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 몇 자만 입력하면 감당할 수 없는 텍스트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정보가 흘러넘치는 만큼, ‘제대로 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분간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이유로 <시사오늘>은 잘못된 정치상식을 바로잡는 ‘정치정보 팩트체커’ 역할을 하기로 했다. <시사오늘> 팩트체크의 아홉 번째 주제는 ‘전두환·노태우 사면, YS가 했나’다.
매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다가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논쟁이 벌어진다. 주제는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한 대통령은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인가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인가’다. 그리고 토론의 결말은, 으레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다 흐지부지되고 만다. 결론이 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한 것은 YS와 DJ 두 사람 모두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두환·노태우 사면론은 두 사람의 형량(刑量)이 확정되기 전부터 정계에 떠돌았다. 1심에서 두 사람이 각각 사형과 22년6월형을 선고받은 뒤, 1996년 8월 27일자 <경향신문>은 ‘全(전)·盧(노) 씨 형 확정 후 신병처리 어떻게…끊임없이 나도는 사면설’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들이 1심에서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확정판결 뒤 신병처리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가에는 두 사람이 구속될 때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면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중략) 여권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확정판결 뒤 어떤 식으로든지 사면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 (중략) 결론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문제는 향후 여론의 추이와 당사자들의 재판에 임하는 태도 변화, 대선 등 정치일정을 앞둔 여권의 이해득실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1996년 8월 27일 <경향신문> ‘전·노 씨 형 확정 후 신병처리 어떻게…끊임없이 나도는 사면설’」
외신 분위기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1996년 8월 28일자 ‘민주화 진전 확인…결국 사면할 것’이라는 기사에서는 당시 외신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부의 선고결과에 대해 외국의 언론과 정계에서는 “한국 민주화가 진전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결국은 정치적 타협으로 끝맺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번 한국의 재판으로 독재정치를 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훗날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종이 됐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또 많은 한국인들이 이번 재판의 출발이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만큼 김 대통령이 두 사람에 대해 사면 또는 감형조치를 취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략) 프랑스의 <르 몽드> 지는 26일 선고결과를 보도하고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여당 내 보수파를 의식해 내년 초 두 사람을 사면할 것 같다”고 전했다.
1996년 8월 28일 <동아일보> ‘민주화 진전 확인…결국 사면할 것’」
실제로 해가 바뀌자, 청와대에서는 본격적으로 사면론이 거론되기 시작한다. 전두환·노태우 사면은 ‘국민통합’이라는 상징성을 띠는 데다, TK(대구·경북) 지역 표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청와대는 사면 시기에 있어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아래는 1997년 4월 18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전·노 씨 사면복권 당분간은 안할 듯…김 대통령 임기 내엔 단행’ 기사의 내용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졌지만 당분간 사면·복권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17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이루어진 재판에서 확정판결이 나오자마자 사면·복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즉각적인 은전 가능성을 부인했다. 여권은 그러나 김 대통령 임기 내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복권시킨다는 기본 원칙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시기를 실무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4월 18일 <경향신문> ‘전·노 씨 사면복권 당분간은 안할 듯…김 대통령 임기 내엔 단행’」
당시 기사를 참고하면, YS는 전두환·노태우의 임기 내 사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두 사람의 사면을 YS 독단(獨斷)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모두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요구하거나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던 까닭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30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문제와 관련, “김영삼 대통령 임기 내에 사면을 단행, 하루빨리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이날 9월 2일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하고 “화해라는 것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이뤄지는 것이지만 용서는 다르다”며 그분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7년 8월 31일 <동아일보> ‘김대중 총재 “전·노 씨 사면결정 김 대통령 임기 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김영삼 대통령 임기 내 사면을 주장한 데 이어,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전·노 씨의 추석 전 사면을 김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해 정치권에 파문이 예상된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31일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추석 전에 사면하도록 김 대통령에게 곧 건의할 뜻을 밝혔다고 이 대표의 핵심 측근이 전했다. 이 측근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오후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번 추석 때라도 이들을 석방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도록 하는 게 국민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9월 1일 <한겨레> ‘이 대표 “전·노 추석 전 사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15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경제회생에 일로매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질시와 갈등을 해소해 계층·세대·정파 간 화합과 단결을 이뤄야 한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영삼 대통령으로 하여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빠른 시일 내에 단행, 3김정치와 정경유착의 구조를 청산하는 첫 출발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12월 16일 <경향신문> ‘“빠른 시일 내에 전·노 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이런 흐름 하에, 대선 직후 대통령 YS와 대통령 당선자 DJ는 1997년 12월 20일 만남을 갖고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결정한다. 형식적으로는 YS가 주도하고 DJ가 동의하는 모양새였지만, 내용상으로는 YS와 DJ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다음의 두 기사를 보면, 전두환·노태우 사면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대선 이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은 첫 합작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두 전직 대통령의 ‘대선 뒤 사면’은 이미 기정사실이었으며 시기 선택만 남아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다소 앞당겨진 것은 대선 이후 번지고 있는 ‘국민 대화합과 지역갈등 해소’의 기류에 편승한 측면도 짙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20일 청와대 회동에서 김 대통령과 김 당선자의 합의를 거친 것이지만, 그 형식은 ‘김 대통령 주도, 김 당선자 동의’라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사실 김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이미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원칙적인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다만 사면권자가 김 대통령인 만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김 당선자 쪽의 이런 분위기를 알고 사면을 위한 실무적 준비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의 동의를 받는 형식을 밟았다.
1997년 12월 21일 <한겨레> ‘전·노사면 의미와 배경 ‘국민대화합’ 김·김 첫 합작품’」
Fact – 전두환·노태우 사면은 YS와 DJ의 합작품이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