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낭송으로 아름다운 사회 만들고파”
“청소년 인성교육 위한 시낭송 시간 있었으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시인은 영혼의 화가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인(文人)인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이란, 언어라는 물감으로 영혼의 모습을 그려내는 예술가라는 뜻일 터다. 그렇다면 그렇게 드러난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사오늘>은 7월 11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엄경숙 꽃뜰 힐링 시낭송회 원장 겸 국제하나예술협회 대표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청각장애인 위해 ‘한지 퍼포먼스’ 시작”
“시낭송은 시인이 쓴 시를 외워서 노래하듯 표현해 듣는 사람이 ‘힐링’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예술입니다.”
시낭송에 대한 엄 원장의 정의(定義)는 간단했다. 그러나 이 한마디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출발점일 뿐이었다.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준비한 질문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풀어놨다.
-시낭송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냥 시를 읽는 것은 낭독이라고 하죠. 하지만 낭송은 낭랑할 낭(朗)에 외울 송(誦)자를 씁니다. 시를 외워서 마치 노래하듯 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음계를 만들어서 시를 읊는 것이기 때문에, 종합예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낭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1980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까 제가 사는 지역에 장애인들도 많이 살고 있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분들에게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찾아보게 됐어요. 그러던 중, 등산을 갔다 오는 길에 복지회관에서 책 읽어주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혼 이듬해니까 1981년이네요. 그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도 읽어주고 시도 읽어주다가, 1994년에 우연찮게 시낭송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시낭송을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죠.”
-시낭송회가 만들어진 것은 언제인가요.
“1981년 제가 창립한 하나예술원이 모태가 돼 발전한 겁니다. 거리 시낭송회나 시극 공연 같은 것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국에 지부가 설치돼서 지부마다 시낭송 공연도 하고 있죠.
구체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시낭송 콘서트를 열어서 재활원 같은 시설에 위탁된 지적·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해 시낭송, 책 읽어주기, 동요 부르기, 후원금 전달을 하고 있고요. 소아암 아동을 위한 후원금 전달과 서울 시립 어린이병원 환우를 위한 시낭송 콘서트, 저녁 한 끼 굶고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연탄 나눔 행사 시극도 5회째 진행하고 있어요.
시낭송 외에도 안중근 의사를 그린 ‘세 발의 총성’, 이상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광섭 소설 ‘아빠 사랑해’를 시극 공연했고, 이순신 등 애국을 소재로 한 시극도 펼칠 예정입니다. ‘꽃뜰 아름다운 시 암송 대회’를 주최해 아름다운 시 암송의 저변 확대와 생활화에도 앞장서고 있고요.”
-명함을 보니 시낭송가 외에도 여러 직함이 적혀 있는데, 어떻게 이런 직함을 갖게 되셨는지요.
“제 명함에 시낭송가, 시극 연출·제작자, 전문MC, 사찰음식 명인, 숲 해설가 등등 많이 적혀 있죠. 그게 다 제각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연관이 있어요. 제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굉장히 잘하셨어요. 그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도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해서 사찰음식 명인이 됐어요. 그러고 나서는 꽃밭을 만들어 놓고 장애인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고 공연도 하면서 지냈죠. 그런데 장애인 아이들이 꽃밭을 보면서 ‘선생님 이 꽃이 뭐예요?’ 묻는데 대답을 못 해주겠는 거예요. 그래서 숲 해설가 모임에 들어가서 제1호 숲 해설가가 됐어요. 또 시낭송을 하는데, 좀 더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시극을 연출·제작하게 됐습니다.”
-UN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2015년 8월에 UN 산하 전 세계 190개국 나눔 바자회에 초청됐어요. 거기서 한복을 입고 한지 퍼포먼스 시낭송을 해서 큰 호응을 얻었죠.”
-최초로 공연 때 한지 퍼포먼스를 한 시낭송가로 알려져 있는데, 한지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요.
“처음 계기는 청각장애인에게 시낭송을 할 때 그들이 들을 수 없는 게 안타까워서였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1994년부터 수화와 함께 낭송시를 직접 붓으로 써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기 시작했어요. 그 후 제 모든 시낭송 공연마다 한지 퍼포먼스를 하고, 한지에 쓴 낭송시를 선물합니다. 이 퍼포먼스가 제 시낭송 공연의 상징이 됐죠.”
“오페라하우스 같은 시낭송 학교 만들고 싶어”
-시낭송이 실제로 ‘힐링’에 도움이 되나요.
“물론이죠. 단순히 마음에 평화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됩니다. 요즘 인성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단순히 ‘부모님께 효도해라’라거나 ‘친구를 배려해라’라고 말하기보다는 시낭송으로 전달할 때 주는 효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를 보면 엄마는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한겨울에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시를 낭송해주면 마음에 뭉클함이 생기잖아요. 그게 진짜 인성교육이 아닐까요.”
-시낭송을 통해 자살 예방 강의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힘겨운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해서 세상을 등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름다운 시를 음악과 함께 들려주면,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받게 되거든요. 백 번 천 번 말로만 해서는 마음에 닿지를 않아요. 그렇게 마음을 울려줘야, ‘내가 열심히 살아야겠다’든가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바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인성교육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건드려주는 겁니다.”
-이번에 복지TV에서 시작하는 프로그램도 그런 맥락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복지TV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하게 됐는데요. 장애인들이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세파에 시달려서 집에 왔을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시낭송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고 하더군요.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동안 꽃뜰 힐링 시낭송회 회원들과 함께 성장해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이 없었다면 제가 이런 영광도 누릴 수가 없었겠죠. 저뿐만 아니라 우리 회원들이 모두 모여야 아름다운 소리뜰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램도 회원들과 함께 진행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제 목표는 아름다운 시낭송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전 국민이 한 편의 시를 암송한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시작한 것이 ‘시암송 대회’입니다. 작년에 제1회 시 암송 대회를 열었는데, 홍보가 많이 안 돼서 좀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올해는 시 101편을 갖고 10월 1일에 국회에서 제2회 꽃뜰 아름다운 시 암송 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1은 ‘하나’로 읽히고, 일본어로 ‘하나’는 꽃이라는 뜻이거든요. 꽃과 꽃이 모여서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면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 101편의 시를 갖고 대회를 열 계획입니다.
시낭송 학교도 만들고 싶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처럼 1년 365일 누구나 와서 시인들의 시를 시낭송을 통해 접할 수 있고, 배경음악과 녹음실도 갖춰져 있어서 언제든 누구나 와서 녹음하고 재능기부도 할 수 있는 곳,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해요.
또한 방과 후 수업 등 청소년에게 시낭송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얻고 싶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청소년기에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게 하면 인성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낭송가들도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고요. 이것들은 제가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들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