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박근홍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이정호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센터장을 위한 최종변론
2016년 '천황폐하 만세' 등 친일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정호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센터장에게 내려졌던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이 최근 취소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전 센터장의 구제신청을 노동위원회가 받아들였고, 이에 KEI가 징계처분을 취소한 것입니다.
이 전 센터장은 정직 기간 받지 못한 월급을 소급해 받았고, 현재는 센터장 보직에서 물러나 부서를 옮겨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KEI는 이번 사안 관련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최종 판결에 따라 징계 인사위원회를 추가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점차 거세지는 분위기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KEI는 정부가 출연한 연구기관으로 환경 분야 정책과 기술 등을 연구·개발하는 곳입니다. 이 전 센터장이 국책연구기관 부문장으로서 국민정서에 맞지 않고 품위 없는 언행을 한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삼창하더라도 시민들에게 위해가 되는 사정이 없다면 억압해선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전 센터장은 광장은커녕 회사 워크샵에서, 그것도 술기운을 못 이겨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술주정을 한 것뿐입니다.
공직기강이나 품위유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불편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징계조치를 내린다면 이게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최근 '민중은 개돼지' 발언을 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도 파면 불복 소송에서 승소해서 복직이 확정됐잖아요. 자국민을 직접적으로 모욕한 공무원도 면죄부를 받는데, 침략국 왕을 찬양하는 것쯤이야 너그럽게 봐주셔야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친일로만 따지면 이 전 센터장 정도는 양반입니다. 더한 사람들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계신데, 왜 이 전 센터장이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건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39년 3월 <만주신문>을 통해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 정신과 기백으로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이라며 혈서로 친일을 맹세하고 만주군에 지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의 딸 박근혜씨도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권력을 차지한 전두환씨는 1986년 유럽 순방길에 일본 영공을 통과하면서 '폐하, 아름다운 귀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폐하께 정중히 인사드립니다. 폐하의 건안과 귀왕실, 귀국민의 무궁한 번영과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일왕에게 보냈다고 하고요.
또한 김석준, 송영선, 안명옥, 신중식 등 국회의원들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나요? 나경원 의원도 행사장 앞에 얼굴을 비춘 것으로 알려졌죠. 나 의원 측은 행사 내용을 알고 곧장 발길을 돌렸다고 해명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2016년 해당 행사에 국방부, 외교부 관계자들을 보낸 바 있습니다.
경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 부친이 일제 시대 판사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홍진기씨입니다. 진주 상공회의소 의원을 지낸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씨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광고를 신문에 냈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부 현준호씨와 삼양그룹 창업주 김연수씨는 민족반역자로 분류되는 중추원 참의를 지냈습니다. 두산그룹 박승직 창업주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이밖에도 금호아시아나, CJ 등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들의 선조들이 친일 족적을 남겼습니다.
물론, 조상들이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해서 연좌제로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될 일이지만 일제 당시 쌓은 권세로 현재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정치권과 재계에서 이런 분들이 떵떵거리는 마당에 이 전 센터장의 발언은 새발의 피 수준이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입니다. 네? 이 전 센터장의 부친이 하나회 멤버 이종구 전 국방장관이라고요? 뭐, 그래도 징계가 취소됐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틀린 말은 아니네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울러 '천황'이라는 표현 자체는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998년 국민의정부 당시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은 "상대국 호칭 그대로 불러주는 게 외교 관례다. 정부는 천황이라고 부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故 김대중 전 대통령,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왕과의 만남에서 '천황 폐하'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박근혜 정부 아래 외교부도 2016년 천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공문을 작성했었고요.
모쪼록 이 같은 부분을 잘 헤아려서 이정호 전 KEI 센터장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재판장님께서 현명하게 판단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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