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지난주에 마무리됐다. 두 번에 나눠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로 육친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이나마 해소됐을 듯하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인도주의적 고려보다는 정치적인 이벤트로서 열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남북한 관계 변화에 따라 상봉행사가 열리고 중단되기를 수차례 반복해 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가족 친지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크다. 남북 이산가족이나 실향민이 자유로이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고 확정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 이산가족들은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을 가까이 두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해질 무렵이 되면 마음이 짠해진다. 고향의 냄새가 나고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난다. 부엌의 무쇠솥에서 밥물 끓는 소리와 “그만 놀고 밥 먹으러 냉큼 오라”는 어머니의 부름이 들리는 듯도 하다. 석양으로 어슴푸레 반가운 사람이 걸어올 것만 같아 실눈을 뜨고 살피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 뛰어놀던 고향 마을을 평생 잊지 못한다. 삶이 팍팍할수록 고향의 정취는 그리움으로 짙어지는데, 그리움의 크기가 높아갈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진다. 고향을 가까이 두고도 갈 수 없는 남북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마음 속 생채기는 그 어떤 말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헤어진 혈육을 만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보고 싶은 이를 만나고, 머물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 이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이자 삶의 존재방식이다.
헤어졌던 가족과 친지, 고향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마른 나뭇가지에 움트는 어린잎을 보는 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다. 양은 도시락을 넣은 보자기 책가방을 어깨에 사선으로 맨 소년과 허리춤에 책보를 매고 뛰어다니던 그의 여동생. 어려서 먹었던 라면땅과 뽀빠이, 십리과자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잠들어 있던 뇌를 자극하고 옛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간헐적으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로는 65년이 넘도록 헤어져 있어야 했던 그리움의 한을 달랠 수 없다. 단발성 상봉 이벤트가 이따금 이어진다면 이산과 실향의 아픔은 덧나고 그리움의 병은 심해질 것이다. 2박3일의 짧은 상봉이나마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보다 아직 상봉의 기회조자 잡지 못한 이산가족이 더 많다.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2000명이라고 한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상봉의 기회를 잡지 못한 70세 이상의 고령자 비율이 85%라고 한다. 앞으로 7~10년이 지나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이산가족 상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향 땅을 밟고 싶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애절한 심정. 고향은 어머니 품속과 같다. 그곳엔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추억들이 깃들어 있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가위 추석 명절이 얼마 안 남았다. 남북 이산가족의 눈물을 멈추게 해야 한다. 어차피 놓을 ‘통일의 한길’이라면 그 길 양편에 왕래의 오솔길을 미리 내보는 것도 좋으리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으로 북남으로 이어지는 민족 대이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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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헤어진 가족 분들과 상봉하시어 가슴에 한과 슬픔을 모두
치유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실향민과 이산가족에 대한 애환과 슬픔을 잘 녹여낸 영화가 있어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영화 ‘미친도시‘ 추천 드립니다.