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편안함 주는 한옥 갤러리 카페
비오는 날 청차인 복건성 '대홍포' 제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은정 茶-say 아카데미 대표)
새벽에 쏟아 붓던 비가 지쳤는지 종일 오락가락 보슬비만 내린다.
지리한 장마철의 끝자락이다.
비가 오는 습한 날이면 유난히 진한 차향(茶香)과 커피향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향기 성분은 습도가 높으면 확산 속도가 느려지므로 비오고 습한 날에는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르기 때문에 유난히 진하고 깊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냄새와 향에 예민하고 섬세한 이유는 뇌에서 후각을 인지하는 능력이 여자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힘든 걸 느낀다. 체질적으로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안맞는 거다. 그럼에도 직장을 다니던 젊은 날, 그 시절에도 비오고 습한 날에는 커피의 짙은 향 유혹에 못 이겨 한 잔은 마셨더랬다. 그때는 차를 모를 때였고, 커피도 원두보다는 지금 ‘옛날 커피’라 불리는 프림에 설탕이 듬뿍 들어간 달달한 ‘다방 커피’가 전부인 시대였다.
그러나 중국에 살면서 여러 종류의 중국차를 경험하고 난 이후, 비오고 흐린 날이면 커피 대신 깊이 있는 풍미와 맛을 내는 청차나 홍차가 간절해진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유난히 대홍포를 떠올린다. 비 오는 날 대홍포의 암운에 훈연 향과 맛은 극치에 달한다.
대홍포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청차 종류다. 무이산 부근에서 생산되는 청차들은 대부분 같은 방법으로 제다를 해 거의 다 훈연의 향과 맛을 낸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 누룽지 문화의 향과 흡사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특히 좋아하는 차이기도 하다.
오늘도 비가 오락가락 한다.
이런 날은 창 넓은 한옥 집 대청마루에서 차 한 잔 하며 내리는 빗소리에 잠시 편안해져도 좋을 것이다. 몇 해 전 대추를 곱게 갈아서 진하게 만든 대용차를 경험하곤 대추차 매니아가 되었다. 아주 큰 도자기 잔에 담겨져 나오는 걸쭉한 대추차와 곁들어 나오는 떡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가끔 진한 대추차가 생각나면 인사동으로 나가지만, 편안한 한옥과 잠깐의 휴식을 갖고 싶을 땐 필자는 그림을 품은 강화도 한옥 갤러리 카페 ‘도솔미술관’으로 달려간다.
한국의 시골스러운 정감은 아니지만 현대적인 한옥의 모던함이라고나 할까.
복잡한 도시의 비좁은 한옥과는 다르게 넓게 트인 공간이 맘을 시원하게 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서 웅장한 규모의 모던한 한옥이 눈에 거침없이 들어온다.
대문까지의 골목길은 깨끗하게 깔린 아스팔트와 돌담이 잘 어우러져 포토 존으로도 손색이 없다. 마당은 잘 정돈된 조각 공원 느낌이고 카페 아래층은 그림 전시관이 있다.
특히, 전시관 한쪽에 기다란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사계절 한 폭의 자연 그대로의 액자가 걸린 듯하다. 깨끗한 고개 마당에 예쁜 꽃들이 반기는 맑은 날 시원한 수정과나 식혜도 좋겠지만, 비 오는 날 기와지붕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 하러 여럿이 또는 홀로 다녀오길 주변에 추천해 본다.
비가 오면 유난히 여기저기서 관련 글들이 올라온다.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한가 보다. 같은 글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나누는 얘기들 또한 비슷하다. 그 중 단연 막걸리에 파전 이야기가 으뜸이다.
그 흔한 글들 중 <카스>에 내 스승님 한 분이 올린 시를 소개하며 혼자만의 우중 차회(茶會)를 즐겨 보련다.
夏夜雨聲打心鼓
山中松風暫休呼
雨中茶香及不遠
壺裹留香絶不消
여름밤 빗소리는 마음의 북을 두드리니,
산중에 불던 솔바람도 잠시 숨을 죽이네.
빗속의 차향은 비록 멀리 미치진 못해도,
차호 속 남은 향기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