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우리는 작은 회사라 아직은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 받지 않아요. 근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죠.”
8월 23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 중소게임제작사 이사 A씨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달라진 게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명 안팎 규모의 작은 업체인 까닭에 아직까지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고 있지 않지만, 향후 인력 관리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걱정이라는 이야기였다.
정부는 기업들의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은 2018년 7월 1일부터, 50~299인 기업은 2020년 1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은 2021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차등 적용키로 했다.
다만 A씨의 걱정은 단순히 ‘인건비가 상승한다’는 등의 우려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 같은 게임회사뿐만 아니라, IT 회사들은 일반 회사들과 근로시간을 똑같이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업무 특성상, 천편일률적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IT 회사들은 게임이나 앱(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개발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출시를 앞두면 일이 몰릴 수밖에 없고, 출시를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또 개발자들이 달라붙어서 밤새 수정해야 하고요. 에러(Error) 수정 같은 건 개발자들밖에 못하니까, 출시 전후로는 개발자들 집에도 못 가요. 한 달 정도 지나서 좀 안정화가 되면 그때 정상적으로 출퇴근도 하고 하는 거죠.”
그러면서 A씨는 빈백 소파, 커다란 TV와 게임기, 음식들로 가득 찬 냉장고, 크고 깔끔한 샤워실 등을 보여준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 같은 게임 회사들은 사무실을 집처럼 편하게 꾸며놔요. 굳이 집에 안 가도 편히 쉴 수 있고,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게. 뭐 이런 걸 제공해주니까 일을 더 해라 이런 말은 아니고, 특성을 좀 고려해 달라 이거죠. 한 달 집에 못 들어간다고 앞뒤 상황은 보지도 않고 ‘직원들 짜내는 거다, 착취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업종들도 있으니까, 그런 곳은 차라리 복지 같은 걸 의무화하는 쪽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송희경,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지난 8월 3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현행법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경우는 2주 이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의 서면 합의에 따라 정하는 경우는 3개월 이내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계절별·월별 업무량의 변화가 큰 사업의 경우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적으로 몰려 일률적인 근로시간 적용이 어려우므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이 법안은 기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인 2주와 3개월을 각각 6개월과 1년으로 확대해 기업 실정에 맞춰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시기에 따라 업무량의 증폭이 큰 소프트웨어 개발업이나 정보서비스업을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특례 대상에 포함시켜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일정 기간(현행법상 2주 또는 3개월)의 근로시간을 평균해서 1주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특정일 또는 특정주의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어떤 시기에 더 일을 하면 다른 시기에는 일을 덜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6시간씩만 근무했다면, 금요일에는 24시간을 근무해도 1주 근로시간은 48시간이므로 근로기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용하는 기업이 전체의 6%에 불과한 실정이다. 단위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현행법상으로는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했더라도 단위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불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가령 게임 출시 전 한 달 반을 야근했다면, 게임 출시 후 한 달 반은 단축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늘려, 출시 전후 3달 동안 야근을 하고 이후 3달 단축근무를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게 송 의원의 생각이다.
경영계 vs 노동계, 찬반 팽팽
기업들은 당연히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올해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377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제도 개선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54.4%가 ‘유연근무제 실시요건 완화’를 꼽았다. 김규태 중견기업연합회 전무는 “단위기간이 최대 3개월에 불과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업종·지역별 근로시간 단축 차등 적용 등 추가 보완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일본·프랑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최대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독일은 최대 6개월에 노사 합의 시 그보다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노동계는 단위 기간 확대에 반발하고 있다. 단위 기간이 늘어날 경우 1일 또는 1주 근로시간이 길어져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고, 근로자들이 산업재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영 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시간에 대해서도 가산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근로자들의 권리가 박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6일 경제현안간담회에서 “불가피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특히 ICT 업종은 서버다운·해킹 등 긴급 장애 대응 업무 등에 대해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 시행 실태를 면밀히 조사해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반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6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있었던 ‘노동시간 단축 시행준비’ 브리핑에서 “전반적으로 (탄력근로제 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늘리는 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두고 논란이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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