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2019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8350원은 올해보다 10.9%(820원) 오른 금액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이후 13년 만입니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2년 만에 29%나 상승(2017년 최저임금 6470원)하자, 사회 곳곳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최저임금 1만 원’ 기조를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쪽과, 경제적인 충격을 고려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쪽이 맞부딪치고 있는 건데요. 양쪽이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요.
“최저임금 올려야 경제도 살아나”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주40시간, 월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174만5150원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미혼 1인 가구에게 필요한 생계비는 193만3957원에 달합니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을 버텨내려면, 말 그대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뜻이죠.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19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약 540만6000명(26.7%)으로 추산됩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약 2000만 명)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의 영향권에 놓인 셈입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25% 이상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 달을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임금을 높여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라면으로 한 끼 때우는 대신 밥을 사먹고,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할 여력이 생기는 사람이 500만 명 이상 늘어날 겁니다. 영화도 한 편씩 보게 될 거고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소비도 확대되겠죠.
이처럼 최저임금을 높여주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든든해져서 소비가 많아지고, 소비가 많아지면 기업도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야 하니 고용을 늘리게 됩니다. 고용이 늘어나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다시 소비가 늘어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바로 이것이 최저임금 인상 찬성론자들의 논리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죠.
“저임금 일자리부터 사라질 것”
반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상승이 오히려 고용 사정을 악화시켜 소비가 위축되고, 전체적인 국가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강도 저임금’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실업자를 양산, 저소득층을 더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최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체는 영세사업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면,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영세사업체들은 고용을 줄이거나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적은 지역으로 사업장을 옮길 공산이 큽니다. 그조차도 불가능하면 아예 문을 닫겠죠.
고용을 줄이든 사업장을 이전하든 폐업을 하든, 저소득 노동자들이 겪을 일은 명확합니다. 일자리를 잃는 거죠. 이러면 소비 수준은 지금보다 더 낮아지고, 경기(景氣)는 더 나빠진다는 게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들의 생각 흐름입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연속 신규 취업자 수가 10만 명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초 정부가 최저임금을 연간 15%씩 상승시킬 경우 2019년에는 약 9만6000개, 2020년에는 약 14만4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습니다.
정치권, ‘소득주도성장’ 놓고 갑론을박
그렇다면 정치권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요.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최저임금만 올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죠. 그래서 민주당의 기본적 태도는 ‘최저임금은 올리되, 영세 자영업자들의 임금 지불 여력도 함께 높여주자’입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가맹점주들을 본사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처리에 당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입니다. 대기업과 건물주의 ‘갑질’을 막아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익을 확대하면, 인상된 최저임금 지불 여력이 생기면서 앞서 언급한 ‘선순환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논리죠.
그러나 보수 야당들은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재고하라는 입장입니다. ‘참사’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고용 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계속 최저임금을 높여가는 것은 위험성이 큰 ‘도박’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저소득층 소득 증가-소비 증가-경기 활성화-고용 증대’로 이어지는 ‘소득주도성장’이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진보’는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고, ‘보수’는 가능한 한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은 진보와 보수의 대척되는 성향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이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올해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문제가 매년 ‘갈등의 씨앗’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