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은정 茶-say 아카데미 대표)
중국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 옆 자리에 긴 물병이 놓여있는 것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그 물병 속엔 적지 않은 찻잎이 들어있다. 그들은 일정량의 찻잎을 담아 계속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종일 우려 마신다.
사무실에서도 길을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찻잎을 넣은 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크건 작건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도 물이 아닌 차가 먼저 나온다. 한여름 무더운 날에도 대부분 중국인들은 얼음물이나 냉장고 속 찬물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따뜻한 차를 물처럼 마시는 습관 때문일 거 같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그 대부분이 봄에는 용정차를 넣고 다니며 마신다. 매년 봄이 되면 도시의 차관이나 차 시장에는 큰 광주리에 용정차를 한 가득 담아서 내어 놓고 판다. 부근을 지나다 보면 온통 용정차 향으로 그득하여 행복하기까지 하다.
절강성 항주로 용정차 밭 답사를 간 우리 일행은 차농의 집으로 오르는 동안 별장 같은 주변의 집들에 감탄을 연발했고, 오전 찻잎을 따서 내려오는 아낙들과 마주치며 차농의 집에 들어섰다.
차농집 마당 광주리엔 널어놓은 용정차가 탄방(찻잎을 딴 후 그늘에 잠시 널어놓은 상태)을 하고 있었다. 탄방을 마친 용정 찻잎은 큰 가마솥에서 높은 온도로 덖어낸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살청’ 이라고 한다. 여러 번 뒤집어 가며 타지 않게 잘 덖어 낸 찻잎을 꺼내어 굴려가며 비비면서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을 ‘유념’ 이라고 한다. 그리고 건조해 차를 완성한다. 대부분 녹차가 이런 제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용정차는 특이하게 덖는 솥에서 눌러가며 외형을 납작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정차를 ‘편평형’ 녹차라고 한다.
또한 탕색은 연하게 푸르고 신선한 난초향이 나며 맛은 깔끔하고 개운하다. 서호 용정차는 색·외형·향·맛 4가지가 뛰어나 녹차 중 단연 으뜸이며,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차 종류 중 하나이기도하다. 녹차는 산화 정도가 10% 미만인 불발효차이며 대표적인 녹차가 용정차다.
우리 일행은 차농이 내어주는 3가지 등급의 각기 다른 차를 시음해 보았다. 외형에서도 향과 맛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었다. 완전 녹색 빛깔보다는 약간의 황색 빛이 섞여 있는 것이 더 고급 용정이라고 차농이 설명해 주었다. 또한 정부에서 차밭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한다며 안심하라는 당부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호 용정차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청(淸)조때 건륭제가 항주에 왔다가 태후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돌아가면서 찻잎을 갖고 갔는데 그 향기를 맡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건륭제는 서호의 용정차를 귀하게 여기고 공물로 바치게 했다고 한다.
시음을 마친 우리 일행은 차농집에서 준비한 점심 식탁으로 갔다. 전년 봄에 방문 했을 때 나물로 차려진 점심 식사가 너무도 맛있었던 기억에 사뭇 기대를 갖고 둘러앉았으나 차농은 나름 또 방문해준 우리 일행이 고마웠는지 식탁 위는 온통 고기 종류였다.
어딜 가든 먹는 행복이 우선인지라 항주로 오는 기차 안에서도 우리 일행은 고기보다는 잘 볶은 나물 반찬을 기대하며 얘기하고 왔었는데... 다 같이 잠시 조금 실망한 듯 했으나 그래도 정성껏 준비해준 성의에 감사하며 맛나게 먹고 차밭으로 올랐다.
오후에도 몇몇 아낙들은 광주리를 매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찻잎을 따고 있었고 우리 일행은 사진 찍기에 바빴다. 조금 미안하기도 했으나 아낙들은 맑은 미소로 같이 사진도 찍고 설명도 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차밭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각자 필요한 만큼 차를 선택하고 차농은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살짝 덖어서 밀봉 포장해줬다. 저마다 하나씩 쇼핑백을 들고 아쉽게 후년을 기약하며 다음 장소인 하방가로 이동했다.
하방가는 우리나라 인사동 같은 옛 거리로 청나라 시대의 거리를 재현한 곳이다. 여러 종류의 지역 특산품과 먹거리도 풍부하고, 실크가 유명해서인지 실크 치파오(중국 전통의상) 상점이 즐비하다.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고 장식용 차호도 몇 개 사고 기차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상해로 돌아오는 기분은 항주로 갈 때의 설렘과 또 다르게 잔잔한 뿌듯함이 있었다. 피곤한 몸으로 기차에 오르며 우린 다음 봄을 약속했었다.
귀국 후 매년 봄이 돌아오면 항주 용정 차밭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에 몇 번을 망설인다. 그러나 가까운 듯 먼 그곳을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년 봄엔 다시 한 번 꼭 가 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