제대로 열려 나갈 것인가. 변수와 함정은 없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간의 '4·27 판문점 선언'은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새 이정표를 제시했다. 역사적 문서의 성격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공동으로 명문화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종전선언과 함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본격적인 국제협상을 공표했다. 동북아 질서의 대전환이 예고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실제 후속 로드맵이 어떻게 진행되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향후 일정상 구체적 쟁점과 과제도 곳곳에 도사린다. 국내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난제들도 상당하다. 현재 기류와 전망, 바람직한 방향을 점검한다.
'판문점 선언'과 남북관계 動力
남북 정상이 서명하고 공동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은 적대와 대결로 점철된 분단 질서를 허물고, 공존과 공영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다.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와 적대 행위의 전면 중지도 합의했으며, 남북 관계도 새로운 궤도에 올리기로 했다. 이어 미-북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국제 연쇄 정상외교도 갖기로 했다.
특히 이 선언은 핵심사안인 북핵과 관련, 3조4항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 표명으로 화답한 것이다.
남북 관계발전 측면에서도 획기적 동력을 마련했다. 남북 정상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한 현안 수시 논의에 의견을 모았고, 문 대통령은 올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 또 개성에는 양측 당국자가 상주하는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합의했다. 이제 남북 간에는 실무선에서 최고 지도자까지 상시적인 대화 통로가 마련됐다. 의미가 실로 크다.
트럼프 대통령도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자 곧바로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며 "미국과 모든 위대한 미국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우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연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구상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인 미국의 정상이 남북 정상 간 합의를 공개적으로 지지, '한반도 평화시대로의 전환' 구상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역사적 의미
역사적 의미의 기록도 남겼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한국전쟁 후 남한 땅을 처음으로 밟고,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상에서 손을 맞잡은 장면은 한반도 역사의 대전환을 의미 할 만 했다.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일 수 있었다.
특히 두 정상이 마주 앉아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찾는 '벤치 회담'은 다가올 평화의 전조를 느끼게 할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실제 내용 면에서, 남북 간 합의 문서에 비핵화 표현이 들어간 것은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지만, 남북 총리가 서명한 선언이었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여섯 차례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발사 등으로 핵무기 역량이 고도화한 시점에서 그 때와 달리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문서로 약속한 것은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질 만 했다.
남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주도해 가는 역사적 분수령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비핵화 문제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핵 문제는 미국과 논의할 사안으로 여기고 남북 대화의 의제로 올리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 외교,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김 위원장의 대외 전략 노선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한편으론 대북 선제 타격 엄포까지 놓으면서 압박정책을 펴고, 또 한편으론 김정은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 놨던 트럼프 대통령의 양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남아있다. 북·미회담 전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회담 결과를 이해시키고 핵과 평화의 교환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한·중·일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고,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검토되고 있다. 가을에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 사이에는 전방위 접촉과 대화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들 회담을 통해 양측 정상의 선언과 구상이 그대로 추진만 된다면 정전체제 65년 만에 한반도에는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후속 로드맵 과제
그러나, 이 역사적인 선언의 빈틈없고 견고한 실천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선결돼야 할 과제들도 적지는 않다. 국내적으로는 선언의 이행을 담보하는 후속 조치를 마련, 법제화 등을 통해 뒷받침하는 일이고, 국외적으로는 북·미 정상회담 도중에 있는 5월 9일의 한·중·일 정상회담, 5월 중순의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비핵화로 가는 국제사회의 협조 체제를 강고히 하는 일이 될 것이다.
4·27 판문점 선언은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완전한 '북핵 폐기' 없이는 한반도 평화, 군사적 긴장완화, 남북 관계개선도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먼저 ‘판문점 선언’ 이행 조처를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 군은 5월1일 오후 2시 육군 9사단 교하 중대에 설치된 대북확성기를 철거했다.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을 먼저 실천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판문점선언의 실질적 이행 여부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겠다는 남·북·미 정상들의 강한 의지가 작동하고 있어 합의 이행을 기대케 한다. 이번 남북 '비핵화' 선언이 앞으로의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핵과 평화를 교환하는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를 낳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판문점 선언의 크고 작은 합의를 실천하기 위한 군사·고위급·적십자 회담도 잇달아 열린다. 군사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밝힌 적대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인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 설정 등 굵직한 의제들이 논의될 것이다. 이 의제들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됐던 적이 있는 만큼 속도를 내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8월 이산가족 상봉도 서둘러야 한다. 준비에 최소한 2~3개월 걸리는 만큼 곧바로 적십자회담에 들어가되 상봉의 정례화와 규모 확대도 북측에 요구해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 수뇌부 간 직통전화 설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5월 중 개최키로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진지하고 실질적인 방안들이 논의되길 바란다.
남북 간 각계각층의 다양한 협력과 교류 왕래, 접촉 활성화를 명문화한 합의도 소중하다. 적십자회담 개최에 의견이 모이고,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도 다행스럽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간의 가장 중요한 인도적 현안이다. 이제는 일회성, 이벤트성 만남이 아닌 전면적 생사확인과 상시적 만남을 포함한 근본적 접근 전환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과거 남북은 좋은 합의를 어렵게 하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실패를 되풀이한 아픈 교훈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 더는 재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열릴 각종 회담에서 정상회담 후속조치가 차질 없이 논의되고 합의되어야만 한다.
비핵화 방법론 교차
후속 로드맵의 핵심은 역시 실질적으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어떻게 주고받느냐가 될 것이다. 북-미가 일괄 타결을 이루되,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단계를 최대한 압축, 통 크게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양쪽의 불일치를 조정하면서 필요할 경우 제3의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난관이 대두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이미 완성한 핵무기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은 향후 논란거리로 떠오를 공산이 적지 않다. 현재까지도 국제사회는 북한이 보유 중인 핵무기의 수량과 핵물질, 핵시설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시설 감시요원들이 2009년 쫓겨난 뒤 북한이 제조한 핵무기 수는 베일에 싸여 왔다. 6차 핵실험까지 끝낸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는 핵무력 완성을 천명하기까지 했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소한 2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이와관련, 지그프리트 해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핵심은 북한이 몇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고 이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다른 곳에 숨긴 것은 없는지가 될 것”이라면서 “핵무기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비핵화 여부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방법론인 인공위성 감시, 방사능탐지, 공기시료분석 및 현장검사 등을 통한 핵시설과 핵무기 탐사에도 한계는 있다는 뜻이다.
핵사찰 방식 쟁점
결국, 북미 비핵화 담판에서 가장 큰 난제는 방법론의 차이다. 미국이 ‘빅뱅식’의 일괄타결을 요구하는데 대해 북한은 단계적ㆍ동시적 방안으로 맞서 있다. 하지만 최근 미 워싱턴 정가의 기류가 다소 변하는 분위기란 소식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29일 온라인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2년 기한의 핵 폐기 방안으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건 구체적 조치는 북한의 완벽한 검증 수용이다. 핵무기 관련 장비나 물질을 은닉했다는 의심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 불시에 전면 사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북핵 합의들이 번번이 검증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던 역사를 비춰보면 차제에 확실한 검증 보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2007년에도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 파괴 장면까지 공개했지만 검증 수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좌초한 바 있다.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공개적 폐쇄를 통해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한 단계 더 분명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국면이다.
앞으로의 후속 회담 진행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암초를 조심해야 한다. 북-미 대화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 모델을 미국 당국자들이 최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대화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미국은 리비아식의 선 핵포기를 선호하지만 북한은 무장해제 이후 제거된 가다피 사례를 들어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북한은 단계별 비핵화에 맞춰 제재를 축소하는 ‘이란식 해법’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과거 북한이 국제협상을 종잇장처럼 버렸던 전례를 들어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북미 간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
마침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미 정상이 1~2년 시한의 로드맵에 합의하고 동결→핵시설 이전 등 폐기→검증과 사찰의 각 단계마다 보상을 제공하는 절충형 빅딜론이 거론된다고 한다. 북미가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와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로드맵에 담는 일괄타결 방식에 합의해도 실제 폐기와 보상의 조치는 단계별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국도 모를 리 없다. 우리 정부가 제시하는 ‘일괄합의, 단계적 이행’의 방법론도 이런 현실을 고려한 절충형이라 할 수 있다. 비핵화 담판을 중재하는 입장에서 이런 절충형 방안으로 북미 양측을 설득해 최대 성과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미·북 정상회담 향배
그런 점에서 곧 있을 미·북정상회담은 대단히 주목된다. 실질적 가닥이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상회담은 상징적 이벤트가 아닌 구체적 성과로 평가받을 것이고, 그 관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합의를 어떤 수준에서 이뤄낼 것이느냐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이 보유한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빠른 시일 내에 해외로 반출하거나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폐기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고, 그 완료 시점에 합의한다면 비로소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북핵의 본질은 남겨둔 채 핵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로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선에서 타협한다면 우리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 한국만 북핵을 머리에 인 채 '위장평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 며칠 전 미 상원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0%가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란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의심이 많은 게 현실이다.
북미회담의 성패는 우리가 핵을 이고 살 것인가 아닌가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김정은과 타협하고 이를 '북핵 폐기'로 포장할 가능성은 경계돼야 마땅하다. 김 위원장 역시 이번 미·북회담에서 앞으로는 ‘핵’이 아닌 ‘인민’을 끌어안고 살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형식이 본질을 가리게 해서도 안 된다. 혹여 회담 장소가 갖는 상징성이나 북의 '핵실험장 폐기 쇼'에 한눈이 팔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흐트러져서는 곤란하다. 문재인정부 또한 북한이 이미 개발한 핵무기와 추출한 핵연료 등을 남김 없이 신고.사찰.검증하는, 지난한 과정이 완료될 때까지 한.미 공조에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 대답해야 할 사안이다. 비핵화 과정의 구체적 절차도 상호 조치들을 수반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핵 폐기 협상의 본무대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조율돼야 할 사항이다.
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다음 달 폐쇄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견에서 “매우 마음이 열려 있고 솔직하다”고 김 위원장을 평가한 뒤 “개인적으로 큰 성공작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전망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을 약속받고, 미국은 그 대가로 북핵 폐기를 얻어내는 것이 각각 자국의 이익이라고 깨달은 듯하다.
'판문점'…세기의 담판
다음, 관심의 초점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다. 양측에 통상적인 정상회담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 탓이다.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세계평화가 걸린 세기의 담판이기 때문이다.
우선, 판문점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제3국이 아닌 그곳(판문점)을 선호한다”며 “그곳에서 일이 잘 풀린다면 엄청난 기념행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문 대통령이 이를 북한 측에 전달했다고도 했다.
공식 명칭이 공동경비구역(JSA)인 판문점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으로, 이후 65년간 분단과 대결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판문점 남측 지역은 유엔군사령부 관할이고 그 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자신들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당초 북한과의 회담 장소로 제3의 장소를 바랐다. 스위스·스웨덴·싱가포르·몽골·괌 등 다섯 곳을 검토하다가 최근엔 싱가포르와 몽골의 울란바토르 두 곳으로 압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남북 정상회담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는 후문이다.
판문점은 열전의 표상이자 냉전의 상징이다.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담이 이뤄진다면 지구상 마지막 남아 있는 분단의 상징에서 오랜 냉전의 구조를 해체하는 세기적 회담이 될 것이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1993년 빌 클린턴, 2002년 조지 부시, 2012년 버락 오바마 등이 판문점이나 DMZ를 방문한 적은 있으나 북한 지도자와 한반도 평화를 논하고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을 끝내기 위해 이곳을 찾은 미 대통령은 없다.
트럼프의 판문점 언급은 그동안의 북·미 간 물밑 대화가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핵심 의제에서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 대장정에 나서는 선언을 할 공산이 커졌음을 뜻한다.
모든 면에서 북한 비핵화에 집중하는 회담 장소로 판문점은 최적이 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은 사실 따로 떨어진 두 개의 회담이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둘이 아닌 하나의 회담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운을 뗀 비핵화 문제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결실을 보는, 내용상은 물론 형식상의 수순까지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더욱이 판문점에서 북-미 간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의미는 극대화될 것이다. 1989년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전략핵무기 감축 등에 합의하며 냉전을 종식한 몰타선언에 비견할 수도 있다. 또 1953년 정전협정이 조인된 판문점에서 관련 당사국이 종전선언을 추진할 명분과 동력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판문점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분단의 상징이다. 1951년 10월 25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만나 휴전협상을 시작한 곳이며,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한 분단의 현장이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평화체제로의 대전환을 협상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이 이뤄진다면 세계사적 상징성도 클 것이다.
한·미 공조를 위해서도 판문점이 적합한 셈이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리면 우리가 북·미 간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도 있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그 성과에 따라 문 대통령이 참여하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의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올해 종전(終戰)을 선언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추진한다’고 합의한 만큼 판문점은 3국 정상의 종전선언 현장이 될 수도 있다.
중립적 성격을 띠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에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회담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미 간 사전 협상이 잘돼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기간에 석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 귀국하는 장면은 판문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 북한군과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경호가 용이하고, 서울과 개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차량 이동도 편리하다.
한·일·중 정상회의
우리 정부의 향후 대책과 세부 행보도 차질이 있어선 안된다. 정부는 회담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국에 대한 후속 외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주요국 정상들의 회담이 줄줄이 이어진다. 북·미 정상회담이 메인 이벤트지만 곧 있을 한·일·중 정상회의도 주목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기존 국제 질서가 완전히 재편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남북한과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이 모두 이 변화의 당사자들이다. 비핵화의 조치들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들 간 긴밀한 공조가 중요한 이유다.
한·일·중 정상회의를 판문점 선언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 경제협력과 및 관계 개선 등을 목적으로 2008년부터 연례적으로 국가 정상급 회의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번 회의는 제7차 회의다. 최근 역사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과 한국의 정치 사정 등으로 인해 열리지 못하다가 2년6개월 만에 재개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참석하는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여러 현안이 논의되겠지만 한반도 정세 변화가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충분히 설명하고 후속조치들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종전 선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진행될 대북 제제 완화와 경제협력 등에서도 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자세도 견지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청하고 이를 북한과 미국 등에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 토대를 마련했지만 이후 상황 관리에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론통합과 정치권
국론통합을 위한 국내 정국대책도 최대한 효율성을 높혀 나가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새시대 개막 이라는 지난한 과제가 진정한 국론 통일 없이 이뤄질 순 없다.
여야가 있을 수도 없는 국가적 국민적 사안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여야, 진보·보수를 뛰어넘은 초당적 과제이다. 국론을 모으는 것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은 한반도 평화의 충분조건은 못 되지만, 필요조건임은 틀림없다. 한반도 정세 변화가 급물살을 탔는데, 이를 '위장 평화 쇼' 정도로 인식하는 행보는 적절치 않다.
현재 우리 정치권은 격변의 소용돌이에도 국회가 멈춰서 있다. 정쟁으로 4월 임시국회는 본회의 한번 열리지 않은 채 한 달 내내 공전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폐회일을 하루 앞두고 만났지만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사퇴 공방과 ‘드루킹 댓글 조작’ 특검 도입 탓에 빈손으로 헤어졌다. 여기에 판문점 선언을 "김정은과 주사파의 숨은 합의"라는 제1 야당대표의 이념적 비판까지 돌출하면서 국회 정상화의 길은 더 어두워졌다.
5월 임시국회가 소집됐지만, 꽉 막힌 국회를 풀 묘수가 없어 이 또한 공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한다. 정상화의 발목을 잡는 핵심 쟁점은 역시 '드루킹 사건' 특별검사 도입을 둘러싼 견해차다. 민주당의 '특검 불가' 입장과 자유한국당의 '특검 관철' 입장이 맞서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으로부터 '검찰 특별수사본부' 구성이 중재안으로 나왔지만 한국당이 특검 요구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절충에 실패했다. 5월 임시국회는 4월의 문제들에 더해 남북 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가 있어 더 복잡해졌다. 기존 문제들은 풀리지 않고, 새로운 문제는 자꾸 쌓이는 형국이다.
미국, 일본을 포함 각국 정상들이 판문점 선언에 환영의 뜻을 표했고, 외신들도 "새 역사의 첫걸음" "평화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는 논평을 하는 마당에, 야당 대표가 여전히 이념적 색깔론에 기대는 퇴행적 인식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조차 "당 지도부는 정신차리라"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다. 판문점 선언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일 수 없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 차원의 뒷받침은 필수적이다. 하루빨리 국회가 열려 외교통일위, 국방위, 정보위 등이 소집돼야 한다. 국회가 허송할 때가 아니다.
단계적 군축 방안을 비롯한 여러 군사적 문제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과 설명 속에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나씩 추진돼 나가야 한다. 행여나 남남(南南) 갈등이 생겨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국민과 정치권의 지원을 끌어내는 노력을 다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의무다. 정부는 야당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성실을 다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북미정상회담 성공 여건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것은 야당의 책임이고, 야권의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 몫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그 역사가 반복된다.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체제란 먼 길을 가기 위해 국민의 의지는 더욱 정밀하고 확고해져야 한다. 이를 정부와 정치권은 제대로 인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회비준 의미
특히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을 구체화·제도화하기 위해선 국회 역할이 필수적이다.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만큼 국회 비준 동의가 불가피하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6·15 공동성명과 10·4 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했고, 그 뒤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행이 사실상 중단됐던 것을 의식한 후속 조치다.
당시 6·15선언과 10·4선언이 제대로 실천되고 이행됐다면 한반도의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6·15선언은 노무현 참여정부로 계승돼 상당 부분 실천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0·4선언은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만들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간 합의가 지속될 수 있으려면 정상 간 선언만큼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은 정치적 합의 수준이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조약이 아닌 만큼 국회 비준을 서두를 일은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는 있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빠졌고, DMZ 평화지대 등 남북 경제 협력이 명기됐지만 아직 예산 규모도 산출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미·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인 만큼 유엔 대북 제재 해제 일정과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경협에 대한 밑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북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나왔을 때, 그때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 합의가 자칫 여야 정쟁으로 번져서는 안된다. 여야 간 다툼이 국론 분열로 이어지면 더 큰일이다.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 비준 동의 여부가 새로운 정쟁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비준 동의에 집착하지 말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끌어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남북경제, 현안과 방향
이번 '판문점 선언'에 따른 향후 남북 경제협력 방향도 실질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선언은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 우선 동해·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을 추진한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애초 4·27 남북 정상회담에선 경제협력이 의제로 잡히지 않았다. 남북 경협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정상이 남북 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 일부 구체적 방향까지 내놨다.
이번에 재합의된,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은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경제특구’ 조성,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개성공단 2단계 착공, 백두산 관광을 위한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 다양한 사업들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10·4 선언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확장시켰다. 평화체제 구축을 전제로 한 새로운 경협 전략이다.
벌써부터 관심과 기대도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번 합으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최대 270조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남북경협기금은 1조6000억원에 불과한데 북한의 ‘대남청구서’가 쏟아질 태세다.
물론, ‘신남북경협’은 지금까지의 경협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의 남북 경협은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한 국지적 임가공 사업이나 관광 교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남북한이 협력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경제권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한 차원 높은 경제 협력이 추진되는 것이다. 또 평화체제를 전제로 추진되는 까닭에 외교·안보 변수에 따라 흔들릴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평화가 경협을 촉진하고 경협 활성화가 다시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다.
제2 개성공단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통일경제특구법이 추진되고, 경협을 총괄할 협의체인 남북경협공동위원회가 11년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공단 재가동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경협 재개를 위한 로드맵도 짠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당장 재개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 남북경협 재개는 북한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비핵화 계획을 밝히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新남북경협은 남북 경제 모두 획기적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남쪽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는 돌파구를 열 수 있다. 북한도 경제의 개방·개혁을 이끌어갈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남북이 서로 경제적 이익을 주고 받으며 분업적 의존관계를 다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 경제공동체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경협 재개는 남한 경제에도 호재다. 10·4선언과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열거된 주요 사업만 해도 서해안 축에 경의선(서울~신의주) 개보수 및 서울~베이징 고속철 건설, 개성공단 2단계 확대 등이, 동해권에 금강산 일대 관광개발 및 청진ㆍ나선 산업 및 물류단지 개발 등이 포함돼 있는 등 성장잠재력이 크다. 정부는 예상보다 빨리 남북경협의 물꼬가 트일 경우 신속히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면밀한 선제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풀리면 남북 경협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정부와 재계가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남북 경협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비핵화 선언만 나왔을 뿐,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마당에 ‘보상’ 성격의 경협카드를 미리 꺼내는 것은 곤란하다. 북한 비핵화 방식과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 방법, 핵 폐기 후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조건 등을 놓고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험난할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우선적으로 동원해야 할 판에 경협부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북한 경협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확인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제재가 풀린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공존공영 '역사적 장도(長途)'를
지금은 앞으로의 모든 협상 과정이 더욱 조심스러운 시기다. 냉철하게 인내하면서 우리 정부와 미국이 북한을 전면적인 비핵화와 개혁·개방 길로 이끌도록 힘을 모아주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북핵 문제' 해결은 남북한의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 최대 현안이 되었다. 일단 시작된 남북선언인 만큼 북핵 폐기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으로서도 실제 그 길밖에 없다.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라면 완전한 핵 폐기는 대화의 실제 출구가 될 것이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인 걸음을 앞으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다. 남북한 간에는 이미 역사적인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돼 있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도 채택되어 있다. 이들 선언이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실현돼야 한다. 북한은 당연한 핵폐기로 평화의지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떳떳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주변국들과 협력할 수 있다. 남한과도 명실상부 협력의 대상으로 새로운 민족시대, 한민족 공존공영의 새로운 '역사적 장도(長途)'를 펼쳐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비핵화 문제만 해결된다면 좋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